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건, 감정이 시작되는 곳은 우리 내부. 그중에서도 뇌 어딘가다. 1000억 개에 이르는 뉴런 세포들은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고, 이들 간에 치환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에 가깝다. 우리는 60억 km 떨어진 곳까지 탐사선을 보내 명왕성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각자의 머릿 속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베일에 싸인 이 미지의 영역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무한한 상상을 얼마든지 눈앞에 펼쳐보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장르의 힘은, 픽사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만나 우리 안의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주인공은 우리가 언제나 느끼면서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던, 다름아닌 '감정'이었다.

 다섯 감정들이 근무(?)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SF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조종실이 연상되기도 한다.

다섯 감정들이 근무(?)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SF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조종실이 연상되기도 한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피터 닥터 감독이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된 것은 자신의 딸에게서 영감을 받아서였다. 그가 작품을 기획하기 시작할 무렵 그의 딸은 열한 살이었는데, 엉뚱하고 창의적인 성격이었던 딸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그는 문득 성격이 변한 딸의 머릿속이 궁금해졌고, 그 생각을 시작으로 인간의 감정을 의인화하는 과정을 상상했다고 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라일리'라는 열한 살 소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를 무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곳에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이름의 다섯 감정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라일리의 삶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부모님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오게 된 라일리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과정 속에서, 다섯 감정들 또한 이런저런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성장하게 된다.

 다혈질 캐릭터로 그려지는 '버럭'. 벽돌을 모티브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다혈질 캐릭터로 그려지는 '버럭'. 벽돌을 모티브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다섯 감정들을 의인화한 각각의 캐릭터들은 매력적이고도 코믹하다. 이를테면 분노는 화가 나면 머리에서 불이 나고, 슬픔은 너무 슬퍼지면 걷지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지는 식이다. 이 외에도, 기쁨은 노랑, 슬픔은 파랑, 그리고 분노는 빨강으로 그려지는 등 각각의 이미지가 컬러로 표현되고, 또한 각자에게 걸맞는 말과 행동을 통해 독자적 캐릭터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다섯 감정들은 라일리의 일상을 언제나 지켜보고, 또한 그녀의 기억들을 관리하기도 한다.

다섯 감정들은 라일리의 일상을 언제나 지켜보고, 또한 그녀의 기억들을 관리하기도 한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영화 중반에 이르기까지, 기쁨과 슬픔의 관계는 마치 선과 악의 그것과도 같다. 기쁨이 라일리의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비해, 슬픔은 그 이면의 상처를 굳이 끄집어 내어 라일라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대다수의 관객들은 기쁨의 편에 서서 슬픔을 방해꾼 정도로 여기게 되고, 이는 일종의 '긍정 강박'을 형성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기쁨과 슬픔이 함께 모험하는 과정 속에서 기쁨의 한계가 드러나고, 동시에 슬픔의 가치가 발견된다.

 사고로 본부에서 멀어져버린 기쁨과 슬픔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고로 본부에서 멀어져버린 기쁨과 슬픔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결국 <인사이드 아웃>이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인간이 가지는 감정 특유의 '복합성'에 대한 것이 아닐까. 극중 라일리의 경우처럼, 성장의 과정에는 감정의 성숙이 동반되고, 성숙한 감정이란 결국 복합적으로 재구성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희로애락'이라고 칭하는 감정의 범주 또한 감정을 언어로 규정하기 위해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 낸 추상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감정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만약 우리 머릿속에서 공존하는 다른 감정들이 없었다면, 기쁨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감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모든 감정들을 뭉뚱그린 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인사이드아웃 픽사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트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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