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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반빈곤권리장전>(아래 '권리장전')은 2015년 6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약 2주간 서울, 경기 곳곳에서 벌어지는 도시빈민에 대한 탄압 양상에 대해 조사하고, 도시빈민의 권리목록을 작성하여 발표하고자 모인 실천단입니다.

<권리장전>에는 약 13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하여 가든파이브, 철거민(돈의문, 서소문, 염리동, 노점상(DDP, 삼양동, 수유시장, 미아삼거리), 임차상인(만복, 보용만두, 신신원 등), 쪽방 주민(동자동), 홈리스(서울역, 홈리스행동)들을 만나 개별 면접조사 및 간담회 등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글은 조사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들은 바들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연속 르포 형태로 기고될 예정입니다. 각 지역에 대한 조사보고서 및 종합보고서는 빈곤사회연대 홈페이지 문서 자료실에 업로드 되어 있습니다. - 기자 말

철거가 진행 중인 염리동. 부서진 건물 잔해와 아파트, 고층빌딩이 대조를 이룬다.
 철거가 진행 중인 염리동. 부서진 건물 잔해와 아파트, 고층빌딩이 대조를 이룬다.
ⓒ 2015반빈곤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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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2015반빈곤권리장전> 친구들과 함께 마포구 염리동 제2구역을 방문했다. 오전 10시경이었음에도 '염리동 제2구역 철거대책위' 건물 안에는 주민분들이 일찍부터 모여 계셨고, 6월의 날씨 같은 후더운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하지만 동네의 첫인상은 환한 미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재개발 예정지역인 이곳은 동네라기보다는 폐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거리에 널려있는 유리와 쓰레기 조각들, 반쯤 부서져 철근이 드러난 주택,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가득 쌓인 공터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믿기 힘들게 만들었다.

주민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들은 얘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철거 업체가 일부러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건물의 절반만 부쉈다고 했다. 철근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건물은 실제로 태풍이라도 오면 무너져 내려 자칫하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염리동에 남아계신 분들은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60·70대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폐허 속에서 살기 쉽지 않으실 텐데 무엇이 이들을 투쟁하게 한 것일까?

"이건 말이 안 되지, 그니까 못가는 거야"

밤마다 주민들은 모여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 가지를 함께 의논한다. 연령대는 대부분 60·70대.
 밤마다 주민들은 모여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 가지를 함께 의논한다. 연령대는 대부분 60·70대.
ⓒ 2015반빈곤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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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김아무개씨(79·남)는 '이런 동네에서 버틴 것만 어느덧 4년째'라고 입을 떼시며 철거민으로 사는 삶을 풀어가셨다. 그는 30년 동안 거의 메일 야근하며 성실하게 돈을 벌었다. 그렇게 겨우 마련한 것이 염리동의 집 한 채였다. 그 집에는 은퇴 후 방 4개를 세주고 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노후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랬던 김씨에게 철거 소식은 날벼락과도 같았다. 살고 있던 집에서 급작스럽게 나와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집을 마련하는데 들었던 노력을 비웃듯, 집에 대한 감정 평가가 터무니없이 나왔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조합에서 제시한 금액은 1억2000만 원밖에 되지 않았는데 염리동 전세 보증금만 해도 4억 원이라, 이 돈으로는 세입자를 들이기는커녕 세입자로 전락해야 하는 실정이 마을에 허다했다.

"여기 밑에 집에 내가 세를 놓으면 (보증금) 1억 원 넘게 나와요. 그런데 이게 4000만 원 나왔다고. 한 칸에 (보증금만) 1억 원 넘게 받을 수 있는 집을 통틀어서 4000만 원. 이건 말이 안 되지. 안 되는 거잖아. 그니까 못 가는 거야. 그니까 두 칸을 세를 놓으면 (보증금을) 2억 원을 넘게 받을 수 있는 집이 4000만 원 나왔다고. 어떻게 가냐고 이사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고. 남은 거. 손해배상을 누구한테. 누구한테 청구하느냐고."

