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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 김소영, 김창석, 박보영, 이상훈, 민일영, 양승태(대법원장), 이인복, 김용덕, 고영한, 김신, 조희대, 박상옥 대법관.
 권순일, 김소영, 김창석, 박보영, 이상훈, 민일영, 양승태(대법원장), 이인복, 김용덕, 고영한, 김신, 조희대, 박상옥 대법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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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여느 형사사건처럼 유죄 또는 무죄취지의 판단은 없었다. 그저 한 마디를 했을 뿐이다.

'다시 원점에서.'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가 잘못된 증거 판단에 기초해 사실관계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활동이 정치관여행위 및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그 실체에 관한 원심 판단의 당부를 살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환송한다, 이 판결은 관여법관 전원의 견해가 일치했다"는 그의 목소리가 대법정에 울려 퍼졌다.

날아간 시큐리티 파일, 원점으로 돌아간 사건

대법원이 문제 삼은 대목은 '시큐리티'와 '425지논'이란 제목의 텍스트(txt)파일이다.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3팀 5파트원 김아무개씨의 이메일에서 나온 두 파일에는 국정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정보와 해당 계정으로 올린 글 관련 자료 등이 담겨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파일들을 기초로 검찰이 주장한 트위터 계정 1257개 중 716개를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관리했다고 인정했다. 또 여기서 나온 트윗·리트윗글 27만 4800개를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으로 파악했다. 이 사실관계는 항소심 재판부가 원세훈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은 물론 공직선거법 위반혐의까지 유죄로 판단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시큐리티 파일과 425지논 파일은 1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에선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 자료였다. 당시 재판부는 두 파일이 발견된 이메일의 주인공 김아무개씨를 증인으로 불러 그가 진짜 작성자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검찰 조사 때 작성사실을 인정했던 김씨는 법정에서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진술을 받아들인 재판부는 시큐리티 파일과 425지논 파일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고,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 번복을 의심했다. 또 그의 다른 이메일 본문에서 동일한 트위터 계정 정보 등이 나왔고 메일 작성시간이 평일 업무시간대라는 데에 주목, 1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비록 김씨는 부인했지만, 정황상 그가 업무용으로 만든 자료로 보이는 만큼 형사소송법 315조 2호가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라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또 이 파일들은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형사소송법 315조 3호)'에도 해당하므로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425지논 파일의 상당 부분은 출처를 명확히 알기 어려운, 매우 단편적이고 조악한 형태의 언론기사 일부와 트윗글 등으로 이뤄져있고, 시큐리티 파일의 트위터 계정은 그 근원이나 취재 경위 등이 불분명하다. 두 파일이 업무수행과정에서 작성된 문서여도 그 내용을 실제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기 어렵다.

다른 심리전단 직원 이메일에서 비슷한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정도 두 파일이 심리전단 활동을 위해 관행적 또는 통상적으로 작성된 문서가 아님을 보여준다. 나아가 두 파일에는 업무상 무관하게 수집·기재한 것으로 보이는 신변잡기적 글과 격언 등도 포함됐으며 그 양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두 파일은 형사소송법 315조 2호와 3호의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문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이 판단은 1심과 같다. 그리고 시큐리티 파일과 425지논 파일을 날린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 가운데 트위터 계정은 175개, 트윗·리트윗글은 11만 3621개만 인정했다. 결국 두 파일은 이 사건에서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정치개입·선거운동이 벌여졌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었던 셈이다.

판단 미뤘지만... 1심 재판부 손 들어준 대법원

16일 양승태 대법원장도 이 파일들이 항소심 판결의 "결정적·핵심적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파일의 증거능력은 배제해야하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내는 게 맞다고 했다. 대법원은 정확히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유무죄를 두고 1심과 항소심이 엇갈렸던, 끝내 다른 판단을 내놓게 만들었던 부분만 문제 삼았다.

또 사건의 실체,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는 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끝난 다음에 따지겠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유무죄를 판단할 경우 불어닥칠 후폭풍을 피해가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취지는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준 것과 다름없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보수단체 회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난 2월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보수단체 회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난 2월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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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원세훈 전 원장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출석한 이동명 변호사는 선고 뒤 '대법원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유무죄 판단을 아예 하지 않은 점을 어떻게 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판단을 미룰지 몰랐다"며 "대법원은 '아직 모르겠다'는 논리인데, 납득할 수 있지만 섭섭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약 10분 동안 기자들에게 대법원 판결 관련 견해를 밝히는 내내 미소를 띠고 있었다. 1심 판결이 뒤집히고, 원 전 원장이 법정구속됐던 항소심 선고날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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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원세훈,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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