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삽화 Illustration by Kate Greenaway for Robert Browning's "The Pied Piper of Hamelin"

▲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삽화 Illustration by Kate Greenaway for Robert Browning's "The Pied Piper of Hamelin" ⓒ en.wikipedia.org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 한국으로 건너왔다

영화 <손님> 스틸컷 우룡의 피리소리는 신나면서도 어딘가 구슬프고 음산하다.

▲ 영화 <손님> 스틸컷 우룡의 피리소리는 신나면서도 어딘가 구슬프고 음산하다. ⓒ 네이버영화


원작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독일의 민간전승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그림 형제를 비롯한 여러 작가가 기록한 작품이다. 이 전승은 13세기 독일의 도시 하멜른의 공문서에 기록된 '1284년 6월 26일 하멜른 시내에서 130명의 어린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라는 문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작에서 들끓던 쥐로 인해 고심을 겪던 하멜른의 시장과 의원들은 도시를 방문한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쥐를 없애주면 금화 1만 냥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피리 연주로 쥐들을 유인해 강에 빠뜨리고 난 후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피리 연주로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에서 사라진다. 그 후로 그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동화책으로 널리 알려진 외국의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적 맥락에 맞춰 각색했다. 이런 점만으로도 영화 <손님>은 태생적으로 충분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13세기 유럽의 소도시는 영화에서 전쟁 직후 한국의 외딴 마을로 변한다. 얼룩 옷을 입은 피리 부는 사나이는 착한 아들, 약장수의 말솜씨까지 장착한 수더분한 아저씨가 되었다. 쥐들이 들끓게 된 계기, 선무당 미숙의 역할 등 새로이 덧붙여진 설정들 또한 흥미롭다.

전쟁을 지나 휴전을 한 1950년대,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 분)과 '영남'(구승현 분) 부자는 서울로 향하던 중 비를 피하다가 우연히 산골 마을에 가게 된다. 지도에도 없는 산골 마을은 바깥세상과 아예 단절된 채 '촌장'(이성민 분)의 지도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들끓는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 아들의 폐병을 고칠 돈이 필요했던 우룡은 쥐떼를 없애주면 큰돈을 주겠다는 촌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피리를 불어 쥐떼를 쫓아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하나둘 마을에 숨겨져 있던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고, 우룡은 점점 더 마을의 사건 중심에 서게 된다.

질서를 위해 은폐되는 진실

영화 <손님> 스틸컷 촌장 아래 결집된 마을 사람들의 집단 광기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공포스런 지점이다.

▲ 영화 <손님> 스틸컷 촌장 아래 결집된 마을 사람들의 집단 광기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공포스런 지점이다. ⓒ 네이버영화


촌장은 마을 사람들의 집단 죄의식에서 기인한 강한 결속감과 그 안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권위를 십분 활용하여 마을을 이끈다. 마을의 대소사는 전부 그에게 보고되고, 그의 결정을 따른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도 그의 몫이며, 심지어 마을 사람들의 취침시간도 그가 종을 쳐서 알릴 정도다. "살려고 지은 죄는 용서받는다"라는 말처럼, 촌장은 자신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용서하고 또한 용서받기 위해 미숙을 만신(무당)으로 내세운다.

마을의 울타리 속에서 완전범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휴전 사실을 숨긴다. 만일 촌장의 실수(혹은 오판)로 우룡에게 원한을 사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의 죄악은 아이들 세대에 이르러 전혀 없던 일이 되었을 것이다. 원작의 그것과도 유사한 영화의 열린 결말은, 어쩌면 진실의 완벽한 은폐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원죄를 아이들이 상속받지 않게 하려고, 죄악과 죄책감을 한꺼번에 완전히 삭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미숙(천우희 분)이 깬 달걀이 핏빛으로 퍼지는 모습을 보고 촌장은 그녀에게 귀신이 강림했다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공표한다. 하지만 촌장에게 있어 미숙이 실제로 신 내림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마을 사람들이 신성을 느끼고 이를 통해 과거에 저지른 그들의 악행을 잊게 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할 뿐이다. 이 와중에서 미숙은 촌장이 요구하는 자신의 역할에 관해 부담을 느끼고, 우룡과 영남을 만나면서 구원의 빛을 본다.

하지만 우룡은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처벌식'의 새로운 제물이 되고, 미숙 또한 집단의 광기에 굴복해 우룡을 공격한다. 하지만 돌연 미숙은 실제로 신들린 듯한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꾸짖는다. 어쩌면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끔찍한 악마성에 미쳐버렸거나, 이전에 죽임을 당한 무당의 원혼에 씌였거나, 아니면 우룡과 영남에 대한 연민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김광태 감독은 <손님>이 그리는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악마성에 대해 "한국전쟁 당시에는 살아야 하니까 옆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러지?', '원하는 게 있나?', '내 걸 빼앗아가지는 않을까?'라는, 전쟁통에 무너진 가치관의 변화를 겪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집단의 광기와 이기주의가 힘을 얻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광기가 영화 속에 연출되는 과정은 몇몇 장면에서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음산하면서도 불행한 시대적 현실은 귀를 찌르는 듯 높게 울리는 피리 소리와 어우러져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몰아치는 드라마와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손님>은 어딘가 시원찮은 기분이 드는 영화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종종 이런 영화가 있다. 다시 한 번 보면 놓친 무언가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건 그런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및 Vingle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손님 이성민 피리부는사나이 류승룡 천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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