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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에 도착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 이곳에 한 번 발을 디디면 못 빠져 나올 거 같다. 공단에서 일을 구하려면 파견 업체에 가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 서서 앉아 있으니 직원이 한 명씩 불렀다. 들어가는 사람들이 굽실거리며 면접을 잠깐 보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인력 시장에 팔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곧 팔려가겠구나 싶었다. 허탈함이 들고, 속상했다. 내 이름이 불리고 나도 어디론가 팔려갔다." - 파견 노동자

공단에서 일하는 파견 노동자와의 인터뷰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이가 느낀 감정을 어떻게 차별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누군가와의 비교로 이야기 한다. 쉽게 '엄친아'를 떠올리면 된다. '엄마 친구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다더라', '엄마 친구 아들은 이번에 전교에서 몇등했다더라'.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차별은 비교를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일터는 어떨까? 보통 일터에서의 차별은 임금 차별, 대우의 차별과 같은 차별적 '처우'로 이야기된다. 부당한 대우, 차별적 처우는 특정한 대상과의 비교를 바탕으로 한다. 법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노동과 관련된 차별 시정 제도인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기간제법)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파견법)의 차별 개념은 다음과 같다.

기간제법 제8조(차별적 처우의 금지)
①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사용자는 단시간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파견법 제21조(차별적 처우의 금지 및 시정 등)
①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임을 이유로 사용사업주의 사업 내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파견근로자에게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와 같은 법률은 일터에서의 차별 개념을 비교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 그 비교 또한 동종 또는 유사 업무의 노동자, 임금 그 밖의 근로 조건만으로 제한한다. 결국 법은 차별을 정형화하고, 법이 제한한 차별 개념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차별에서 제외한다.

이와 같은 차별 개념으로 파견 노동자가 느낀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차별 경험을 설명할 때, 어떠한 특정한 사건보다는 자신이 구직 활동을 하고 일을 하게 되며 경험하는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 개념을 재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모욕감과 무시를 통한 차별의 재구성

 건설노동자들이 쓰는 간이화장실, 건설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박혀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쓰는 간이화장실, 건설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박혀 있다.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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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보통 하나의 사건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사건으로 드러나기 전부터 차별은 존재한다. 이와 같이 드러나지 않은 차별을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차별 당사자들이 느끼는 모욕감과 무시를 주목해야 한다.

"식당에 들어가면 간부 식당과 노동자 식당이 따로 있다. 반찬부터 다르다. 식당에서의 대우도 다르다. 화장실도 거의 간이 화장실인데 여름철에는 구더기에 파리가 날리고, 겨울에는 똥덩어리들이 얼어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런 거라고 생각이 박혀있다. 사람이 사는 데 기본적인 것, 먹고 사는 것에서 오는 차별에서 내가 건설 노동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 건설노동자

2016년 최저임금 결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 사람이 글을 남겼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보다, 육체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공장 노동자를 못 배우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누가 육체 노동을 하겠나며, 최저임금 인상은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노동에서의 차별은 이처럼 사람들이 느낀 '가치 훼손의 경험'이다. 건설노동자라는 이유로 사회와 공장에서 느끼는 모욕감, 공장 노동자를 못 배운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느끼는 분함 같은 감정은 존엄의 훼손에 대한 경험이며, 차별의 경험이다.

이렇게 모욕과 무시를 통해 차별을 설명하면 임금이나 현장의 처우로만 국한될 수 있는 문제 해결을 다른 방법으로 구성할 수 있다. 식당의 반찬, 대우, 화장실이 바뀐다고 해서 건설 노동자가 경험하는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차별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은 이들이 존엄성을 회복할 때다. 육체 노동의 가치, 건설 노동자의 존엄을 회복해야만 이들의 차별 경험은 사라질 수 있다. 이들의 가치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동등한 대우, 동등한 임금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동등한 대우와 동등한 임금이라는 구호는 허공에 떠버리고 만다.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자본

이와 같이 노동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차별은 자본주의 역사에 언제나 존재해왔다. 아동, 여성, 인종, 학력, 국적과 같은 정체성은 자본주의 역사 전체를 관통해온 차별의 역사다. 자본은 낮은 임금, 위험한 작업에 낮은 위치의 사람들을 몰아넣으며 무수히 많은 이득을 얻었다. 이와 같은 차별에 노동자는 저항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법을 지키라는 외침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우리를 존엄한 사람으로 대우하라는 저항의 외침이 있었다.

노동자의 저항에 자본은 잠시 물러났지만, 다시 '차별'을 끄집어 와 노동자의 저항을 무마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의 등장이었다. 비정규직 제도의 도입, 직무와 직제의 다양화, 끊임없는 구조 조정은 성·인종·장애·학력 등 전통적 차별의 힘과 맞물려 저항의 힘을 무력화하고 노동자를 분리했다.

효율성 또한 등장했다. 자본이 효율적이라고 말하는 방식대로 노동자들은 배치됐다. 무엇이 효율적인지 알 수 없었다. 노동의 가치는 노동자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오직 자본에 의해 결정됐다.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는 과정에서 자본은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사람,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해도 되는 사람으로 노동자의 가치를 결정했다.

