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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선 시인의 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다. 이 닭님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닭님들이다.
 홍일선 시인의 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다. 이 닭님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닭님들이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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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경전


어머니 당신은 오직 흙만 믿었지요
아직 근력 있을 때 들에 나가는 것을
덕 쌓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곡식들은 사람 발자국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놀리는 것이
흙에게 죄 지으시는 거라고
마당귀퉁이 빈 터에도
서리태콩 심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당신이셨습니다.

- 홍일선 시집 <흙의 경전> '어머니 발자국 소리에 벼 익어가다'


홍일선 시인은 1950년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 돌모루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이즈음은 여주 여강 강가에서 농사를 지으며 닭님과 개님과 당나귀님과 더불어 사는 농사꾼 시인이다.

내가 그와 인사를 나눈 것은 20년쯤 된 것 같다. 몇 해 전 그가 내가 사는 원주로 나들이 왔고, 그 인연으로 재일동포문인들의 초청에 동행하여 도쿄의 한 숙소에서 이틀 밤을 동침한 사이로 발전하였다.

나는 그를 만나면 마치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이웃 농사꾼 아저씨를 만난 듯, 마음이 편하고 한껏 푸지다. 그가 들려준 얘기는 온통 농사짓는 얘기나 닭이나 개, 당나귀 얘기라 헤어진 뒤에도 아주 상큼하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한참 귀 기울이면 삼라만상, 특히 그의 언저리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님이시다. 흙님, 숲님, 강님, 햇빛님, 달님, 곡식님, 닭님 … 등 마치 만해 한용운 님이 환생하신 듯하다.

'바보 숲 농원' 어귀 의 현판
 '바보 숲 농원' 어귀 의 현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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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농사꾼

그는 그렇게 우주의 삼라만상을 '님'으로 섬기고 사는, 이 시대 보기 드문 그런 착한 농사꾼이다. 문인들의 이런저런 모임 때마다, 또는 전화로 여러 차례 당신 마을에 나를 초대했지만 여태껏 가보지 못했다.

지난 금요일(17일) 그의 전화를 받고 곧장 차비를 차려 나섰다. 아마도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후배들이 그날 당신 농원에 온다는 말에 내 귀가 솔깃했나 보다.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여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여주로 간 뒤 거기서 택시로 옮겨 타고 여강(남한강) 쪽으로 한참 달리자 마침내 점동면 도리마을 '바보숲 명상농원'이 나타났다. 택시에서 내리자 '꼬꼬댁'하는 닭님들이 소리가 온통 요란하다.

'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가족 단위로 나들이하고 있다.
 '바보 숲 농원' 닭님들이 가족 단위로 나들이하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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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으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수백 마리의 닭님들이 농원 여기저기서 제 마음대로 뛰놀고 있다. 닭장 둥지에서는 '꼬꼬댁 꼬꼬' 암탉이 알을 낳았다고 주인에게 신고하는 소리도 들렸다. 정말 나는 오랜만에 닭들의 요란한 합창에 마치 60년 전의 유년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 살았다.

지난날 사람들은 닭과 소와 돼지 등 여러 가축과 더불어 살았다. '닭 우는 소리'는 곧 '생명체'를 뜻했다.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에 밤 시간을 가늠했고, 달걀은 귀한 반찬거리였으며, 조상의 제삿날에는 닭을 잡아 제상에 올렸다. 그렇게 사람과 더불어 살던 닭들은 그 언제부터 집안에서 점차 사라져 이즈음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양계장에서나 볼 수 있다.

몇 해 전, 한 양계장에 갔더니 수천 마리의 닭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양계장의 닭들은 자기 몸도 180도 회전할 수도 없는 좁은 철장에 갇혀 부리도 잘린 채 자동으로 배급되는 모이와 물을 먹으며 지냈다. 닭장에는 밤에도 환한 전깃불을 켜 두었는데, 이는 닭들이 잠자지 말고 많이 먹고, 알을 더 많이 낳으라는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였다. 그런데 그 밀폐된 닭장 안은 온통 닭똥 썩는 냄새로 숨을 들이킬 수조차 힘들었다.

양계장에서 그렇게 자라는 닭인들 왜 스트레스와 병이 없겠는가. 양계장 농장주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 사료에 온갖 항생제를 섞고 있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늘의 우리는 그렇게 생산된 달걀을, 닭고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그래도 닭장에 있는 암탉들은 선택받았다. 이즈음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거의 살처분된다고 한다. 돼지나 소들도 수컷은 이들의 신세나 비슷하다. 축산에도 자본의 논리로 가축들이 생산되고 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얻고자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다.

닭님들이 땅에다 둥지를 만들어 흙찜질을 하고 있다. 닭님들의 최상의 피서법이요, 그들 몸에 붙은 벌레를 퇴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닭님들이 땅에다 둥지를 만들어 흙찜질을 하고 있다. 닭님들의 최상의 피서법이요, 그들 몸에 붙은 벌레를 퇴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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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슬픈 닭님 이야기

이즈음 대부분 사람들은 하느님 곧 자연의 뜻을 외면한 채, 가축을 기르는 게 아니라 공장의 제품처럼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가축들은 자연교미도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알이나 새끼를 낳고, 이익 한계점에 이르면, 곧장 도살되거나 폐계 처분으로 삼겹살집이나 치킨 집으로 가고 있는 현실이다.

