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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은 어디일까요?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을 이탈리아의 3대 미술관으로 꼽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가 봅니다. 물론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그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은 무엇일까요? 고대 로마?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르네상스 미술을 이탈리아의 대표 미술로 꼽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이탈리아의 대표 미술로 새겨져 있는 르네상스 미술. 오늘은, 바로 그 르네상스 미술의 본향인 '우피치 미술관'을 만나려고 합니다.

우피치 미술관으로 가는 길. 비에 젖은 아침의 두오모는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 비에 젖은 두오모 우피치 미술관으로 가는 길. 비에 젖은 아침의 두오모는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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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공노조의 파업 때문에 문을 열지 않은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은 오전 8시 15분부터 문을 엽니다. 예약을 취소했기 때문에 일찍 가서 표를 사야 합니다. 서둘러 호텔을 나서니 밤새 비가 내렸는지 피렌체가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옅은 비안개 사이로 웅장함을 드러낸 '두오모'의 쿠폴라가 신비로운 분위기에 싸여 있습니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해서 우피치 입구에 도착하니 오전 7시 40분.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조르조 바사리의 설계로 만들어진 '우피치'는 나란히 길게 선 3층짜리 두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형태입니다. 피렌체의 정권을 차지한 코시모 데 메디치가 시청사였던 '시뇨리아 궁전'을 사저로 만들어 '베키오 궁전'으로 바꾼 뒤 행정과 사법 업무를 담당할 새 건물이 필요해서 만든 건물이지요. '우피치(uffizi)'란 이름도 집무실을 뜻하는 말입니다.

코시모 이후 프란체스코 메디치와 페르디난도 메디치 등의 후손들을 거치면서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수집한 '우피치'는 18세기 후반부터 일반인들에게 전면 개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 궁전은 원래 피렌체 공화국의 시청사로 시뇨리아 궁전이었는데, 코시모 데 메디치에 의해 사저로 조성되어 이름도 베키오 궁전으로 바뀝니다. 이후 행정과 사법의 목적으로 오늘날의 '우피치(집무실) 미술관'이 건립됩니다.
▲ 베키오 궁전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 궁전은 원래 피렌체 공화국의 시청사로 시뇨리아 궁전이었는데, 코시모 데 메디치에 의해 사저로 조성되어 이름도 베키오 궁전으로 바뀝니다. 이후 행정과 사법의 목적으로 오늘날의 '우피치(집무실) 미술관'이 건립됩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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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입구 앞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그 사이 보아야 할 작품들을 아이패드를 이용해 다시 정리해 봅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문득 뒤를 돌아보니 찬 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 아침 첫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표를 끊자마자 나는 거의 달리다시피 전시실로 향했습니다. 우피치의 복도가 자아내는 아카데믹한 분위기도 자꾸만 나를 세웠지만 일단은 작품들이 먼저입니다.

중세의 끝자락을 대표하는 치마부에와 독창적인 시에나화파 두치오, 그리고 르네상스의 씨앗을 막 뿌리기 시작한 지오토. 원래 '우피치' 관람은 이 세 사람의 '마에스타(Maesta, 장엄)'를 한 자리에서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작품들은 물론이고 전시실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의 직원에게 물어봅니다. 인상좋게 생긴 중년의 여직원은 떠듬떠듬한 영어에도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치마부에의 마에스타는 어디에 있는가?"
"미안하지만 치마부에의 '마에스타'는 볼 수 없다."
"왜 그런가?"
"보수공사와 함께 작품들을 재배치 중이다. 그래서 앞으로 2년 동안은 볼 수 없다."
"두치오와 지오토의 '마에스타'도 볼 수 없는가?"
"그렇다."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뒤돌아서는데 그 직원과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그렇지. 치마부에부터가 시작이지. 그런데 저 아시아인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순간, 여행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여행 선배, 빅풋 부부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유럽인들,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 직원들은 니희들이 예술에 대해 뭘 알겠냐는 듯, 아시아인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품 감상은 뒷전이고 단체로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아시아인들의 관람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한 '우피치 미술관'의 긴 복도는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우피치 미술관의 복도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한 '우피치 미술관'의 긴 복도는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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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언짢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서서 몇 가지를 더 물어봅니다.   

