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개설된 '성평등도서관 여기'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개설된 '성평등도서관 여기'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 김경년

관련사진보기


"내가 30년째 작가로 활동하고 단행본으로는 책을 가장 많이 낸 작가인데, 언론이 날 소개할 땐 아직도 '여성작가'라고 소개하고 이혼 횟수를 꼭 맨 앞에 붙여요."

공지영 작가는 1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개설된 성평등도서관 '여기' 개관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하고 "이건 폭력"이라고 개탄했다.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공지영 작가 등과 함께 진행한 '젠더토크'에서 사회를 본 배우 권해효씨는 '딸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서울시 성평등위원을 맡은 지 벌써 13년째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박 시장에게 예전에 맡았던 '서울대 성희롱사건(1993년 서울대 화학과 우아무개 조교가 교수였던 신아무개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을 회상해달라고 주문했다.

박 시장은 "신문 가십란에 작게 나온 사건을 봤는데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우 조교를) '빨리 모셔오라'고 시켜 민사소송을 시작했던 것"이라며 "패소한 2심에서 포기하고 대법원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 사건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가 될 뻔 했다"고 당시 결혼까지 앞두고 있었던 우 조교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박 시장은 또 "당시 남성들의 지배적인 관념 속엔 장난 좀 했다고 해서 벌금 3천만 원(가해자 신 교수가 받은 벌금)이나 내야 하냐는 농담을 많이 했지만 성희롱이란 게 남성이 여성한테만 하는 것이란 건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강 전 장관도 이어 "잘못된 것을 지치지 않고 계속 문제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러다 어느 시점에는 소송전략이 중요해지는데, 호주제 폐지에서는 위헌제청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자신도 호주제의 피해자라는 공지영 작가는 "1999년 한 잡지의 요청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인터뷰하면서 호주제 폐지에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했으나, 인자하게 미소를 짓더니 다음날 대구에서 '호주제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인터뷰해서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공 작가는 또 "재혼 후 아이의 성이 아빠와 달라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되자 신문 칼럼에 '동사무소 직원에게 돈을 주고서라고 성을 바꿔야겠다'고 쓰자 그제서야 유림이 '아이한테까지 피해가 있을 줄 몰랐다'며 그 부분은 양보하겠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시대의 성평등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느냐는 질문에 강 전 장관은 "작년 세계경제포럼(WEF) 공인 성평등지수가 2008년 이후 해마다 떨어져 전 세계 142개국 가운데 117위더라"며 "가족제도에서 평등을 많이 이뤘지만 아직 실질적 평등은 갈 길이 멀다"고 개탄했다.

'성평등도서관 여기'의 서가.
 '성평등도서관 여기'의 서가.
ⓒ 김경년

관련사진보기


여성이 기록하고 여성을 기억하는 공간... 이희호씨도 축사

국내 최초 성평등정책 전문 공간인 '성평등도서관 여기'가 14일 오후 문을 열었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내 2층에 857.05㎡ 규모로 개설된 '여기'는 전체를 하나의 방으로 만든 열린 공간으로,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여성정책 자료 ▲여성운동·여성단체·여성기관 자료가 모여있고 ▲관련 모임과 토론, 전시 등을 상시로 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도서관에 비치된 도서와 자료 5천여 권은 대부분 여성 관련 기관과 사회단체에서 기증한 것들이다.

시민공모전을 통해 탄생한 '성평등도서관 여기'라는 이름은 여성이 기록하고, 여성을 기억하는 공간, 바로 이곳(here)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1959년 YWCA를 열 때 지방 협회들과 함께 '혼인신고를 합시다' 캠페인을 벌였으며 이후 호주제 폐지, 가정법 개선을 여성인권운동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며 "남녀평등을 위해 노력한 선배들의 노력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희호 이사장은 행사가 끝난 뒤 자신의 자서전 <동행>을 기증했으며, 강금실 전 장관은 자신이 2012년에 쓴 <생명의 정치>, 공지영 작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도가니>, <즐거운 나의 집> 등을 기증했다. 특히, 박원순 시장은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여성국제전범재판 관련 자료 등 자신이 맡았던 사건과 관련된 개인자료 194종을 기증했다.

한편, 성평등도서관 내 'SeMA Branch'에서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 26점이 오는 20일까지 전시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외부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숙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는 "성평등도서관 여기는 성평등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잇는 국내 최초의 성평등 정책 전문 공간"이라며, "앞으로 바로 여기에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과 성평등 역사를 이어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평등도서관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증한 자료. 1993년 서울대 성희롱 사건 당시 시민모임이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이다.
 '성평등도서관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증한 자료. 1993년 서울대 성희롱 사건 당시 시민모임이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이다.
ⓒ 김경년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성평등도서관, #여기, #박원순, #공지영, #강금실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