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리도리 짝짜꿍…,잼~잼~잼잼…, 곤지곤지…, 도리도리 까꿍…."

<문득, 묻다-첫 번째 이야기>(지식너머 펴냄)를 읽다가 오래전에 만난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한 할머니가 5~6개월쯤 되는 여자아이를 어르며 놀아주고 있었다. 할머니의 몸짓에 방글거리는 아기의 모습이 어찌나 기분 좋던지 '좀 더, 좀 더', 한참 앉아있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가 엄마가 나타나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며 눈을 흘겼다.

"엄마는 고리타분하게 그게 뭐야. 요즘 누가 그런 걸 가르치며 논다고. 그리고 도리도리 그거 일본말이잖아. 애들한테 그런 걸 가르치면 어떡해!"

대략 이랬던 것 같다. 당시 세간에 '닭도리탕이란 명칭이 일본식 용어라는 것, 그러니 다른 말로 순화해 쓰자'가 한창 화제였다. 때문인지 그 아기엄마는 옆에 있던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지나치게 손주와 놀아주며 행복해 하는 그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아기를 어르는 '도리도리(道理道理)'는 길도(道)에 다스릴 리(理)를 쓰고, 까꿍은 '각궁(覺躬)'에서 나왔는데, 깨달을 각(覺)에 몸궁(躬)입니다. '천지만물이 하늘의 도리로 생겼으니 너도 하늘의 도리에 따라 생겼음을 알라'는 뜻이지요.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왼손바닥 가운데에 찧는 동작을 하는 곤지곤지는 하늘 건(乾), 땅 곤(坤)을 쓰는 '건지곤지(乾知坤知)'로부터 유래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으면 천지간 무궁무진한 조화를 알게된다'는 뜻입니다.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죔죔은 '지암지암(持闇持闇)'에서 왔습니다. '쥘 줄 알았으면 놓을 줄도 알라'는 깨달음을 은연중에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지요. 또 아기 아빠가 아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 세우는 것을 '섬마섬마'라고 하는데,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 굳건히 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아기가 위험한 데로 가려거나 손을 대려고하면 '어비어비'하면서 못가도록 하지요. 이는 한자 '업비업비(業非業非)에서 왔습니다. 일함에 도리와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도리도리 까꿍'을 일부러 배운 적은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남매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입에 붙은 말인데 한편으로 그 아기엄마처럼 ('도리도리' 때문에) 아마도 일제강점기쯤에 생겨난 말이 아닐까? 지레짐작하며 막연히 찝찝해 하곤 했다.

<문득, 묻다-첫번째 이야기> 책표지.
 <문득, 묻다-첫번째 이야기> 책표지.
ⓒ 지식너머

관련사진보기

이런지라 <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만나는 '도리도리 까꿍'의 진실이 반가웠다.

5년 전엔가. '도리도리 까꿍'이 우리의 전통육아 한 지침인 <단동십훈>의 일부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순간 작은 충격을 받았었다. 하여 언제 정리 좀 해볼까 생각은 했으나 잊고 있었던 터라 더욱 반가웠다.

<단동십훈>(檀童十訓)은 <단동치기십계훈>(檀童治基十戒訓의 줄임말로 '단군왕검의 혈통을 이어받은 배달의 아이들이 지켜야 할 열 가지 가르침'이란 뜻이란다. 0~3세 아이들을 어르며 놀아주는 방법에 관한 것들인데, 출처가 불확실한 채로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다고 한다.

위에서 소개한 것 외에 불아불아(弗亞弗亞), 시상시상(侍想侍想), 아함아함(亞含亞含), 질라라비 휠휠(지나아비 활활의支娜阿備 活活議) 등이 있다. 각각 손과 발을 자극하는 '죔죔'과 '섬마섬마'처럼 10계훈 모두 뇌를 비롯한 몸 각 부분의 발달을 도우면서, 마음과 습관(자기존중심을 키우게 하는 불아불아, 말을 조심하라는 아함아함 등)을 바르게 하는 내용이다.

내가 미처 몰랐던 상식들

<문득, 묻다-첫 번째 이야기>(지식너머 펴냄)는 '도리도리 까꿍'처럼 일상에서 흔히 쓰거나, 당연시 되는 것들에 흥미롭고 놀라운 메시지를 준다.

세상을 놀라게 한 사과의 등장은 20세기에도 이어집니다. 1968년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가 자신들의 음원을 관리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이름이 '애플 코어(Apple Corps)' 입니다. 같은 해 10집 음반 <THE BEATLES>를 발매한 애플 레코드는 애플 코어의 자회사 중하나지요. 비틀즈는 초록색 사과를 애플 코어의 로고로 등록했는데 폴 매카트니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초록색 사과를 좋아해서 그에 대한 오마주로 애플 코어의 로고로 초록색 사과를 사용했습니다.

마그리트는 사과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중 초록색 사과 한 알이 방안을 가득 채운 크기로 그려진 그림 <듣는 방>이 유명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사과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애플 레코드의 로고를 보고 이 사과를 로고로 쓰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그는 1976년 디자이너 로브자노프에게 비틀즈의 사과를 모티브로 한 로고를 만들 것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한 입 베어 먹은 무지갯빛 사과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77년, 애플 컴퓨터가 설립됩니다. 이듬해 애플 코어가 애플 컴퓨터를 고소했습니다.-<문득, 묻다-첫 번째 이야기>에서.

주제는 71가지. '애플의 상징 사과'처럼 우리 주변과 관련된 상식들을 넓혀주는 이야기들이 많아 한 장 한 장 넘겨 읽는 재미가 유독 강한 책이다.

KBS 클래식FM-<출발 FM과 함께>, '문득, 묻다'란 3분 분량의 코너를 통해 방송된 것들이란다. 이 코너가 우선한 것은 '하도 특별해서 누구라도 궁금해할만한 것보다는 주변에 흔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것들'. 3분 정도 분량이라 좀 더 깊이 다루지 않음이 좀 아쉬운 주제도 있으나, 한편으론 내용이 비교적 짧아 틈틈이 읽기에 좋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 나오는 꽃은 어떤 꽃일까? ▲모란꽃에 정말 향기가 없을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일까, 억새일까? ▲밸런타인데이에는 왜 하필 초콜릿을 선물할까? ▲<최후의 만찬> 메인요리는 무엇일까?▲마녀의 수프는 어떻게 만들까? ▲사랑의 묘약 정체는 무엇일까? ▲신화에 나오는 신비의 음료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은 어떻게 나왔을까? ▲화촉을 밝힌다, 그 화촉은 무엇으로 만들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호랑이와 양반, 왜 제소리하면 올까? ▲마누라라는 말은 정말 아내를 얕잡아 부르는 말일까? ▲사이비, 속어일까 아닐까? ▲하루살이 같은 인생, 하루살이는 정말 하루만 살까? ▲난장판과 아수라장, 어떻게 다를까? ▲천고마비, 말은 정말 가을에 살찔까?-<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 목자 중에서.

일부 목차만으로 유독 소소한 알꺼리 그 재미가 많은 책임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 읽다보니 어느새 몇 장 남지 않았음이 문득 아쉬워지는 책들이 있다. 다행히 이 책은 제2권이 나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어서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유선경) | 지식너머 | 2015-06-20 | 13,000원



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 -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깨우는 일상의 질문들

유선경 지음, 지식너머(2015)


태그:#도리도리 까꿍, #단동십훈, #애플, #초록 사과, #화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