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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변호를 맡은 이동명 변호사와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원세훈 항소심 징역 3년 실형...법정구속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변호를 맡은 이동명 변호사와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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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2월 9일, 여유로운 표정으로 등장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짧게 답한 뒤 법정으로 향했다.

"재판 끝난 뒤 법원 1층 입구에서 한 마디 하겠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활동이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라고 한 1심 판결이 깨지면서 구치소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지만 원 전 원장의 보석 신청은 기각했다.

국정원의 불법적인 사이버활동이 드러난 지 3년째인데도 이 사건이 결론나지 않는 데에는 한 직원의 영향이 컸다. 그는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3팀 5파트원으로, 트위터 활동을 담당한 김아무개씨다.

심리전단 직원의 이메일, 그리고 두 개의 파일

2013년 10월 10일, 그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내게 쓴 메일함'에 있는 '신의일'이란 메일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시큐리티'와 '425지논'이란 이름의 텍스트(txt) 파일이 딸려있었다.

425지논 파일에는 광우병·FTA·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이, 시큐리티 파일에는 다수의 트위터 계정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검찰은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심리전단이 트위터에서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 파악했고, 법원에 원 전 원장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로 제출했다. 또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김씨를 1심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검찰 조사에서 425지논 파일의 작성사실을 인정했던 김씨는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음은 2014년 3월 17일 25차 공판 법정 상황이다.

검사 :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이메일 본문 또는 첨부파일로 해 자신의 이메일에 보내놓고 활용했나?"
김씨 : "네 제가 트위터를 처음해서 그런 자료를 챙겨놨다. 많이 있을 텐데, 제가 기억은 안 나는데..."

검사 : "'신의일' 메일에 시큐리티·425지논 파일이 있는데, 증인이 작성한 것 맞나? 검찰에선 그렇다고 진술했다."
김씨 : "하여튼... 제가 일하면서 (여러 자료들을) 모아놨던 건 기억한다. 뭔가 많이 모았는데 지금 묻는 건 기억이 안 난다. 여기저기서 막 긁어서... 그 내용인지 모르겠다."

휴대폰 번호까지 제시한 질문에도 김씨가 제대로 답하지 않자 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자기가 쓴 휴대폰 번호도 기억 안 나냐"며 그를 의심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김씨의 진술을 믿기로 했다. "이 파일들을 김씨가 작성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 제3자의 작성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이 파일의 진정성이 증명되지 않았고, ▲ 업무 연관성이 낮은 내용이 들어가 있으니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로도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씨의 검찰 조사내용과 법정진술을 살펴본 항소심 재판부도 '나는 작성자가 아니다'란 그의 주장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김씨를 정말 믿을 만한지, 시큐리티 파일 등의 내용은 어떤지를 두고는 1심보다 훨씬 꼼꼼하게 따졌다.

재판부는 우선 김씨가 무언가 감추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그가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만 자신이 해당 파일들을 작성했을 가능성을 아예 부정하진 않았고 ▲ 검찰에서 잘못 말했다거나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 이 파일들이 발견된 메일함에 있던 이메일들은 대부분 평일 업무시간대에 쓰였고 ▲ 시큐리티 파일 등에 담긴 트위터 계정정보 등은 다른 이메일 본문과 첨부파일에서 나타나며 ▲ 김씨 통화기록과 일치하는 활동내역이 적혀있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시큐리티 파일과 425지논 파일은 김씨가 '업무용'으로 만든 것이라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반전에, 반전 거듭한 시큐리티 파일... 원세훈을 구하다

부활한 두 파일을 바탕으로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을 다시 분석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2012년 8월 20일을 기점으로 국정원 직원들의 선거 관련 글이 급증한 데다 '문재인·안철수 반대, 새누리당 지지'라는 경향을 꾸준히 드러낸 점에 주목했다. 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이 일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 것임이 명백하다"며 원 전 원장을 실형에 처했다.

그러나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이 잘못 판단했다고 결론내렸다. 이번에도 시큐리티 파일과 425지논 파일의 증거능력이 결정적이었다. 대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김씨의 진술을 볼 때 이 파일들은 작성자가 불분명하고, 내용을 살펴봐도 업무용 자료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두 파일을 증거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사실관계부터 다시 정리해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김씨는 정말 이 파일들을 모를까? 1심 재판부는 그렇다고, 항소심 재판부는 아니라고 봤다. 어쨌든 그의 '기억상실증'은 원세훈 전 원장이 1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유리한 판단을 얻어내는 데에 기여했다. 원 전 원장은 이 기세를 몰아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웃을 수 있을까.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원세훈, #대선개입,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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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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