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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6일 <마이 리틀 텔리비전> 생방송에 출연한 신세경.
 26일 <마이 리틀 텔리비전> 생방송에 출연한 신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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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만남'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겠다. 배우 신세경이 '김영만 선생님'을 깜짝 방문했다. 17년 만이란다.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준 의상도 그때 그 느낌. 빨간 리본으로 깨알같이 디테일을 완성했다. 다소 어색했지만, 뭔가 뭉클함만은 고스란히 전달됐다. 선생님은 "왜 이렇게 말랐느냐"며 제자인 듯 자식뻘인 여배우를 연신 걱정해줬다.

일요일(7월 26일) 저녁 어김없이 진행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아래 <마리텔>) 인터넷 생방송은 그렇게 또 하나의 화제를 낳았다.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이사장이 <마리텔>에 출연한 직후, 17년 전 '어린이' 신세경이 <TV 유치원 하나둘셋>에서 김영만 선생님과 함께했다는 사실이 회자됐다. 김영만 신드롬에 힘입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그 당시 사진이 퍼지면서 일파만파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김영만 쌤'과 종이를 접고, 채팅창을 보며 '코딱지'들과 소통하며, 함께 등장한 '평생토록 열 살'인 인형 '뚝딱이'와 애드리브를 주고받는 '여배우' 신세경에게 시청자들은 친근감과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휴식기인 스타급 여배우가 17년 전 옛 기억을 머금고, 대본도 없는 생방송에 나와 김영만 '쌤'의 보조를 하는 모습은 분명 생경하면서도 신선하고 간혹 뭉클하기까지 했다. 아니, 두 사람이 해후하는 장면은 김영만이 전하는 메시지를 되새겨 볼 때 더없이 상징적이다.   

일각에서 '지속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겠느냐', '반짝 흥행에 그칠 거다', ''추억팔이'라 금방 질릴 거다'와 같은 예상들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영만 이사장과 <마리텔> 제작진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신세경의 깜짝 출연이 전부가 아니었다.

두 번째 생방송을 마친 김영만의 '오늘은 어떤 걸 만들어 볼까요?'는 종이 접기를 코드 삼아 2030 시청자들과의 소통과 '힐링' 창구로서의 가능성을 여실히 증명해내고 있다. '오버'가 아니다. 실시간 반응은 물론 김영만의 자세와 멘트, 방향성이 실제로 그러했다.

"이런 사회를 만든 어른이라,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지난 생방송에 출연 당시 시청률 1위 소식에 울컥하던 김영만의 모습.
 지난 생방송에 출연 당시 시청률 1위 소식에 울컥하던 김영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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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접어서 직장을 만들 수 있으면 정말 제가 죽을 때까지라도 하겠는데..."

어느 시청자가 채팅방에 '직장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종이접기' 아이템을 만드는 사람에게 직장을 만들어 달라니. 방송을 진행하던 김영만도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는지, 얼마간 말을 잇지 못했다. 숙연해진 분위기를 뒤로하고 김영만은 이렇게 말했다. 

"직장을 만들어 달래. 아 정말 마음 아프네. 직장을 만들 수 있으면 백날 밤을 새우더라도 만들어 주겠다. 미안해 내가, 직장 소리를 해서…. 정규직 비정규직, 그런 거 저 잘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 이런 사회 자체를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놨다고 생각을 하고.

여러분들, 힘들지만 긍정적으로 생각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제가 종종 '참 쉽죠'란 말을 하는데, 여러분들한테 쉽다, 쉽다 하는 것도 뭐든지 긍정적으로 보라고 하는 얘기예요.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어른 입장에서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는 '어른', 흔치 않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2015년의 지옥도와 같은 한국사회를 만든 장본인으로서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놨다"고 인정하는 어른들은 더더욱 흔치 않다. 하지만 우리 나이로 65세인 김영만은 "어른 입장에서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다.

김영만 선생은 그렇게 젊은 세대들을 다독이고 있다. 지독히 대중적인 TV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다독임은 이제는 직장인이 되고 엄마, 아빠가 된 17년 전 그 '코딱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종이 접기 중간중간, 그 효용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김영만 '쌤'의 의도는 첫 방송보다 훨씬 명확해졌다. 

김영만의 철학, 직장인 '코딱지'를 울리다

첫 회를 경험한 그는 왜 2030 시청자들이 자신에게 열광했는지를 이미 다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분 이제 다 컸구나, 어른이 됐네"라던 김영만 '쌤'은 이제 코딱지들의 현재 상황에 주목했다.

