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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 거다."

이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박명수 어록'의 일부다. '하면 된다' 혹은 '꿈은 이루어진다'와 같은 희망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젊은이들을 더욱 더 좌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는 알았나보다.

그래서 그는 늘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포기하라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여기에 대한 대답을 소설가 서진은 에세이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에서 들려준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았다

서른아홉에 피아노를 배우는 한 남자의 인생이야기
 서른아홉에 피아노를 배우는 한 남자의 인생이야기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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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른넷에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라는 소설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왠지 탄탄대로를 걸은 것만 같아 그의 이야기가 고깝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꽤 오랫동안 '한 페이지 단편소설'이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글을 써왔고 아내와 함께 사비를 들여 '보일라'라는 잡지를 만들었으며 자비로 자신의 소설을 출판했다. 그리고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밟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다.

그야말로 어느 날 영감이 떠올라 일필휘지로 소설을 써내려갔고 그 결과 한 번에 문학상을 타서 등단을 한 신데렐라와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는 거다. 그럼 그가 어떻게 소설가가 된 걸까?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도 되는 걸까?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평생을 살아온 내가?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학업을 그만두고 보일라 편집장으로 계속 일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기획하고 자잘한 원고를 썼다. 아침에 소설을 쓰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글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그게 자신이 소설가가 된 방법의 전부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그가 문학상을 타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 아니라 그저 쓰고 싶어서 매일 썼던 게 그의 인생을 바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었다. 혼자서 뭘 할려고? 뭐, 늘 하던 것이 있었다. 나는 글을 썼다.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것도, 1억 원짜리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썼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늦은 나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기위해서는 늦은 나이가 있을 수 없다. 즉, 소설가가 되기에는 늦을 수 있을지언정 글을 쓰기에는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각자의 꿈으로 바꾸면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축구선수가 되기에는 늦었지만 축구를 하기에는 늦지 않았다, 혹은 래퍼가 되기에는 늦었지만 랩을 하기에는 늦지 않았다고 바꿀 수 있겠다.

소설가 서진은 행복하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다만 욕심을 내려놔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서른아홉이 되어서 학원에 다니며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늦은 나이지만 피아노를 치기에는 늦지 않았으니까.

"어릴 적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대학생 땐 왠지 피아노를 배우기엔 나이가 든 것 같아 학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갑작스럽게 내가 신청서를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중략) 진부한 말이지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무리 늦다고 생각하더라도 한번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 피아노든 색소폰이든, 혹은 수영이든 운전이든, 영어든 중국어든, 소설 쓰기든 시 쓰기든 기회가 닿지 않아 배워보지 못한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중략) 인생은 길고, 우리가 즐기고 배워야 할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게 무언가 있다면 재지 말고 따지지 말고 그냥 해보는 건 어떨까.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그러다보면 뭔가 될 수도 있겠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절대 늦지 않았다. 그 증거가 여기에 있다. 바로 소설가 서진 그 자체다.

덧붙이는 글 | 출판사 엔트리/ 출간일 2015년 04월 20일/ 288쪽/ 446g/ 140*205*20mm/ 정가 14000원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진 지음, 엔트리(2015)


태그:#서진, #서른아홉,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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