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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던가. 미드는 <하우스 오브 카드>로 시작해 <하우스 오브 카드>로 끝난다고. 원래 이 '끝판왕' 미드의 원작 소설 <하우스 오브 카드>는 25년 전 작품이다. 배경은 백악관과 워싱턴 정가가 아닌 '웨스트민스터', 즉 영국 의회다.

저자인 마이클 돕스는 영국 상원의원 출신의 정치가로 마가렛 대처 총리의 핵심 참모였고 존 메이저 총리 정부에서 부당의장을 지냈다. 정글과도 같은 정치무대 한 복판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고 권력투쟁에 밀려나기까지, 작가의 경험담은 이 소설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가장 좋은 양분이 됐다.

정치에 '권선징악'은 없다

고상한 이념과 순수한 가치 따위는 없다. 정치의 세계는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하고 더 높이 오르려는 이들의 욕망과 욕망들이 충돌하고 각축을 벌이는 정글일 뿐이다. 마이클 돕스는 권력을 향한 질주에서 자비 따위는 허용하지 않는 '사악한'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웨스트민스터는 원래 강가의 늪이었네. 그런데 매립을 해 궁전과 대성당을 지었지. 고상한 건축물과 만족을 모르는 야망이 높이높이 올라갔네. 하지만 저 아래 깊은 곳은 여전히 늪이지. (134쪽)

영국 다수당의 원내총무인 프랜시스 어카트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매스컴이나 대중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온갖 비밀스럽고 고생스러운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왔다. 당규의 책임자로서 당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몰아가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어카트의 한손에는 언제든지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부가, 한손에는 의원들의 온갖 약점과 비밀을 수집해놓은 비밀장부가 들려 있었다.

당은 어카트에게 빚을 지고 있었고, 그는 선거가 끝나면 응당 그 값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허망하게 배신당한다. 꾹 눌러왔던 권력을 향한 욕망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어카트는 스스로 총리가 되기 위한 위험한 질주를 시작한다.

어카트는 '비밀장부'에 기록된 의원들의 약점과 치부를 교묘하게 이용해 정적들을 차근차근 제거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는 당의 정책을 웃음꺼리로 만들고 결국에는 좌초시키는 정치공작에서부터 언론을 동원한 교묘한 여론전,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한 협박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찬인함을 보인다. 그는 "잔인함은 어떤 종류이든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니 어중간하게 잔인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나?"(398쪽)라고 확신하며 목표한대로 흔들림없이 밀어붙인다.

'politics(정치)'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poly'와 'ticks'에서 비롯되었네. 전자는 '많은'을 의미하고, 후자는 '피를 빨아먹는 자그마한 벌레'를 의미하지. (225쪽)

어카트의 각본은 빈틈이 없었다. 사건들은 그의 의도대로 처리됐고 대중의 마음조차 그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갔다. 단 한 사람, 젊고 유능한 정치부 기자 매티 스토린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총리 사퇴를 불러온 총리 가족의 부정부패 스캔들에 처음부터 의문을 품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도 진실과 정치부 기자로서 누구보다 독보적인 위치에 서고 싶은 야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정치와 언론의 부적절한 밀월관계가 만들어 낸 거대한 정치 사기극을 감당하기엔 그녀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정치에서 '권선징악'이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장기판을 통제하는 것은 어카트다. 매티조차도 어카트가 언제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장기판의 말일 뿐이다. 정치는 도덕이나 종교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나 선이 통용되는 영역이 아니다. 좋은 결정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정치적 선택, 그 역설의 딜레마

"권력을 이해한다면 때때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텐데. 나를 이해한다면 내가 뛰어난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겠지...(중략)...살다보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지. 매티, 죽을만큼 어려운 선택을. 그 때문에 스스로 미워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 너와 나, 매티,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해. 우리 둘 다."(458쪽)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목적으로 태어났으나, 그 수단으로는 인간성을 상실한 '악마적 방법'마저도 기꺼이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는 이율배반적이다. '옳고 그름'이라는 '딱 떨어지는 잣대'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야만 하는 것은 정치가의 숙명이다. 정치가는 이 '선택의 딜레마'를 기꺼이 감내할만한 철학과 대범함, 끈기와 단단함을 지녀야 비로소 정치다운 정치를 할 수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읽다 보면 '정치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탐구한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오버랩된다. 베버는 "정치가의 행위와 관련해 볼 때 선한 것이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이 악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실로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정치가의 세 가지 결정적 자질을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이라고 봤다. 객관적 책임성이 결핍된 열정은 '불모의 흥분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대의에 대한 책임성이 모든 행동의 길잡이가 되려면 반드시 균형적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균형적 판단'이란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자,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베버는 '거리감의 상실'이야 말로 정치가의 가장 치명적인 죄과라고 했다. 매 순간 정치가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를 위협하는 사소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적과 싸워야 한다. 그 적의 이름은 '허영심'이다. 베버는 "허영심은 대의에 대한 그 모든 헌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그 모든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적"이라고 했다.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하는 욕구에 굴복한 정치가는 반드시 객관성과 책임성의 결여라는 죄악을 범하게 된다.

권력 본능은 정상적인 정치가의 자질이자 정치적 대의를 위한 헌신에서도 필요한 요소다. 권력 본능은 객관성과 책임성을 잃지 않을 때 허영심과 구별되는 정치가의 당연한 자질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정치가가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하는 허영심에 굴복할 때, 존경과 권위 대신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정치가들이 '판을 칠수록' 정치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는 더 번져나간다.

작가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랜시스 어카트의 치밀하고도 사악한 면모를 통해 정치적 선택에 내포된 윤리적 특수성, 그 역설의 딜레마를 드러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이런 물음이 남는다. 어떤 정치가여야 하는가. 복잡하고도 다원적인 현실에서 선과 악의 두 얼굴을 지닌 정치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기 위해 정치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다...(중략)..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덧붙이는 글 | <하우스 오브 카드>(마이클 돕스 지음 / 푸른숲 펴냄 / 2015.05. / 1만48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마이클 돕스 지음, 김시현 옮김, 푸른숲(2015)


태그:#하우스오브카드, #마이클돕스, #정치, #민주주의, #막스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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