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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다루기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풍습이 남아있다면 결혼식 뒤 인권침해나 폭력 등으로 걸리는 시비가 끊이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이 신랑다루기라는 게 있었습니다.

필자도 신랑다루기라는 걸 당해 봤습니다. 초등학교 후배와 결혼을 해 필자의 처가는 고향입니다. 처가가 고향이다 보니 신랑다루기를 하려는 사람들 또한 고향친구들이었습니다.

결혼식 며칠 후, 처갓집을 가니 마을사람들을 불러 피로연식으로 잔치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술이 몇 순배 도니 친구들 중에서 장난이라면 둘째가기를 서러워하던 놈들이 광목으로 발목을 엮으려 했습니다.

실실 웃으며 장난을 하듯 엮어 별다른 거부감 없이 두발을 내줬습니다. 그렇게 발목을 엮고 나더니 두 친구가 팔뚝 굵기의 나무에 발목을 묶은 광목을 꿰어 어깨에 걸어 맸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방 한구석에 있던 다듬이방망이로 발바닥을 툭툭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참을 만 했지만 강도가 점차 심해지니 통증이 커졌습니다. 어떤 때는 발바닥이 찌릿찌릿할 만큼 심하게 아팠습니다. 발목을 비틀며 아등바등 돼봤자 두발이 묶여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 별다른 소용이 없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 말고는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랑다루기는 등줄기에서 땀이 흥건하게 흐르고, 고성이 담장을 넘을 때까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사위를 구하려는 장모님과의 흥정 아닌 흥정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경험한 신랑다루기는 사실 어제 오늘에 생겨난 못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때부터 있었던 면신례, 요즘 말로하면 신고식으로 치러지던 여러 풍습 중 하나였습니다. 

'동상례東床禮'라고 부르는 풍습이 있다. 친척들이 모여서 갓 혼인한 사위를 가족으로 맞아들이며 베푸는 잔치다. 이 잔치에서 흥이 절정에 이르는 부분은 곤욕스러운 방법으로 새신랑을 희롱하는 '신랑다루기'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신랑을 들보에 매달고 이런저런 억지스런 핑계를 대며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것이다. -<놀이로 본 조선> 104쪽

조선시대 놀이부터 근대 놀이까지 <놀이로 본 조선>

<놀이로 본 조선> (엮은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펴낸곳 (주)글항아리 / 2015년 7월 10일 / 값 1만 9000원)
 <놀이로 본 조선> (엮은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펴낸곳 (주)글항아리 / 2015년 7월 10일 / 값 1만 9000원)
ⓒ (주)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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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본 조선>(엮은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펴낸곳 (주)글항아리)은 조선시대와 식민지 조선에 볼 수 있었던 놀이문화는 물론 근대화 이후에 한국에 들어온 놀이문화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게임과 오락이 요즘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면서 그 이름이나 양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도 즐기기 위한 놀이가 이렇게 저렇게 있었습니다. 그러한 놀이는 엄숙하기 그지없는 궁중에서도 있었던 삶이고,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의 들판에서도 버젓이 벌어지던 일탈이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놀이 중에는 근대까지 볼 수 있었던 놀이, 쥐불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그네타기, 줄다리기처럼 필자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널리 행해지던 놀이가 있는가 하면 '상화회'나 '전화' '황국음'처럼 그 이름조차 생소한 놀이까지를 두루 아우르고 있습니다.

어떤 놀이에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명이 담겨 있고, 어떤 놀이에는 가슴을 절절하게 하는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놀이는 그 시대를 담고 있는 삶이며 시대적 가치입니다.

책에서는 놀이를 묘사하고 있는 고서, 놀이문화를 기록하고 있는 고문서, 노는 모습을 그려 담고 있는 고화와 사진 등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어 조선시대에 있던 놀이를 입체적으로 상상하거나 재현해 보기에 충분합니다.  

화투, 100년 전 일본에서 들어온 거의 그대로

책에서는 소개하고 있는 놀이 중에는 화투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스갯소리로 화투를 국민적 오락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널리 즐기고 있는 놀이가 분명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성행하는 화투花鬪의 직접적인 근원은 일본의 하나후다花札이며, 하나후다의 기원을 또다시 추적하면 16세기 일본으로 전해된 유럽의 타로다. 타로는 14세기에 맘룩조 이집트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대항해시대인 16세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카드를 소개했다. - <놀이로 본 조선> 209쪽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투의 도안과 색감은 100년 전 일본의 하나후다의 것 거의 그대로라고 합니다. '홍단', '청단'이라고 하는 것도 일본의 '홍색 단자쿠'와 '청색 단자쿠'를 줄인 말이라고 하니 화투는 일본이 강점하면서 들여온 놀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화투가 일본에서 도입된 그대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12월을 나타내는 오동이 우리나라 화투에서는 11월을 나타내는 똥으로 불리고, 일본화투에서는 11월을 나타내는 버들이 우리나라 화투에서는 12월을 나타내는 비로 바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화투에는 일본 하나후다에는 없는 패가 점차 추가되며 룰 또한 변해가고 있으니 화투는 끊임없이 진화해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놀이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놀이로 본 조선>에서는 조선의 엄숙한 궁중에서도 펼쳐지던 놀이, 빼앗긴 식민지의 들판에서도 웃음으로 피어나던 문화, 조선인의 삶이자 일탈이었던 조선시대 놀이부터 근대 한국의 놀이까지를 꿰뚫어 정리하고 있어 놀이문화에 깃든 역사를 쉽고 체계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역사 익히기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놀이로 본 조선> (엮은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펴낸곳 (주)글항아리 / 2015년 7월 10일 / 값 1만 9000원)



놀이로 본 조선 - 신명과 애환으로 꿰뚫는 조선 오백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글항아리(2015)


태그:#놀이로 본 조선,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주)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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