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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주 감독.
 이철주 감독.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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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가가 아닌 무명의 시민들이 거대한 토네이도를 꿈꾸며 통일을 위한 작은 날갯짓을 시작했다. 오는 8월 15일 오후 8시 15분, 1945명의 시민이 각국에서 남북의 대표 통일노래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한다. 동시에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 대표 클래식 곡도 연주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1000~3000원 사이 소액을 기부해 마련한 이 행사는 전세계로 생중계 할 예정이다. 광복 이후 최초의 시민 주도 통일 행사라는 '2015 천만의 합창-나비 날다'(아래 '나비 날다') 얘기다.

"광복 최초 시민이 주도한 통일 행사 열린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철주(51·문화기획자) '나비 날다' 총 감독은 두 가지 지점에서 이번 행사에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정부가 아닌 시민이 통일 행사를 주도했다는 점과 그 내용을 합창과 클래식 연주 등으로 채웠다는 점이다. 남과 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음의 거리를 좁혀, 형식적 통일이 아닌 진정한 사회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될 거란 뜻에서다.

큰 뜻을 품고 시작했지만, 이를 현실화 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올해 1월 황의중 서울 불암고등학교 국어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번 행사에는 현재까지 2400여 명의 시민이 추진위원으로 나섰다. 애초 목표는 1천만 명의 시민이 각자 1천 원씩 기부해 100억 원을 모으자는 것이었다. 대규모 공연을 대비해 잠실주경기장까지 예약했지만, 여러 현실적 조건으로 규모를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등을 행사 장소로 물색 중이다.

정부의 협조도 얻지 못했다. 통일부에도 후원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고 한다. 또 연주 예정이던 북한 교향곡 '피바다'도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항일 투쟁을 묘사한 작품인 이 곡을 꼭 연주하고 싶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한 그는 "정부가 통일부에 '통일문화과'까지 신설했다면, 적어도 문화 예술 분야만큼은 통 크게 열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거기에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참여도 어렵게 된 상황이다.

처음 꿈꾸었던 원대한 판은 깨졌지만, 그럼에도 행사는 진행된다. '미래의 발판'이 되겠다는 취지다. 또 문화가 가진 '특별한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평화음악회'를 기획하고, 북한음악 음반 8종을 국내에 출시하는 등 남북 문화 교류에 힘썼던 이 감독은 "문화는 두뇌가 아닌 심장을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북 대 반종북'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횡횡하는 지금 시대에서 "같은 말, 같은 책, 같은 예술적 체험을 공유하는 일"이 중간지대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문화는 심장을 움직이고, 심장은 혁명적 결단을 내린다"

- '나비 날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민족과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와중에 황의중 불암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잊히고 있으니 같이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다들 마음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있지 않겠느냐면서. 신선한 제안이라 기획자로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기존 남북 교류에서 나오는 전통, 국악 등 민족성을 내세운 협소한 주제보다는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문화 교류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장르를 클래식으로 택했다."

- 프로젝트 이름인 '나비 날다'는 무슨 뜻인가?
"나비가 날면 영향력이 생겨서 큰 바람을 일으킨다는 물리학 이론 '나비효과'에서 따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명망가 아닌 무명의 시민들이 천 원씩 모아 시작했다. 이런 작은 행동으로 날갯짓을 한다면 휴전선이 다 나비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날다'라는 표현은 자발성을 뜻한다. 지금까지 통일은 명망가나 정부, 단체가 주도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자기 발언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이 주도하자는 뜻이다."

이철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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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창곡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남과 북이 같이 부를 수 있는 대표적 곡들 중에 골랐다. 가장 편하게 부르는 게 아리랑이고, 그 다음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남북 간의 가사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리랑은 지금까지 많이 다뤄왔기에 이번엔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택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교과서에서 사라질 때도 있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남과 북에서 불리는 곡이니까, 이번에 마음을 담아 다시 불러보자는 취지다."

- 무대에 어떤 곡들이 오르는지 소개해 달라.
"이번 기회에 통일을 주제로 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공모전을 열어 클래식, 대중음악 작품을 접수 받았고, 전문가에게 의뢰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또 북한의 대표적 클래식 곡도 연주될 예정이다. 피아노협주곡인 <조선은 하나다>,  민족배합관현악 독창곡인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와 예전에 평양시민들이 즐겨 부르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 해외 동포들이 즐겨 부르는 <임진강> 등 6곡도 연주한다."

