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비수사>의 스틸컷.

영화 <극비수사>의 스틸컷. ⓒ (주)쇼박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곽경택 감독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2001년 800만을 동원한 영화 <친구>이다. 부산을 배경으로 동창 4명이 펼치는 질풍노도 같은 시절의 이야기를 걸쭉하게 담아낸 영화는 누아르와 의리라는 정서를 기묘하게 파고들면서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이 영화의 성공을 기점으로 2000년대 초반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들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그런데 영화 <친구>의 매력은 4명의 주인공이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청년 시절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당시의 추억을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되살려 놓으면서 관객들이 학창시절의 풋풋한 추억에 빠져들 수 있게 한 것이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주인공들이 성인이 된 후반부는 폭력수위도 높아지고 특히나 지나치게 질펀한 대사들은 다소 거부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명대사도 탄생하긴 했지만.

이후 곽경택 감독의 작품 목록을 보자. 영화 <친구>의 흥행에 힘입어 '대작' 감독으로 자리매김할 기회였던 작품들은 예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챔피언>, <태풍>) 그리고 멜로물이지만 멜로물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과격한 표현법이 더 두드러졌던 <사랑>이나 <통증>같은 작품들도 있다. 전반적으로 곽경택 감독의 영화는 지나치게 과격한 표현이 때로는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독으로 작용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전과 다른 표현법 선보인 <극비수사>

 영화 <극비수사>의 스틸컷.

영화 <극비수사>의 스틸컷. ⓒ (주)쇼박스


이번에 선을 보인 <극비수사>는 이전에 봐온 곽경택 감독의 영화와는 한층 다른 표현법과 톤이 자리하고 있다. 야구 투수에 비유하자면 늘 강속구로 타자들을 윽박지르던 투수가 변화구도 곁들이고 공의 빠르기보다는 제구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타자들을 현혹하는 스타일로 변신한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소재부터가 독특하다. 유괴범을 잡기 위해 무속인 도사와 형사가 한팀이 되어 수사에 나선다는 설정인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다. 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유괴사건을 소재로 다룬 이 영화는 시작 부분에서 당시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빠른 박자로 담아내고 있다. 곽경택 감독은 자신의 유소년기를 보낸 부산의 1970년대를 매우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시내버스부터 공중전화까지 그의 손끝 하나하나가 1970년대의 디테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또한, 곽경택 감독이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특유의 과격함과 질펀함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는 표현법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 속의 배경이 된 1970년대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삼엄하고 무자비한 폭력이 스스럼없이 자행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곽경태 감독은 삼엄함과 무자비함 그리고 답답하고 속 터지는 공권력의 경직됨을 영화 속 배경으로 깔아놓고 관객들에게 알아서 느끼도록 한다. 그런 배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과격함과 무자비함을 드러내지 않게 하더라도 충분한 긴장감이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중심인물인 공길용 형사와 무속인 김중산을 연기한 김윤석과 유해진은 꽤 캐릭터의 개성이 강한 배우들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 속에선 절제의 미를 통해 흥미로운 케미(궁합)를 발산한다. 김윤석의 공길용 캐릭터는 그의 출연작 중의 하나인 <거북이 달린다>에서 맡았던 형사 캐릭터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한층 안정된 톤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코믹한 이미지가 더 드러나 보이던 유해진은 말 한마디 자체에 깊은 호소력이 묻어나는 톤으로 영화 속에서 도사 김중산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영화 속에서 유괴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내부의 적이었는데, 사사건건 공길용의 수사에 훼방을 놓는 동료 경찰들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벌어진다. 이것도 실화였고, 정작 사건을 해결한 공길용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이들은 사건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도리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갈 뻔한 위기를 자초한 방해꾼들이었다는 사실이 관객들의 공분을 자아낸다.

또한, 김중산의 스승 무속인도 유괴된 아이가 살아 있다는 김중산의 제언을 무시한다. 김중산을 나무라다가 정작 사건이 해결되자 자신이 스승이었음을 최대한 이용하여 온갖 실리를 챙긴다. 이런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영화가 아닌 실화라는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소신'

 영화 <극비수사>의 포스터 사진.

영화 <극비수사>의 포스터 사진. ⓒ (주)쇼박스

모두가 아니라고 말하고 포기하려던 시점. 소신 있게 우직한 행보를 보인 공길용과 김중산은 결국 이러한 삶을 통해 대가를 얻게 된다. 우직함과 인정에 기반을 둔 '소신'은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이며 관객들의 감동을 끌어내는 핵심이다. 특히 권력과 재력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어떤 관객의 한마디가 인상 깊게 들려왔고 뇌리에 남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은 바뀐 게 없는 것 같네"라는 말이었다. 1978년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꼼꼼하게 챙긴 고증만을 제외하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무려 37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공길용과 김중산처럼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다해 우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영화가 지닌 가치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영화 <극비수사>는 올 상반기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칭찬받아 마땅한 영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극비수사 곽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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