대흥역 근처에 있는 염리동은 2003년, 아현 뉴타운 지구로 선정되면서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아현 뉴타운은 '인간,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복합생활문화 타운'을 목표로, 염리2구역에는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었다. 뉴타운 지구에 속한 사람들은 재개발이 완공되면 아파트로 입주하도록 분양권을 받는데, 애초 계획대로라면 추가 분담금 없이 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되면서 시공사는 시공비를 1720억 원에서 399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올렸다. 시공사는 내장(인테리어)공사와 암반공사를 위해 시공비를 올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짓는 공사였다면 저렴한 가격에 합리적으로 공사할 수 있도록 내장공사 지출을 줄이고 줄였을 것이다. 분명한 점은 시공사가 그렇게 과다 지출을 해도 그 시공비를 주민들이든 새 입주자로부터 100%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시공사는 돈만 돌려받으면 장땡이다. 증가한 시공비는 일차적으로 김아무개씨를 비롯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시공사 측에서 자의적으로 시공비를 올렸는데도, 아파트 입주를 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2억 정도는 더 내야 한단다. 어떤 은퇴한 대한민국 노년층이 2억과 그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김씨를 포함한 주민들은 아파트 입주도 포기하고 현금청산을 받아 나갈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나간다고 해도 돈 들어올 구멍은 막막하다. 김씨와 비슷하게, 은퇴 후 변변찮은 직장이 없어 임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입자와 같은 여느 철거민과 달리 염리동 주민들은 대부분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영세 가옥주'이다. 하지만 철거대상 지역의 영세가옥주가 겪는 고충은 세입자 못지않았다. 그들 또한 이곳에서 쫓겨나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를 아예 사람으로 취급하지를 않는 것 같아요

흡연 등으로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위압감을 조성하고자 하는 용역들에게 붙인 호소문
 흡연 등으로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위압감을 조성하고자 하는 용역들에게 붙인 호소문
ⓒ 2015반빈곤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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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은 주민들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쳤다. 우울증, 화병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건강이 악화해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주민들도 많았다.

"우리를 아예 사람으로 취급하지를 않는 것 같아요."

동네 주민이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공터에 쓰레기를 버리러 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김용애(55·여)씨가 말했다.

재개발 이후 가장 먼저 이웃들 사이의 분열이 일어났다고 했다. 조합 설립 이후 조합원/철거민의 프레임으로 아파트 입주가 가능한 사람과 불가능한 사람이 나뉘어 대립했다. 조합장 등 일부 협조적인 사람들에겐 '뒷돈'이나 감정평가에 특혜를 부여하여 공공연한 차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재개발을 속히 진행하기 위해 시공사 측에서는 용역을 고용했다. 용역들은 주민들에게 "밤길 조심해라", "너 같은 거 어떻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 같은 위협적인 말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주민들을 협박했다고 한다. 김용애씨는 올해 3월에 용역으로부터 받았던 협박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일부러 빈집에 상주하며 소음을 일으키고, 늦은 밤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복도에서 흡연하며 주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식으로 자진 퇴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아니 주민 찍히다

밤마다 주민들은 모여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 가지를 함께 의논한다. 연령대는 대부분 60·70대.
 밤마다 주민들은 모여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 가지를 함께 의논한다. 연령대는 대부분 60·70대.
ⓒ 2015반빈곤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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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싸움은 외롭다. 아무도 그들의 편에 서주지 않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주도하는 시공사와 조합은 말할 것도 없고, 마포구에 사는 주민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마포구청도 문제다. 소통을 시도해도 이들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주민 이구일씨는 구청은 재개발 이후 증가할 세금수입 때문에 시공사의 편에 조금 더 가깝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구청은 개입을 못 한다는 답만 주고, 조합하고 잘 해결하라는 방관적인 태도만 보여주고 있어요. 조합을 대표하는 조합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있고요.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대화와 타협을 어떻게 합니까? 조합장은 전체 조합원을 위한다면 한 명씩 돌아다니면서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요? 설득하려는 노력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문제에요."