"젊은 엄마, 젊은 아빠들. 이 시간에는 아이들 안 잘 거예요. 옆에 데려다 놓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웃어가면서 (종이접기) 해봐요. (그런데) 아빠, 엄마들은 꼭 완성을 해야 해. 기다려봐, 이러면서 애는 가만히 있고, 엄마 혼자 만들고는 나중에 만들어줘요. 그건 교육이 아니죠. 같이 만들면서 너 잘했다, 틀리면 어때, 얘기하고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직장 잘 다니고 있죠? 월화수목금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쉬는 거예요. 여러분은 쉴 자격이 있어요.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잘 쉬는 거야!"

"제가 가끔 '쉽죠'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내가 쉽다고 자꾸 생각하면 모든 일이 쉬워요. 근데 어렵다, 어렵다 하면 풀리는 일이 없어. 친구들, 쉽다 하는 얘기는 폭이 큰 그런 이야기예요. 여러분들 머릿속에 '쉽다'라는 말을 각인시키기 위한 거예요. 그리고 다 컸는데 뭐!"

"혹시 아빠, 엄마랑 같이 한번 보면 어떨까요. 이해를 못 하실 거 같다고요? 이해하십니다, 어느 날, '같이 (방송)볼래?'라고 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좀 더 가까이 가면 (돼요). 요즘 의미심장한 광고를 봤는데, 아빠가 딸에게 말 시키니까 딸은 딴짓하고, 딸이 아빠 찾아가지고 '나 불렀니' 그러니까 딸이 '엄마 어디 갔어' 그래요. 그거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현 세태를 반영하는 거 같아서. 어르신들에게 말을 먼저 걸어 보세요."

사실 2030세대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김영만 '쌤'의 종이접기만큼이나 이러한 격려와 위로, 그리고 평범함 속에 내재된 비범한 충고 때문일 것이다. '꼰대'처럼 일방적인 강요 없이,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김영만은 '코딱지'들의 현재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날 방송에서 지속적으로 취업이나 직장 생활 이야기가 등장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이 시대에 필요한 어른, <마리텔>을 변화시키다

<마리텔>의 한 장면.
 <마리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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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해 할 또 다른 '어른'들도 있겠지만, 김영만이 "부장님, 과장님, 우리 20,30대 사원들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말할 때, 그 작은 말 한마디에 감동받았을 2030 세대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는 "IMF를 만든 어른들은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젊은 세대만 욕한다, 젊은 세대는 잘 하고 있다, 상처받은 세대다"라는 말로 평소 생각을 드러낸 바 있다.

심지어 그는 이러한 의도를 콘텐츠 속에 녹여 내기까지 한다. 직장 상사의 미소를 끌어낼 수 있는 종이 접기를 끌어온 것이다. 이에 대해 어느 트위터 사용자가 던진 한마디는 그래서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이런 세상을 만든 게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인정만 해줘도 애들한텐 참으로 많은 위로가 되거늘 맨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니 혐오감만 생기지. 20대 애들의 50, 60대한테 갖는 반감은 상상초월이더라." (@sa******)

김영만 신드롬은 반짝 흥행에 그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마리텔>이라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고, 김영만이란 절묘한 캐스팅을 이끌어낸 제작진의 영민함도 그러한 믿음을 더한다. <마리텔>의 제작진들은 첫 생방송 이후 회자된 김영만의 어록들을 적절한 편집으로 부각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더욱이 과거 김영만의 파트너(?)였던 신세경과 함께 '뚝딱이'란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을 보라. 이 뚝딱이가 정체 모를, 그러나 지적인 성우와의 결합을 통해 "비정규직"과 "인턴" 문제를 언급하고, 부장님들의 위트를 걱정하는 대목은 우연이든 애드리브든 신선함 그 자체다.

'반짝 흥행'이 아니라 김영만 효과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철학이, 그의 교육관이, 그의 '애티튜드'가 말이다. 최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가진 김영만의 통찰은 확실히 유효하고 적확해 보인다. 그를 방송에서 더 많이, 오래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문화도 같이 어려워져요. 먹고 살기 힘든데,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겠습니까. 제 방송을 보고 자란 세대가 바로 IMF사태 때 초·중·고등학생 무렵이거든요. 그야말로 문화의 혜택을 잃은 채 학창시절을 살았어요.

IMF 때는 문화는 문을 닫았죠. 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문화적 위로도 못 받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상처가 많은 세대죠. 지금까지도 회복이 안 됐다고 봐요.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젊은 세대만 욕하죠. 왜 그러냐고. 왜 그것밖에 못하냐고. 지금 젊은 세대는 정말 잘 해내고 있습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김영만, #마리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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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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