"그럼, 시에나 화파,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국제 고딕 양식 그림, '동방박사의 경배'도 볼 수 없는가?"
"아니다. 그 작품들은 다른 곳에 옮겨 전시해 두어서 볼 수 있다."

직원 모두 놀란 모양인지 눈이 둥그레져서 나에게 되묻습니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
"나는 한국에서 왔다."

그러자 직원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관람이 되길 바란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친절하긴 하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은근한 차별 의식은 여행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우리나라를 찾는 수많은 외국인(백인들을 제외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그 차별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인이건 손님이건 서로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처음으로 느낀 차별적 시각. 하지만 그 약간의 불쾌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내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우피치 미술관'. 그리고 내 눈 앞에 놀랍게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화'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미소와 찬탄이 교차하는 부부의 초상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우르비노를 부흥시켰던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부인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초상으로 가감없이 진실된 인물 묘사가 돋보이는 초상화입니다.
▲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우르비노를 부흥시켰던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부인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초상으로 가감없이 진실된 인물 묘사가 돋보이는 초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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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대장 출신으로 소도시 우르비노를 부흥시킨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부인 바티스타 스포르차. 몬테펠트로의 풍경을 배경으로 강렬한 붉은색 옷차림을 한 페데리코의 초상화는 마창 시합 도중 한 쪽 눈을 잃은 그의 결점이 가려지도록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게 다문 입과 오똑 솟은 매부리코가 만만치 않은 공작의 성격을 잘 보여주죠. 공작의 맞은편, 사후에 그려져 남편에 비해 생생함이 떨어지는 스포르차 부인은 옷과 목걸이, 머리 장식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초상화의 주인공,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작은 용병단 대장으로 출발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교황의 후원을 이끌어 내어 소도시 우르비노를 공국으로 발전시킨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리고 용병에서 은퇴한 후에는 위대한 시인이자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가 그랬던 것처럼 우르비노에 개인 도서관인 '스투디올로(studiolo)'를 세우고 그 자신이 인문학 연구에 매진하는 한편 다른 인문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게 됩니다. 전성기 르네상스를 이끈 것이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라면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정치 지도자는 페데리코였던 셈이지요.

그리고 그 때 만난 화가 중 한 명이 바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입니다. 프란체스카는 만년에 기하학과 원근법 연구에 몰두하여 르네상스 미술과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저서 <회화의 원근법에 관하여>를 저술하게 되는데 이 책을 페데리코에게 헌정한 것은 물론입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 극사실주의 묘사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주의적 묘사의 바탕에는 유화라는 새로운 기법이 있었습니다. 15세기 초반 벨기에의 얀 반 아이크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유화 기법은 이후 이탈리아에 전해졌는데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유화를 시도한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료를 기름과 섞어 그리는 유화 기법은 안료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서 그리던 이전의 템페라 기법에 비해 빨리 마르고 수정 작업도 쉬웠습니다. 거기다 투명해 보이는 효과까지 낼 수 있어서 세밀한 묘사가 가능했죠. 

주인공들의 위엄있는 표정에도 어찌보면 코믹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은 인기가 많습니다. 전시실 한 복판에 입구를 등지고 있는 공작 부부의,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초상화를 발견한 관람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어!"하는 표정과 함께 작은 찬탄을 보냅니다. 나 역시,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 초상화,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앞에서 미소와 찬탄이 교차하는 경험을 합니다.

이제 눈을 돌려 원래 이 전시실의 주인공, 프라 필리포 리피의 작품들을 만납니다. 로마에서부터 여러 편의 '수태고지'를 통해 계속 만나왔던 프라 필리포 리피. 이 전시실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그의 '성모와 아기 예수와 두 천사'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성모자상보다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수도사의 아슬아슬한 도피행각