계속되는 저항에도 자본은 점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다. 사회에서 발휘되는 차별의 힘이 적극 활용됐다. 저학력 노동자, 고령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이 낮은 곳으로 밀려났고, 강력한 구조 조정의 힘에 의해 형성된 비정규직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낮은 가치의 노동으로 만들었다. 특정 직무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명명하며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했고, 어떠한 일에서 중심 업무와 주변 업무를 규정해 주변 업무에는 낮은 가치를 부여했다.

이 같은 과정은 인격과 존재의 위계화 과정이었다. 위계화는 임금을 적게 주거나 노동 조건을 나쁘게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업 안에서 그 사람의 위치를 특정하고, 그 위치에 따라 노동자의 존재와 인격을 차등화했다. 이 과정은 나의 위치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의 위치도 각인하도록 만들었다. 작업복 색깔, 호칭, 휴가 사용, 휴게실 사용 제한, 현장통제는 이와 같은 위계화 과정의 현상이었다. 결국 위계화 과정, 노동에서의 차별은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했고 자본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었다.

노동자의 존엄

 페북 이미지 캡처.
 페북 이미지 캡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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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내가 존엄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불행하게도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오히려 나의 존엄이 침해당하는 순간이 더 기억하기 쉽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체벌을 당하거나, 공부를 못한다고 무시를 당할 때. 내가 여성이거나, 나이가 어리다거나와 같은 이유로 무시를 당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법한 존엄이 침해당한 기억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당할 때 도리어 우리에게 각인되곤 한다.

일터는 어떨까? 일터는 이러한 존엄의 침해를 경험하기 가장 쉬운 곳이다. 최근 SNS상에 떠도는 한 장의 사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옷에 새겨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존중해달라는 뜻만이 아닌 그들이 경험하는 존엄의 침해와 무시를 대변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노동자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한다. 고객에 의해서만이 아니다. 사업주, 직장 동료 등 일터라는 공간에서 관계하는 사람들에 의한 무시, 사회적 시선과 편견에 의한 존엄의 침해는 노동을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다.

"한 번은 출퇴근 카드를 잘 못 찍어서 수정해달라고 하니까 옆에 있던 정규직이 '야 너 파견주제에 뭐 그런 거 신경 쓰냐!'고 이야기 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 파견노동자

"저희는 배달을 하는 사람이니까 벨을 눌러요. 내가 왔다는 표시는 벨을 누르고 노크를 하는 건데, 자기 잠자는데 왜 벨을 누르냐고, 3일을 쫓아다니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는 거예요. 너무 비참했어요. 왜냐면 제가 사는 동네고, 무슨 동 대표래요. 나가면서 저한테 '저*이 아직도 일을 하고 있네"라고 하면서 3일을 그러는데." - 집배원 노동자

이와 같은 존엄 훼손 과정은 차별에 대한 인식 과정이다. 나에 대한 가치가 계속 낮아지는 경험, 다른 사람들과 다른 대우를 당하는 경험에서 사람들은 내가 차별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한다. 이와 같은 경험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스스로의 가치를 낮게 보게 되고 자신감 또한 잃어 간다.

구직 과정, 고용 형태, 휴가, 임금, 명찰과 옷차림 등 노동을 하며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곳에서 겪는 가치 절하의 경험은 노동자 스스로의 자존감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떨어진 자존감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평등 감각과 연대의 훼손

무시당하고, 나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과정은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은 사회적 시선만이 아닌 타인의 행위나 행동에 의한 경험이다. 존중은 평가와는 다른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일터에서의 관계는 평가와 인정을 중심으로 맺어진다.

업적, 실적, 위치, 위계와 같은 요인을 바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평가한다. 평가의 관계에서 나는 무시당하거나, 주눅 든다. 노동자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들의 존엄을 훼손한 '차별'의 힘은 그들을 평가하는 힘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일을 할 때 간호사가 할 일을 간병인에게 시키면서 간병인이 잘 모를 경우 가르쳐주지 않고 '그런 것도 모르냐'고 뭐라고 하면서 간병인들을 위축시킨다." - 간병노동자

문제는 이와 같은 평가의 방식이 노동자와 노동자 간에도 맺어진다는 점이다. 자본이 차별을 통해 노동자의 가치와 존엄을 일렬로 줄을 세워 평가한 상황에서 같은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더 이상 이들은 같은 노동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서로가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평등 감각)은 무너진다.

평등 감각의 훼손은 노동자 간 연대의 힘을 무너뜨린다. 서로가 평등하지 않다는 감각에서 상호 간의 존중은 사라지기 쉽다. '나보다 못한 사람인데?', '쟤는 비정규직이잖아', '아르바이트생과 내가 같진 않잖아' 와 같은 말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고, 그 평가에서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대답으로 이어진다.

위계를 바탕으로 한 관계에서 존중은 쉽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위 위계의 노동자가 상위 위계의 노동자와 현장에서 부딪치며 겪게 되는 경험은 상위 위계의 노동자가 나와 함께 싸워줄 동료가 아닌, 나를 괴롭히는 존재로 이어진다.

물론 이들이 함께 연대하여 싸워나간 경험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 투쟁의 결과로 이들 간에 평등한 관계가 곧 생성되는 건 아니다. 투쟁 기간 동안 상위 위계 노동자에게 차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투쟁이 끝난 후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기도 하다. 불안정한 연대의 힘에서, 여전히 그들 사이는 분리되고 나뉘어 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훈창(인권운동 사랑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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