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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면은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나는 시선을 흩뜨린 채 울었다. 어느새, 1년하고도 3달이 더 흘렀다. 쉽게 잊는 편이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기억은 뇌리에 새겨진 듯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어떤 교통수단이든 거리낌 없이 타곤 했다. 하지만 이제 배를 떠올리면 본능적인 거부감이 몰려온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 함께 여행을 떠날 친구에게 배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친구는 '미친 거 아니야'라는 표정을 짓고는 "요즘 비행기 값도 싼데 왜 굳이 배를 타느냐"며 타박했다.

개인적인 일화로 치부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이제 배를 타는 것이 '사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 되어버렸다.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달라진 건 분명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는 달라졌다.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말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사회적 트라우마에 관한 시인 진은영과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한 고문과 살인, 비인간적인 정리해고 등 사회적 트라우마를 야기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책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왜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싸워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완료되지 못한 슬픔, 멈춰버린 삶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책 표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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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는 뜻이다. 보통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이와 관련된 고사가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나온다. <세설신어>는 후한(後漢)말부터 동진(東晉)까지 약 200년간 실존했던 명사들의 일화를 담은 이야기 모음집으로 단장지애에 관한 고사는 <세설신어> 중 출면(黜免)편에 수록돼 있다.

진나라 장수 환온이 촉나라를 멸망시키려고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병사 중 하나가 강변에 있던 새끼원숭이를 잡았다. 그러자 원숭이 어미가 함선을 따라 100여 리를 쫒아왔다. 강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이르자 몸을 날렸는데, 배에 닿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다. 한 병사가 원숭이 어미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환온이 새끼원숭이를 잡은 병사를 매질하고 대열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이 고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솔직히 단장지애라는 고사조차도 부모의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다. 불의의 사고였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구할 수 있었던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부모의 심정은 창자가 아니라 심장이 끊어지는 아픔일 것이다. 갑자기 기존의 삶이 멈추고, 다른 세상에 떨어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모든 인간은 완료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중략) 완료하지 못하고 중간에 억지로 끝나버리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거기서 계속 맴돌아요. 재난으로 누군가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는 경우처럼 갑자기 죽음과 관련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으면, 잊어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29쪽)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무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직접 당사자인 유가족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을 것이다. 자식을 잃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투쟁의 '투'자도 몰랐음에도 투쟁을 하고, 단식하고, 광화문에서 노숙하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이게 다른 세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는 다른 세상의 일이 완료돼야 한다. 끝맺지 못한 채 강제로 끌고 와버리면 계속해서 다른 세상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미 끊어져 버린 유가족의 심장은 완전히 아물지 않으면 제대로 뛸 수 없다. 심장 없는 삶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니까.   

진상규명이 치유의 출발점이다

"죽지 않아야 할 아이들이,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아이들이, 다 구조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죽었어요. 그리고 거의 온 국민이, 그것도 생중계로 그 아이들의 죽음을 지켜봤어요. 그러니 그 외부적인 요인에 대한 분명한 원인 규명이 없으면 세월호 트라우마의 치유는 단 한 발짝도 진행될 수 없습니다. 진상규명이 치유의 가장 중요한 첫 단계예요." (96쪽)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월호 유가족의 트라우마가 해소돼야 한다. 트라우마 해결의 첫걸음은 '이해'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왜 구조할 수 없었는지, 책임져야 할 사람은 누군지 같은 것 말이다.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할 때 "우리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절규하는 것은 알아야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아직 요원하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진상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미적지근한 반응 때문이다. 예컨대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에 반하는 시행령을 제정해 논란을 일으키거나, 특별조사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등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진상규명 없이는 그게 무엇이든 끝나지도 시작되지도 않는다. 공회전만 계속될 뿐이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배를 보면서 타기를 꺼리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납득할 만한 진상과 책임자 처벌 없이 어떻게 정부가 우리를 구조해줄 것이라 믿을 수 있겠나. 때문에 우리는 배가 침몰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아예 배를 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1차원적인 반응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이렇게 가다간 종래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예술적 감수성이 필요한 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 <그날 이후> 중에서

책 말미에 있는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쓴 시'를 읽었을 때 눈물이 왈칵 흘렀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일종의 후련함이 섞여 있었다. 우리가 슬플 때 실컷 울고 난 후 속이 후련해지는 것처럼 아픈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애도 기간'이라고 한다.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일상에 복귀하라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유가족을 비롯한 여러 당사자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예술적 감수성이다. 상실하고만 대상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데 예술이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 유가족이 현실을 대면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나 영화, 미술, 전시 같은 이미지 예술이 조금은 완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예술적 감수성이 빈약하다. 이는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저는 우리 사회에 이렇게 참담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또 2차, 3차 외상이 이어져서 병리 현상이 더 깊어지고 복잡해지는 데는 우리 사회에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기반이 없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232쪽)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적 재난은 사회적으로 큰 외상을 안긴다.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기 바쁘다. 아니면 서로 해결하라고 미루기 일쑤다. 싸우고 미루는 과정에서 국가적 재난의 당사자는 외면받고 소외당한다. 해결되는 것은 없다.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곪아갈 것이다. 곪은 것은 언젠가 터진다. 터졌을 때의 혼란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언제까지 사회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불운이라 치부하며 회피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제라도 진은영의 말처럼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많은 고통의 문제들이 신이나 불운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상처임을 인정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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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진은영, 정혜신 씀/ 창비/ 2015.. 4/ 정가 13,8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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