나는 홍 시인의 바보 숲 농원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사람과 닭님들이 더불어 공생 공락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이날 홍 시인은 특별히 마음을 먹고 평소 가까이 지낸 문우들을 초대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이승철, 김영현, 김남일, 정용국, 김이하, 전홍표씨 등이 속속 도착했다. 손님들은 홍 시인 부부의 바보 숲 농원 이야기와 구경에 넋을 잃었다. 

바보숲 농원'의 주인 부부(홍일선 시인과 부인 임은희 여사)가 닭장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들이 바로 성자다.
 바보숲 농원'의 주인 부부(홍일선 시인과 부인 임은희 여사)가 닭장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들이 바로 성자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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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시인 부부는 11년 전인 2004년 이 여주 여강(남한강)마을에 3천 평의 농지를 매입하여 정착하였다. 그들 부부가 닭님을 기르게 된 사연이 아름답고도 슬펐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함평출신 소설가 이상권 아우가 고향에 가서 장날 토종병아리 몇 마리를 사다가 집에 닭장을 만들어 길렀다.

몇 해 지나자 100여 마리로 늘어났다. 2007년 AI 조류 독감이 그 일대에 덮쳤다. 이 작가는 당신이 애지중지 기르던 일부를 시청 직원에게 빼앗겨 모두 살처분 당했다.

이 작가는 더 이상 살처분 당한 꼴을 볼 수 없어 그 가운데 암탉 4마리와 수탉 한 마리를 빼돌려 숨긴 뒤 동네사람 몰래 길렀다. 마치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숨어사는 것처럼….

하지만 닭들은 주인의 애간장 타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예사 때처럼 울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만 이웃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 작가는 그때 문득 여주 여강(남한강) 강가에 사는 홍 시인 바보 숲 농원이 떠올랐다. 그는 자기 닭들을 그곳으로 피난시키기로 작정하고, 다섯 마리의 닭들을 승용차에 태운 뒤 이른 새벽 점동면 도리마을로 달려와 떨어뜨려 놓고 갔다. 그때 그는 자식을 떼어놓고 가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단다.

그 다섯 마리가 그동안 늘어나 지금은 700여 수의 대식구가 되었다. 물론 그 사이 늘어난 닭님은 수만 마리도 더 되었을 테고, 그 닭님들은 홍 시인 부부의 주요 생계수단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시인의 농원답게 바보 숲 농원 곳곳에는 시의 걸개가 걸려 있다.
 시인의 농원답게 바보 숲 농원 곳곳에는 시의 걸개가 걸려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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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사도

바보 숲 농원에는 병아리 부화에서부터 자연 그대로였다. 내가 찾은 그날도 농원 닭장 안에는 몇 마리의 암탉들이 이 무더운 날에도 알을 품고 있었는데. 곧 병아리로 부화하면 주인은 그 닭님들을 유치원 과정, 초중등 과정을 거쳐 마침내 어른이 되면 큰 닭장으로 보낸단다. 큰놈과 어린놈을 한데 섞어두면 아무래도 어린 병아리들이 큰놈들에게 치이기 때문에, 홍 시인 부부는 거기에까지 세심한 배려로 단계 별로 병아리닭장, 영계 닭장, 등 별도의 닭장을 두고 있었다.

바보 숲 농원 영계 닭장
 바보 숲 농원 영계 닭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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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숲 농원의 700여 마리의 닭님들에게 아침 점심 밥은 자급자족케 하고 저녁밥만 준다고 했다. 주인이 닭장 문을 열어주면 그들은 가족끼리 들로 산으로, 강가로 나가 제 나름대로 먹이를 구해 먹으며 뛰논다고 했다. 그들은 풀도 뜯어 먹고, 푸성귀의 씨앗도 먹고, 습지에서 벌레도, 지렁이도, 미꾸라지도 잡아먹는다.

대체로 수탉 한 마리가 10여 마리의 암탉을 거느리고 다니는데, 수탉은 암탉의 먹이를 찾아주고, 보호하느라 여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홍 시인은 한 부인 거느리기도 힘든 이 세상에 10여 부인을 거느리는 수탉은 아마도 애간장이 다 타고 없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주었다. 수탉이 열 마리가 넘는 암탉을 거느리는 지혜를 얘기하는데, 그 수고가 대단했다. 그 이야기에 문우들은 한 마디씩 뱉었다.

"사람이나 닭이나 수컷은 힘든 세상이다."
"사람이 닭보다 못하다."
"요즘 세태가 닭 세계를 닮아간다."


수탉이 암탉에게 사인을 보내고 있다. "여보, 나 곧 당신 등에 올라갈 거야."(19금)
 수탉이 암탉에게 사인을 보내고 있다. "여보, 나 곧 당신 등에 올라갈 거야."(19금)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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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홍 시인에게 사료는 무얼 주느냐고 물었다.

"선생님, 저희는 사료를 주지 않습니다."
"네에?"
"저희는 밥을 줍니다."


나는 그에게 또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문득 홍 시인이 하느님의 사도처럼 우러러 보였다. 

[바보 숲 농원 닭님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최근 한 TV에 여강(남한강) 강가에 사는 '홍일선 닭님 이야기'가 나간 뒤 여러 사람들이 바보 숲 농원으로 찾아와 농사꾼 부부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오는 7월 26일(일요일) 오후2시 여주시 점동면 도리마을 회관(031-886-0151)에서 홍일선 시인이 닭님 이야기 특강을 개설하였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그날 그곳으로 가십시오.



태그:#홍일선, #농부시인, #바보숲 명상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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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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