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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하고 있다.
 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하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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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님을 부모 모시듯

그날 오후 5시 무렵 홍 시인은 닭에게 밥을 주고자 부엌에서 정성껏 닭 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니까 바보 숲 농원의 닭 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무척 다양했다. 무려 14가지라고 했다. 홍 시인 부인이 손을 꼽으며 하나하나 가르쳐줬다.

옥수수, 청치(파란 쌀), 미강(쌀겨를 발효한 것), 고추씨, 들깻묵, 풀씨, 물고기 발효하여 말린 것, 숯가루, 석회, 소금, 콩비지, 부엽토, 규석 등이라고 하는데 남한강에서 어부들이 잡은 배스나 부르길과 같은 생태계 파괴 외래종 물고기를 여주시에서 매입하여 바보 숲 농원에 무상 공급해 준다고 했다.

이는 어부에게도 농원에게도 이익을 주며 남한강의 어류도 보호하는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여주시의 정책이었다. 한달에 두 번씩 여주시에서 공급하는 물고기를 받으면 즉시 가마솥에 넣고 푹 고은 다음 여기에 청치 미강 등을 넣고 이를 건조기에 말린 뒤 닭 밥으로 쓴다고 했다. 농원의 가마솥은 무쇠 솥으로 이 무더운 여름날에도 장작으로 불을 땠다.

그는 당신 집 700여 마리의 닭님을 마치 효자효부가 부모 모시듯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러자 닭님들도 그들 부부를 따르며, 자기들의 가장 귀한 달걀도 주고, 자기들 마지막 몸뚱이마저 주인에게 기꺼이 맡기고 있었다.

홍 시인이 닭밥을 주고자 삽으로 뜨고 있다.
 홍 시인이 닭밥을 주고자 삽으로 뜨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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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하늘의 뜻

홍 시인이 준비한 닭님 밥을 수레에 담아 닭장으로 가자 어느 새 사방의 닭들이 "식사집합 모여!"라는 구령도 없었는데 잔뜩 몰려들었다. 마치 훈련소 훈련병들의 '식사집합 모여!'처럼….

홍 시인이 밥통에서 삽으로 밥을 퍼 담아주자 그들은 궁둥이를 뒤뚱거리며 마냥 좋아서 활개를 쳤다. 그런데 언저리 참새들도 그들의 밥 때를 알고 닭장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마도 날마다 그런 모양이었다. 닭들의 만찬이 끝나면 곧 기다렸던 참새들이 모이통 언저리로 몰려와 닭님들이 남긴 밥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모양이었다. 주인도 닭님들도 그런 참새를 흐뭇이 바라보았다.

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식사시간 때를 알고 집합하고 있다.
 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식사시간 때를 알고 집합하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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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모이통에서 만찬을 즐기는 닭님들
 닭장 모이통에서 만찬을 즐기는 닭님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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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횃대에서 닭님들의 만찬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참새들.
 닭장 횃대에서 닭님들의 만찬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참새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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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사람이나 닭이나 참새나 모두 하느님의 자손들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 세상 삼라만상에 내 것은 없다. 애초 하늘의 뜻은 이 세상 뭇 생명들이 네 것 내 것 없이 골고루 나누어 먹으라고 만물을 창조하였을 것이다. 나는 문득 홍 시인이 이 시대 성자처럼 우러러 보였다. 

부부가 700여 마리의 닭님 돌보느라 힘에 부치지 않느냐고 묻자 이제는 이력이 나서 괜찮다고 하면서 닭님 보호는 자기 부부만이 아니라 바보 숲 농원의 한강이, 두강이, 한메, 두메(개들 이름)들도 밤낮으로 닭님들을 지켜준다고 했다. 그들(개님들)은 어떻게나 착한지 행여 닭님들이 나들이 갔다가 귀가가 늦어 비라도 맞으면 자기 집 안에 닭님들을 들게 하고 자기들은 밖에서 비를 쫄딱 맞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까지 들려줬다.

