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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매해 기발한 졸업사진 촬영으로 인해 화제가 되는 의정부 고등학교가 이번 해에도 화제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해 졸업 사진을 찍는 학생의 모습.
 매해 기발한 졸업사진 촬영으로 인해 화제가 되는 의정부 고등학교가 이번 해에도 화제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해 졸업 사진을 찍는 학생의 모습.
ⓒ 의정부고 방송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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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내내, 이 친구들 때문에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아니, 요즘말로 '빵' 터졌다. 건강한 웃음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청춘의 건강함이 바로 이거라는 듯, 재기발랄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패러디 사진들이 올해도 SNS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의정부고 졸업앨범 사진 말이다.

페이스북 '의정부고 방송부' 페이지는 14일 정오께 "졸업 사진 제보 받아요~ 한 번 잘 올라가면 대학 다닐 때까지 돌아다니는 클라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날 오전 의정부고에서 현재 고3인 2016년학년도 졸업생들의 졸업앨범 촬영이 진행된 것이다. 이 페이스북 운영자는 학생들의 신속한 제보 사진을 속속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고, 이 특급 사진(?)들은 SNS와 인터넷을 타고 널리널리 전파됐다.

의정부고의 이러한 전통(?)이 시작된 것은 2013년부터라고 한다. 일부 학생들이 패러디 사진을 촬영한 것을 계기로 후배들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고3 학생부터는 2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이 퍼포먼스는 지난해에도 '의정부고 졸업앨범'이란 타이틀로 검색어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렇게 시작된 의정부고의 졸업앨범 퍼포먼스가 한층 진화했다. 대통령 풍자도 있고, 영화 패러디도 있으며, 심지어 '순하리 처음처럼'까지 등장했다. 과장하자면, 이 학생들이 '선점'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따라가다보면, 2015년 현재의 트렌드가 보일 정도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일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정말 그러하다.

박근혜도, 매드맥스도 가지고 노는 10대들의 건강함 

의정부고 졸업사진.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했다.
ⓒ 의정부고 방송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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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의고의 졸업사진이 이번 해에도 화제다. 페이스북 <의정부고 방송부> 등 온라인 상에 2016년도 졸업 예정인 학생들이 찍은 졸업사진들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매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의고의 졸업사진이 이번 해에도 화제다. 페이스북 <의정부고 방송부> 등 온라인 상에 2016년도 졸업 예정인 학생들이 찍은 졸업사진들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 의정부고 방송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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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학생회 회의에서 캐릭터 겹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이야기했어요. 캐릭터 겹치지 않게 캐릭터를 미리 결정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하고요. 결국엔 '개인의 자유다, 겹치는 것도 문화다, 겹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로 결론이 났죠."

"저희 학교 학생회가 다른 학교 학생회에 비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이에요. 작년 축제에는 SBS <케이팝 스타>를 패러디에서 <게이팝 스타> 같은 학생 참여 위주의 축제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 축제엔 저희 학교 학생보다 외부인이 더 많이 왔어요. 또 세월호 촛불 행진도 주최하고 그랬어요."

지난해 7월, 20대 인터넷 언론 <고함 20>과 인터뷰를 가진 의정부고 학생들의 말이다. "개인의 자유"를 스스럼없이 언급하고 자율적인 토론 문화를 체득한 이 10대들 앞에 세상의 엄격하고 비루한 잣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함 20>과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학생회와 그걸 용인하는 교사들과의 조화가 이뤄낸 결과로 보인다.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이미 지난해 졸업앨범 사진들이 '인터넷 스타'로 화제를 모으자 학교 측의 제재가 가해질 뻔하기도 했다. 주로 남자 학생들이 '클라라 시구'니 '마릴린 먼로'니 하는 섹시한 여성을 패러디하면서 학교 측과 학생들 간의 시각차가 생겼던 것이다.

세간의 화제를 모으자, 과한 노출을 이유로 이 학교 교감이 제재를 가하려고 했고, 이러한 마찰이 기사화되면서 학교 측과 학생들 간의 대화가 오간 결과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욕설을 했던 교감도 사과를 했고, 학생들은 결국 학교 교장의 "졸업 앨범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끌어낸 것이다.

그리하여, 어김없이 돌아온 '의정부고 졸업앨범'은 좀 더 너른 풍자와 따끈따끈한 아이디어로 중무장했다. 지난해에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나 추사랑이 눈길을 끌었다면,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과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각종 광고 패러디 등 한층 더 풍성해졌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박근혜 대통령 풍자일 것이다.

