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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갈림길>(아크릴, 2015)
 작품명 <갈림길>(아크릴, 2015)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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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년째다. 일본을 대표하는 화랑거리이자 문화 예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도쿄 긴자(銀座)에서 매년 개인전을 열어온 김광규(57) 화백이 올해도 어김없이 약속을 지켰다.

지난 20일~25일 긴자갤러리 무사시에서 개최된 개인전에서 만난 김 화백은 "이번 개인전은 한국의 중견작가이신 박경식 화백도 같이하게 돼 엄밀히 말하면 개인전은 아닌데 자꾸 그렇게 불러주시니 괜히 부끄럽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원광대 미대를 졸업하고 1989년 일본으로 잠깐 공부하러 건너왔던 그는 26년이 지난 지금 도쿄 우에노의 중견보석회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을 정도로 잘 나가는 사업가이자 보석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그래도 미술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대를 나왔으니 그림에 대한 미련은 있기 마련이죠. 원래 그림공부 계속 하려고 일본에 온 거였고. 그런데 여기서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니까 밥벌이를 해야겠더라구요. 그림만으론 먹고 살 수가 없어 전공을 살려서 보석 디자인을 한 거고 지금은 그게 직업이 된 거죠."

그렇게 시작한 보석 디자인도 어느새 20년 세월이 흘렀고, 동안의 청년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강산이 두세 번은 변할 그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벗이 미술이었다.

"공기나 밥 같은 게 그냥 당연하게 있는 것인 것처럼 저한테 그림은 일기장 같은 개념입니다. 매일 조금씩 그리고 시간 좀 많이 남으면 많이 그리고, 암튼 꾸준히 그리는 거죠. 그래서 관리나 그런게 힘든 유화나 그런 건 못하겠고 요즘엔 아크릴 밖에 안 하네요. 빨리 마르니까 금방 완성작을 볼 수 있어요."

작품명 <환희>(아크릴, 2014)
 작품명 <환희>(아크릴, 2014)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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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라는 투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는 김 화백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림을 위해 화가의 예술혼을 불태우니 어쩌니 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그래도 화랑에 전시된 작품들이 어느 정도는 추상적으로 보여 내친김에 그의 세계관을 물어봤다.

"세계관? 그런 어려운 건 잘 모르겠고. 어렸을 때는 이런저런 의미도 부여하고 해봤는데 지금은 그냥 손 가는 대로 그리죠. 그런데 굳이 눈에 보이는 건 예전에 다 해봤으니까 이젠 눈에 안 보이는 것들. 특히 사람 마음같은 게 재밌더라구요."

"한 방울 눈물에도 희로애락이 다 담겨져 있고, 기쁨이란 것도 사실 마냥 기쁜 게 아니라 복잡하지 않나? 기쁜 와중에도 갑자기 '아, 이렇게 행복한데 왜 슬프지'라는 감정이 들 때가 있잖아요. 요즘엔 그런 걸 그리고 있는데 솔직히 또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근데 대다수 그림 그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할 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는 거죠. 그게 잘 맞아 떨어지면 유명해지는 거고.  사실 미니멀리즘이 어떻고 포스트모던이 저떻고.. 이런 말들은 미디어나 평론가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거고 화가들은 그냥 그림 팔려서 밥벌이하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많을 걸요? 다들 예술가이기 이전에 생활인들이니까."

"그림이 일기니까 매일, 죽을 때까지 그리겠지요"

기자가 화랑에 체류한 1시간여 동안 20~3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화랑 관계자는 "이 거리는 화랑거리라 불릴 정도로 화랑이 많다, 내방객들의 수준도 높아 지적인 대화가 오고간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화랑에 체류한 1시간여 동안 20~3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화랑 관계자는 "이 거리는 화랑거리라 불릴 정도로 화랑이 많다, 내방객들의 수준도 높아 지적인 대화가 오고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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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관람객에게 작품설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 화백.
 일본인 관람객에게 작품설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 화백.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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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부담없이 매일 일기장처럼 1년 동안 그려온 것들을 매년 한두 번씩 선보인다고 한다. 그게 벌써 7년이나 된 셈이다.

"7년 전부터 전시하기 시작했는데 여기 화랑 무사시에서는 매년 이맘때 열고, 요코하마나 오사카 등에서는 공동전이나 초대전 할 때 전시하고 있고 딱히 정해진 건 없어요. 그래도 몇 점씩은 꼬박꼬박 팔리니까 기분은 좋죠."

앞으로의 계획도 물어봤다.

"내년엔 파리에서 한 번 할 거 같은데. 후배 중에 양승우라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야쿠자 사진같은 걸로 꽤 유명한 사진작가가 잏는데 그 친구하고 같이 파리에서 한 번 해보자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죠."

그러면서 은퇴는 없다고 덧붙인다.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그리는 것. 즉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다.

"일기란 게 그런 거잖아요. 매일 쓰는 거지. 나한텐 그림이 일기니까 아마 매일 그리겠지요? 죽을 때까지 말입니다."

긴자1번지의 갤러리 무사시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김광규 화백. 벌써 7년째 같은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한다.
 긴자1번지의 갤러리 무사시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김광규 화백. 벌써 7년째 같은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한다.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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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 더위가 한창인 긴자 한복판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화가의 개인전. 그는 지난 7년 동안 언론에 소개되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충분히 화제가 될 만도 한데 그는 그런 이미지메이킹에 있어 놀라울 정도로 순수했다.

"나야 다른 직업은 있으니까 사실 엄청나게 절실한 마음이 있고 그러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진정 그림을 업으로 하려는 분들이 현실에서 여러 장벽에 부딪혀 관두는 걸 많이 봤는데 그런 걸 보면 너무 당사자 자신이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아쉽기도 합니다. 후배님들이 어깨에 힘빼고 릴렉스하게 길게 보고 미술작업을 계속하면 좋겠네요. 일기라 생각하고 말이죠. 허허허."

내년에도 어김없이 같은 장소에서 일주일간 전시회를 열 것이라 다짐하는 김광규 화백.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어색하면서도 순박한 미소가 그와 매우 어울린다.


태그:#김광규, #도쿄 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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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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