닭장을 지키는 한강이가 낮에는 제 집에서 쉬고 있다.
 닭장을 지키는 한강이가 낮에는 제 집에서 쉬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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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님들이 여러 마리가 되고 닭장도 크고 여러 동이 되다보니까 이따금 오소리나 길 고양이들에게 서리도 당한다고 했다. 그래서 홍 시인은 밤에도 몇 차례 전지를 들고 닭장을 돌면 닭님들이 주인을 알아보고 '구구구' 소리로 화답하면서 그렇게 좋아한다고 했다. 한 번은 닭 서리꾼이 닭장을 침입하여 닭 한 마리를 가져갔는데 이튿날 닭장에 가보니 두 마리가 자진해 있었는데 아마도 서리꾼이 잡았다가 놓친 닭이 크게 놀란 나머지 그렇게 자진한 모양이라고, 모든 짐승들은 그렇게 사람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농원 주인 홍 시인이 달걀을 줍고 있다.
 농원 주인 홍 시인이 달걀을 줍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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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시인의 깊은 뜻

그는 닭장을 돌면서 닭님들이 낳은 따끈한 달걀들을 주웠다. 그 자세가 아주 진지했다. 당신에게 달걀을 준 닭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그런 자세였다.

"드셔 보세요. 아마 고소할 겁니다."

그는 닭장에서 금방 주운 달걀을 두 손으로 내게 주었다.

나는 그가 건넨 달걀을 참으로 오랜만에 이빨로 양쪽 귀퉁이에 깨트린 뒤 그대로 마셨다. 그의 말 대로 고소했다. 지난날은 사람들이 그렇게 달걀을 깨트려 마셨다. 특히 목을 많이 쓰는 가수나 아나운서나 교사들은. 따끈한 밥에 날달걀을 깨트려 넣고 간장을 한 숟갈 넣어 비벼먹으면 최고의 밥상이었다.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핸들을 잡은 정용국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자주 바보 숲 농원을 드나들기에 홍 시인 농원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바보 숲 농원에서 생산된 달걀은 모두 유정란으로 시중 계란보다 서너 배 비싼데도 이즈음 소문이 나서 물량이 딸린다고 한다. 강남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농원을 찾아와 전량 독점 수매해 가겠다는 데도, 홍 시인은 굳이 그들과 독점계약을 해 판매치 않는다고 했다.

당신 달걀을 여러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싶다는, 당신이 생산한 달걀마저 부자들의 입에 독점시키지 않겠다는 들사람의 얼이 담긴 깊은 뜻이라고 했다.

그날 '바보 숲 농원'에  모인 문우들(오른쪽부터 김영현, 김남일, 홍일선, 이승철, 전홍표, 김이하. 정용국 시인은 뒤간 볼일로, 필자는 카메라 셔터 누르느라 빠졌다.)
 그날 '바보 숲 농원'에 모인 문우들(오른쪽부터 김영현, 김남일, 홍일선, 이승철, 전홍표, 김이하. 정용국 시인은 뒤간 볼일로, 필자는 카메라 셔터 누르느라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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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여주터미널에서 원주행 막차를 놓쳐, 하는 수 없이 양평 역으로 갔다. 양평 역 밤 11시 54분 막차를 타고 원주로 돌아오자 이튿날 새벽 1시 무렵에야 집에 도착했다. 종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그런 모습과 얘기를 들어도 피곤한 줄 몰랐다. 

나는 홍 시인이 이 시대 하느님의 사도요, 성자 같아서 그 느꺼움으로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시대 사도나 성자는 어쩌면 깊은 산골이나 강가, 바닷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 다음 회는 '바보 숲 농원'의 당나귀 이야기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홍일선 시인 부부가 사는 여주 여강 강가.
 홍일선 시인 부부가 사는 여주 여강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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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홍일선, #바보숲 농원, #닭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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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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