눈치 보지 않는 10대의 풍자, 신선하다

의정부고 졸업앨범 퍼포먼스 중 영화 <매드맥스> 패러디.
 의정부고 졸업앨범 퍼포먼스 중 영화 <매드맥스> 패러디.
ⓒ 의정부고 방송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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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통심의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일각에선 정치풍자가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방통심의위가 알아서 충성을 다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더욱이, 방통심의위가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예방법을 풍자한 <무한도전>에까지 제재를 가한 것은 희대의 코미디라는 지적이 쏟아진 바 있다.

우리는 지금 풍자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숱한 자기 검열과 눈치 보기가 횡행하고, 방송의 탐사보도프로그램을 만들던 PD들은 독립영화계로 진지를 옮겼으며, 방통심의위의 불통 심의는 점점 더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가운데 나온 의정부고 학생들의 퍼포먼스는 묘한 쾌감을 전해줄 수밖에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형형색색의 명품 옷을 갈아입고, 메마른 강화도의 논바닥에 땅이 파이도록 물대포를 쏘아 대고, 질병관리본부를 찾아 '살려야 한다'는 문구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박근혜 대통령.

열아홉 고등학생들의 눈에 비친 대통령의 모습이야말로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은 여론 그대로의 모습일 터다. 그 대통령을 언급하고, 퍼포먼스의 소재로 삼는 것만으로도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인기(?)를 증명해냈는지도 모른다. 반면, 의정부고 학생들은 '개인의 자유'에 입각해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신들의 견해와 창작욕을 마음껏 분출해 냈다.

'재미'와 '클라스'가 전부요, 자리에 연연할 필요도, 밥그릇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그들의 시각이야말로 실로 건강하고 건전한 풍자가 아닐는지. 어쩌면, 어른들이, 세상이 주춤하는 사이 자발적으로 풍자의 카타르시스를 실현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조금은 미안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 특별한 퍼포먼스가 상징하는 바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10대들의 아주 특별한 퍼포먼스... '일베'는 물러가 주시길 

매해 기발한 졸업사진 촬영으로 인해 화제가 되는 의정부 고등학교의 2016년 졸업사진 촬영. 사진은 포카리스웨트 광고 패러디.
 매해 기발한 졸업사진 촬영으로 인해 화제가 되는 의정부 고등학교의 2016년 졸업사진 촬영. 사진은 포카리스웨트 광고 패러디.
ⓒ 의정부고 방송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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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와 일본 만화는 유독 고교생들의 청춘물을 왕성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러브레터> 역시 그 고교시절이 주요한 소재로 쓰였던 걸 기억해 보라. 지난해 10월 방영된 드라마 <미안해 청춘!>은 일본의 유명 각본가 쿠도 칸쿠로의 작품으로, 고교 교사와 학생들 간의 건강한 교류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었다.

이 <미안해 청춘!>을 비롯해 일본 청춘물들이 주요하게 활용하는 소재가 바로 고교 문화제다. 우리의 학교별 '축제'에 해당하는 이 문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싹트는 열정과 순수와 젊음의 기운을 각별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향수를 자극하는 과장이든 어른들의 시각에 입각한 판타지든, 대중문화가 여전히 그런 문화를 다룰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얼마간의 점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과장을 빼고서라도, 의정부고 학생들이 퍼포먼스는 그러한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하면 상황은 참혹하다. <상속자들>과 같은 고등학생 간의 계층화된 로맨스를 그리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브라운관에서 그나마 현실성을 띤 <학교> 시리즈의 주요 소재는 입시 경쟁과 계층 문제,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다.

배우 김희선이 고등학교로 갔던 <앵그리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시에 바쁜 고등학생들이 영화를 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영화 제작자들은 10대의 자화상을 반영하는 영화를 포기한 오래다. 우리 10대들은 대중문화를 통해서는 결코 자신들의 현실을 지켜볼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정부고 학생들의 퍼포먼스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들이 바라보는 지금, 여기에 대한 건강하면서도 날것 그대로인 코멘트는, 10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재기발랄함 그 자체다.

더욱이 '공부 또 공부'를 부르짖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생한 것이라 더욱 더 소중하다. 최소한, 우리의 아이들은 훨씬 더 '스마트'하고 감각적이며 자기 표현욕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반영성을 지닌 콘텐츠가 없는 상황을 직접 자신들이 주연 배우가 돼서 근사한 퍼포먼스를 일궈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의정부고 학생들의 퍼포먼스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를 뿌리는 소식이 우려를 던져주기도 한다. 14일 오후 의정부고의 퍼포먼스가 화제가 되자 한 '일간베스트' 사용자가 국방부, 교육부, 국정원 등에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것이 요지이며, '일베'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유독 고생이 많지만, 제발 아이들의 의견 개진만큼은 놓아두도록 하자. 의정부고의 건강한 퍼포먼스는 포토샵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사진이나 만드는 '일베'의 표현의 자유와는 비교할 것이 못되니까. 그래야만 내년 이맘때 신나는 퍼포먼스 사진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겠나.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의정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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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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