요즘 프로야구팬들 사이에서 '탈지효과'(탈 LG 효과)라는 단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LG 트윈스가 내보낸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가서 잠재력을 폭발시킨다는 의미다. 정반대의 의미로 '입지효과'도 있다. 이는 다른 팀에서는 잘하던 선수들도 LG만 들어오면 부진하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속어들은 LG 야구를 바라보는 비아냥 반, 안쓰러움 반의 시선에서 출발했다. 기원을 파고 들어가 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연속 가을잔치 진출에 실패한 LG의 최대 '흑기' 시절에 탄생했다. 당시 LG는 팀성적 부진과 더불어 무수한 징크스를 양산해냈는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망주와 FA들의 부진이었다.

LG에는 매년 잠재력을 갖춘 우수한 유망주들이 넘쳐났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프로야구에는 재능있는 신인들이 1~2년차만에 곧바로 팀의 주전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그중에서도 대형 신인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구단이 바로 LG였다. LG의 창단 첫 신인왕인 김동수(1990년)을 필두로 유재현, 김재현, 서용빈, 이상훈, 이병규 등은 데뷔와 동시에 프로야구 판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LG의 황금기를 이끈 선수들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프로야구의 수준이 향상되면서 신인들이 1군에 진입하는 문턱도 차츰 높아졌다. 재능있는 유망주들은 이후로도 꾸준히 LG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기대에 비하여 성장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점점 늘었다. LG는 결국 선수육성에 한계를 느껴 유망주를 트레이드하거나 검증된 FA 선수들을 영입하여 전력을 보강하는 방법(입지효과)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경우가 많아 악순환을 초래했다. LG 암흑기의 시작은 바로 이처럼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지 효과의 유래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한화 이용규를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지난 2004년 LG에 입단한 이용규는 당시 이대형의 그늘에 가려 한 시즌만에 KIA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이용규는 국가대표급 1번 타자로 성장했고, FA 대박 이후로는 현재 한화에서 활약중이다.

탈지효과 최대 수혜자는 김상현과 박병호

탈지 효과의 최대 수혜자는 김상현과 박병호를 꼽을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LG의 우타 거포 유망주였으나 LG에서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김상현은 2009년 FA 정성훈의 영입으이후 입지가 좁아지며 KIA로 이적했는데 바로 그해 타율 0.315 36홈런 127타점의 엄청나 활약을 선보이며 홈런왕과 MVP를 싹쓸이했고 KIA에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안겼다.

박병호는 설명이 필요없는 현재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홈런타자다. 2011년 트레이드 이후 넥센 부동의 4번타자로 자리잡으며 3년연속 홈런-타점왕과 MVP를 휩쓸었다. 국가대표 4번타자로까지 자리매김하여 어느덧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LG 시절에 한 시즌도 풀타임 주전을 보장받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밖에도 김태군(NC), 서건창(넥센) 등도 LG를 떠난 이후 뒤늦게 빛을 발한 선수들로 평가된다. 또한 탈지효과는 유망주만이 아니라 베테랑에게도 적용되는데, 김재현-안치용(은퇴)이나 이대형(KT)처럼 LG에서 활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되어 버림받은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가서 부활한 사례도 적지않다.

이러한 탈지효과의 원인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코칭스태프의 무능이나 LG의 선수육성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검증된 베테랑 선수들이나 이름값에 연연해온 LG 특유의 분위기상, 유망주들을 믿고 기다리며 충분한 기회가 돌아가기 어려운는 환경이었는 지적이다. 혹은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사용하는 LG의 특성상 거포 유망주들을 육성에는 불리한 환경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탈지 효과에 대해서도 과장과 오류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용규는 트레이드 당시 신인, 서건창은 고작 신고선수에 불과했고 이들은 'LG가 못키워서 떠났다' 할 정도로 당시만 해도 높은 평가를 받거나 주목받던 선수들은 아니었다. 김상현은 트레이드 첫해 KIA에서 1년 반짝한 이후 그만큼의 활약을 재현하지 못했다. 결국 실질적으로 탈지효과라고 할만한 사례는 박병호 정도이고, 정작 트레이드나 방출로 LG가 크게 손해를 봤다고 할만한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탈지효과와 함께 LG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꼽히는 입지효과도 최근에는 징크스가 많이 퇴색했다. 90년대 후반에도 2000년대 중반까지 LG는 홍현우, 진필중, 박명환 등 검증된 대형 FA들이 LG만 입단하면 유독 먹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진영, 정성훈 등 FA로 영입한 선수들이 이후에도 괜찮은 활약을 선보였고, 몇 년간은 이렇다 할 FA 외부영입을 자제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결국 어느 팀에나 존재하는 선수 이동에 관한 성공과 실패 사례들이 LG 구단의 오랜 암흑기와 맞물려 유독 과장된 느낌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유독 특정 구단에 관한 징크스가 야구계의 오랜 속설로 자리매김할만큼 그동안 LG의 선수 육성과 관리 시스템이 원활하게 가동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LG는 최근 10여년간 잦은 감독교체와 더불어 구단 운영의 연속성이 안정적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그만큼 체계적인 세대교체와 리빌딩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최근 SK와 3대 3 트레이드로 자리를 옮긴 정의윤만 하더라도, LG에서만 10년이나 활약한 만년 유망주였지만 김기태 전 감독(현 KIA) 시절을 제외하고 꾸준히 기회를 얻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성적과 미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LG의 혼란을 보여준다.

정의윤은 최근에 탈지효과의 새로운 기대주(?)로 주목받고있는 선수다. 지난 2005년 당시만해도 오승환(한신 타이거즈)보다 높은 순번으로 LG에 지명된 우타 거포 유망주였다. 하지만 데뷔 이래 한 번도 3할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지 못하며 그저그런 선수에 머물렀다. 10년 만에 LG를 떠나 새로운 도전무대에 나서게 된 정의윤의 활약 여부는, '탈지효과'의 진실성과 더불어 팬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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