특히 머리에 진주 티아라를 쓰고 있는 성모는 광배만 없다면 아름답기 그지 없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근엄하기 이를데 없었던 중세와 고딕 양식을 거쳐 이제는 인간의 세속적 아름다움마저 나타내기 시작한 성모 마리아. 여기에는 필리포 리피의 사랑의 도피 행각이라는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프라 필리포 리피, '성모와 아기 예수와 두 천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필리포 리피는 자신의 연인을 모델로 하여 성모마리아를 그렸습니다. 현세적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 성모와 아기 예수와 두 천사 프라 필리포 리피, '성모와 아기 예수와 두 천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필리포 리피는 자신의 연인을 모델로 하여 성모마리아를 그렸습니다. 현세적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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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였던 필리포 리피는 어린 나이에 카르멜회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말로 넘치는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탓에 17세에 수도사의 옷을 벗어 버리고 화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마사초와 로렌초 모나코, 프라 안젤리코 등의 영향을 받아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어가던 필리포 리피는 프라토의 한 수녀원에서 수련 수녀 루크레치아 부티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처음엔 자기가 그리는 성모자상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설득하다가 결국에는 그녀와 함께 사랑의 도피 행각까지 벌이죠.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들 역시 나중에 뛰어난 화가로 성장합니다. 바로, 필리피노 리피입니다.

그렇게 자유분방했던, 심지어 방탕하기까지 했던 필리포 리피는 성화에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입힙니다. 세속적인 아름다움, 즉 지상의 아름다움으로 신성을 표현하는 것이었지요. 이 그림 속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는 말할 필요도 없이 필리포 리피의 연인, 루크레치아입니다. 불경스럽게도, 자신의 연인을 성화의 모델로 삼았던 필리포 리피. 하지만 그가 시도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적극적인 묘사는 이후 그의 제자, 산드로 보티첼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인물들 외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물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멋진 풍경입니다.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처럼 인물들 뒤에 환상적인 자연 배경을 배치해 인물들을 돋보이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그림의 배경은 실제 풍경이 아니라 액자 속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 그림인 셈인데 이러한 기법은 필리포 리피가 거의 처음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라 필리포 리피, '성 가족과 성인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성모와 성 요셉을 밝은 색으로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 힐라리오, 막달레나 마리아는 차분한 색채로 그려져 색채를 통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특이한 그림입니다.
▲ 성 가족과 성인들 프라 필리포 리피, '성 가족과 성인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성모와 성 요셉을 밝은 색으로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 힐라리오, 막달레나 마리아는 차분한 색채로 그려져 색채를 통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특이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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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는 이 작품 외에도 놓칠 수 없는 필리포 리피의 또다른 명작이 있습니다. 바로 '성가족과 성인들'입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직후를 묘사한 이 그림은 숲 속에서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이 메인 테마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색채가 공간감을 주기 위한 장치로 이용된 점이 특이합니다.

성모와 성 요셉, 천사들의 옷은 밝은색으로 그려져 인물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보입니다 그에 비해 다른 성인들은 차분한 색채로 그려져 뒤로 더 후퇴하고 있죠. 가까운 것은 크고 선명하게, 먼 것은 작고 희미하게 묘사하는 대기 원근법에 채도 원근법을 더한 셈입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이 각기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는 점도 특이합니다. 꼼꼼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의복과 풍경은 초기 르네상스의 선구자 중 한 명인 필리포 리피의 특징을 잘 느끼게 해 줍니다.

'성 가족과 성인들'을 끝으로, 아버지와 스승 보티첼리의 영향을 받은 필리포 리피의 아들, 필리피노 리피의 명작, '성모자와 성인들', '동방박사의 경배'를 보고는 다음 방으로 건너갑니다. 이제 피렌체 르네상스의 가장 아름다운 별, 보티첼리를 만날 차례입니다.

필리피노 리피, '동방박사의 경배',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필리포 리피와 루크레치아 부티. 두 사람의 아들인 필리피노 리피 역시 훌륭한 화가로 성장하여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에 아버지의 작품들과 함께 한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동방박사의 경배 필리피노 리피, '동방박사의 경배',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필리포 리피와 루크레치아 부티. 두 사람의 아들인 필리피노 리피 역시 훌륭한 화가로 성장하여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에 아버지의 작품들과 함께 한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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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우피치미술관, #피엘로델라프란체스카, #프라필리포리피, #피렌체,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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