심지어 법과 국가마저도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등기라는 게 뭡니까. 국가에서 이 집의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누군지 명시하고 그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지켜준다는 거 아닙니까? 뻔히 이렇게 등기가 있는데 재산을 빼앗아가 놓고 공탁금을 걸어 놓을 테니 찾아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네 집은 더는 네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이럴 거면 애초에 국가에서 등기를 왜 떼줍니까?" 김려원(61·남)씨는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는 사람의 소유권은 소유권도 아니라면서 어렵사리 마련한 집 바닥만 쓸었다.

보상금보다 주거생존권을!

<2015반빈곤권리장전>에 참가한 대학생들. 뒤에 보이는 벽화는 대학생들이 그린 것이다.
 <2015반빈곤권리장전>에 참가한 대학생들. 뒤에 보이는 벽화는 대학생들이 그린 것이다.
ⓒ 2015반빈곤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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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오후 5시였다. 해가 지기 전에 이틀 뒤에 있을 마포구청 규탄집회에 관한 유인물을 돌리러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함께 나섰다.

종종 철거민들은 '주민들이 더 많은 보상금을 노리고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유인물을 돌리면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유인물에는 주민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주거생존권'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멀쩡히 살던 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여서 직장과의 거리가 멀어지거나 임대료 수입이 끊겨 생계유지에 차질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돌아갈 집이 있기를, 또 생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박한 권리가 바로 주거생존권이고 주민들은 보상금보다 주거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주대책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다. 철거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 단지를 제공하는 '순환식 개발방식'이나 공정한 감정평가로 합리적인 보상금을 제공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가질 수 있게 된 힘은 주민들이 직접 꾸린 자치공동체에 있다. 우리는 유인물 돌리기가 끝나고 6시쯤 시작하는 주민회의에도 참가했다. 염리 제2구역 철거민연합위원장 박종팔 씨를 필두로 30~40명이 모인 이 공동체는 자발적으로 철거, 도시개발법과 뉴타운 정책들을 함께 공부하고 의논한다.

주민들은 전국철거민연합과 연대하며 그곳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법원 투쟁, 검찰 투쟁, 행정 투쟁, 일상 거리 투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집단적이고 치밀한 대응의 결과, 주민 이인순 씨는 조합과 시공사를 상대로 한 명도 소송에서 두 차례나 승소했다.

철거 상황은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철거민 측이 승소한 일은 드물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쩌면 염리동 주민들을 통해 다른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염리동의 주민들은 스스로 알아내고 공부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낼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2015반빈곤권리장전>의 이름으로 참가하여 직접 목격한 '빈곤'은 우리가 보통 '빈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랐다. '빈민'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단지 그들이 가진 것을 억울하게 빼앗겨 그것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목격한 빈곤에 따라 빈민을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을 빼앗긴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없어질 것들을 쥐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자본에 의해, 공권력에 의해 언제든 빈민이 될 수 있다.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시작된다. 빈곤을 만들어내는 G 건설 자본과 공권력보다, 염리 철거민들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소용없는 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용산 참사 당시 주민들의 희생투쟁 끝에 철거법의 개정이 이루어졌고, 염리동 주민들도 힘을 합쳐 명도소송 승리를 끌어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만든 작은 변화들도 쌓여 언젠가는 사회의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이 이길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속담이 이길지는 시간이 보여주겠지만, 전자의 속담이 승리하는 그 날까지 철거민들이 지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으면 싶다.


태그:#반빈곤권리장전, #빈곤, #철거, #철거민, #강제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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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쟁을 강요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한시적 원조나 시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해지지 않을 권리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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