- 이번 행사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이름 없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음악회다. 정부 간의 통일은 정책적 다툼이 주를 이룬다. 이런 통일은 굉장히 협소한 통일이다. 그 정도 통일은 과거 독일에서 봤듯이, 통일 이후에 사회 통합을 위한 사회 비용이 많이 든다. 반대로 우리의 통일은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통일합시다'라고 외치는 건 단지 선언에 불과하다. 이번 행사는 해외동포를 포함해 남북의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통합의 길로 걸어 나가는 단초가 될 거라 생각한다."

- 이번 행사뿐 아니라 남북 문화 교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해온 걸로 안다. 다른 분야보다 문화 교류를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문화는 절대적으로 체험을 전제로 한다. 이성에 앞서서 감성이 작용한다. 두뇌가 아닌 심장이 움직이는 거다. 두뇌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반면 심장은 대단히 직관적이고 혁명적 결정을 내린다. 정부는 논리적으로 접근하되, 민간은 심장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로 한 핏줄로 받아들여야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겠나.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같은 말, 같은 책, 같은 예술적 체험을 공유하는 거다. 친구를 사귈 때도 같이 술 한 잔 하고 노래방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나.

통일을 조금 더 진보적으로 얘기하면 '운동권' 혹은 '종북'으로 규정한다. 반대로 국방을 강조하면 보수주의가 된다. 지금 같은 이분법 프레임이어선 안 된다. 이들의 중간 지대를 만들려면 북한과 소통을 늘려야 한다. 국가보안법 등 현실적 제약으로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면 인도적 지원과 문화·예술 교류로 시작해야 한다. 선전을 위한 북한 미술품이 법에 걸린다면 전통음악이나 클래식으로 우선 교류하되, 지속적이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진정한 통일이 언제 되겠나."

"문화·예술 분야만큼은 정부가 통 크게 열어 달라"

이철주 감독.
 이철주 감독.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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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던데.
"민간이 주도하는 통일 행사라면 당연히 정부가 후원할 줄 알았다. 통일부에 홍용표 장관이 행사에 와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고, 후원금과 후원 명칭 사용을 요청하는 공문을 3월과 5월 두 차례 보냈다. 하지만 아직 답이 없다. 이번에 연주 예정이었던 북한 교향곡 '피바다'는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허가를 못 받았다. 이 곡은 지난 2002년 전주시향이 연주곡으로 허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13년이 지난 지금 불허 방침을 내린 것은 남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통일부에 '통일문화과'까지 만들었다면 문화·예술만큼은 통 크게 열어줬으면 한다.

또한 교향곡 '피바다'는 북한 콘텐츠 중에서도 항일 독립운동을 가장 잘 다룬 작품이다. 광복 70주년에 맞춰 항일 투쟁을 묘사한 작품을 연주하려고 했는데 당국이 불허해 정말 아쉽다. 남북교류활성화법은 목적에 부합한다면 국가보안법보다 우선 적용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많은 제한이 따르는 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사회적 합의라고 본다.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선언한다고 정말 '대박'이 되는가. 천만 명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통일 합시다', '피바다 교향곡 연주 합시다'라고 요구할 때 그때 비로소 통일 대박이 이뤄진다고 본다." 

- 정치적 장애물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꼭 한번 이루었으면 하는 문화 프로젝트가 있나?
"북한 예술은 자기만의 예술 양식을 가지고 있다. 틀려서 나쁜 게 아니라 달라서 어색한 거다. 보편적 잣대에서 봤을 때도 낮은 수준이 아니다. 클래식의 경우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수준이다. 나는 북한의 재능과 남한의 자본이 결합하면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본다. '살사', '탱고' 등 특정 민족의 음악이 세계적 음악이 됐듯, 남과 북도 같이 만들면 세계적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한류다. 남과 북이 지난 70년 동안 동일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을 고민해왔다. 이들 중 장점만 취합해보자. 이를 위해선 정부가 통일예술센터 등을 만들어 적극 지원해야 한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통일, #광복절, #이철주, #나비 날다, #천만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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