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밀한 유혹>의 스틸컷.

영화 <은밀한 유혹>의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여배우 임수정은 나이를 무색게 하는 방부제 동안의 미모를 과시하는 흔치 않은 배우 중의 한 명이다. 2003년 출세작 <장화, 홍련>에 나왔을 때나 2012년 생애 첫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겨준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나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별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공포부터 로맨틱 코미디까지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함을 넘나든다. 그래서 그녀의 출연작은 늘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까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다.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3년 만에 그녀가 스크린에 복귀했다. 로맨틱 스릴러 장르의 영화 <은밀한 유혹>을 통해서이다. 임수정 못지않게 무결점 미모(?)를 보유한 꽃미남 유연석과 함께 출연한 영화 <은밀한 유혹>은 백만장자의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와 반전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은 2007년 미드 스타일을 스크린에 잘 녹여낸 스릴러 <세븐 데이즈>의 각본을 쓰고 2009년 스릴러 장르 영화 <시크릿>으로 연출에 데뷔했던 윤재구 감독이 맡았다.

임수정 마니아를 자처하는 필자로선 과연 이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는지에 대해 개봉 전부터 궁금증을 지울 수 없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서서히 고개가 의아함에 갸웃거려지기 시작했다.

백만장자의 아들은 죄다 '실장'? 줄거리도 뻔하다

 영화 <은밀한 유혹>의 스틸컷.

영화 <은밀한 유혹>의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우선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초반부터 주인공의 출신 배경과 백만장자 김석구(이경영 분)의 성격 형성의 주요 원인이 각각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묘사된다. 배우들은 연기를 통해 극을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무언극의 연사가 되어 극의 주요 줄거리를 설명해야 하는 사명감(?)을 떠안는다.

이 영화를 연출한 윤제구 감독은 전작 <시크릿>에서도 필요 이상의 설명적인 장면으로 스릴러 본연의 긴장감을 영화 막판에 스스로 흩트려 놓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걸핏하면 사사건건 등장인물들이 모든 사건과 인물들의 배경을 친절하고 장황하게 설명해준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사채에 시달리는 주인공 유지연(임수정 분)은 백만장자 김석구의 간병인으로 자연스럽게 안내받게 된다. (왜 백만장자들은 매번 휠체어에 의지하며 사는 것일까? 간호인을 받아들이기 위한 필연적인 숙명일까?) 모든 욕망을 가득 채운 백만장자의 곁엔 잘못된 욕망 사용법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세상에 나오게 된 배다른 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백만장자 아들의 호칭은 죄다 '실당님'(최지우식 발음)으로 통한다. 이 영화에서도 뻔한 공식이 스스럼없이 적용된다. 김성열 실장(유연석 분)은 김석구한테서 제대로 된 아들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살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버린 김석구에 대한 증오심을 어릴 적부터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김석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김성열 실장은 차근차근 임무 시나리오를 집필한다. 그리고 그 임무의 핵심은 다름 아닌 김석구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를 섭외하는 것. 마카오 땅에서 한국말 잘하는 한국 여자를 찾는 것은 아무래도 영어 잘하는 홍콩 여자를 찾는 것보다는 확률 낮은 게임일 것이다.

계략에 이용하기 위한 마땅한 후보감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성열은 로또에 당첨이라도 되었는지, 늘 머리와 마음속에 돈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유지연을 발견한다. 게다가 유지연은 김성열 실장의 아버지 김석구의 이상형과 가장 일치하는 외모를 지녔다는 덤까지 얻는다.

유지연은 김성열의 계획을 듣고 "제가 왜요?" 등의 반문과 온갖 한숨을 다 내쉬지만 결국 밀려오는 채무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성열의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유지연은 김성열이 시키는 대로 열연(?)하며 김석구의 마음을 사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이후 줄거리 전개는 지나칠 정도로 뻔하디뻔하게 진행된다. 누구도 섣불리 꺼내려 하지 않았던 금기사항은 유지연의 입에서 천연덕스럽게 나오고 이를 통해 유지연은 김석구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되고, 좀 더 김석구의 마음을 얻는 발판을 마련한다.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역시나 계획대로 유지연은 김석구의 청혼을 받게 되고, 둘은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유지연은 간호인에서 일약 백만장자의 아내로 신분 급상승을 하게 되고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런데 김석구같은 백만장자들 대한민국에 수두룩한 게 요즘의 현실인데, 김석구의 유람선 주변에 취재를 위해 몰려든 기자들을 보면서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기사 쓸거리가 그렇게 없느냐는 삐딱한 생각이 잠시 들게 되었다.

김석구는 애석하게도(?) 유지연과 신혼 첫날밤을 맞이하기 직전 의문사를 당하게 된다. 의문사 장면이 나오기에 앞서 영화는 나름 복선을 깔아보려는 장치들을 마련하지만, 범인은 참 쉽게 밝혀지고 그 이유도 너무 상투적이다.

유지연은 이후 살인누명을 뒤집어쓰는데 그 과정도 허술하기 그지없다. 아주 누명을 뒤집어쓰려고 작정한 듯 허술한 대응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경찰서 유치장 신세로 전락한다. 천연덕스럽게 유지연의 뒤통수를 친 김성열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김석구의 재산을 물려받고 어깨 쭉 펴고 지내게 된다.

그런데 유지연이 누명을 벗기 위해 김석구의 장례식장에 참석을 시도하고 그 과정이 너무도 손쉽게 해결된다. 단지 대사 몇 마디만으로. 나름 영화 줄거리 전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김석구네 집사 진경(혜진 분)의 심경의 변화도 아주 쉽게 일어난다. 도대체 유지연을 어디서 봤다고 그렇게 쉽게 믿어주는 것일까. 정작 그녀의 범죄를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던 그녀가 말이다.

또한, 유지연을 체포한 형사는 어찌하여 변호사에게 약점이 잡힐 만큼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녔을까. 모든 것이 아주 계획대로 맞춰진 퍼즐처럼 유지연은 김석구의 장례식에 가서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누명을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결국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인 유지연의 감시에 고작 평범한 순경 차림의 경찰 두 명을 붙여 놓다니, 이런 허술한 경비가 따로 있을까.

영화의 이 대사, 배우가 더 일찍 했어야

 영화 <은밀한 유혹>의 스틸컷.

영화 <은밀한 유혹>의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예상대로 '쉽게' 흘러가고 그나마 긴장감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였던 후반부의 유람선 격투신도 아주 싱겁게 마무리된다. 유지연과 김성열의 신세는 뒤바뀌게 되고, 유지연은 빚쟁이에서 간호인으로 다시 재벌부자의 여인에서 살인범으로 내몰렸다가, 마침내 어마어마한 재산을 거느린 대부호의 신세로 뒤바뀐다.

그냥 싱겁게 마무리하기는 찝찝했는지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유지연의 알듯 모를 듯한 미소로 나름 복선을 깔아보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가 무색하게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은 채 무색 무미 무취의 형태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은 <은밀한 유혹>이었지만 영화 속의 유혹은 그리 은밀하지 않았다. 오히려 1993년 개봉했던 같은 제목의 헐리우드 영화(데미 무어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끈적한 케미가 돋보였고,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영상미가 빛을 발했던 영화)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임수정이란 배우의 생명을 단축하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희대의 졸작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임수정이 연기한 유지연은 영화 초반부에서 김성열의 제안을 받고 "제가요? 어떻게요? 못해요. 안 해요"와 같은 대사를 쏟아낸다. 이 대사는 실제로 이 영화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은밀한 유혹 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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