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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최초 자원입대 전남지역 학도병 출전 65주년 기념식이 열린 여수진남실내 체육관 모습
 전국최초 자원입대 전남지역 학도병 출전 65주년 기념식이 열린 여수진남실내 체육관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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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두 시 반, 여수 진남경기장 실내체육관에서는 65년 전 전국에서 최초로 자원입대한 학도병들이 출전한 날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기념식에는 생존학도병 및 유가족, 6.25, 월남전참전 등의 국가유공자, 군 장병, 학생 다수와  이낙연 전남도지사, 권혁신 육군 제31보병사단장, 국가보훈처 관계자 등이 포함된 10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사단 군악대와 해양경비안전교육원 의장대의 선도로 학도병기념비 참배와 카퍼레이드, 경과보고, 학도병 소개, 꽃목걸이 전달과 경례, 여수시장의 환영사, 전남도지사의 기념사, 정효명 학도병동지회장의 답사, 헌시 낭독, 기념공연 등 순으로 진행됐다.

실내체육관 밖에는 향토사단에서 준비한 최신예 K2 전차와 장갑차 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실내체육관 밖에는 향토사단에서 준비한 최신예 K2 전차와 장갑차 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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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행사에는 육군 제31보병사단이 특별히 준비한 국군 전투장비 전시회가 열렸다. 영상으로만 보던 최신형 K-2 전차, K-2 장갑차, k-9 자주포, k-55 자주포, 토우미사일에서부터 저격용 소총, K-5 권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국군무기와  감시, 통신장비, 피복 등 보급품이 전시됐다.

또, 적 무기장비 및 사진 전시, 6.25전쟁 유품 및 사진 전시와 함께 청소년들이 즐기는 서바이벌 장비 전시와 사격 등 체험장과, 신형 전투식량, 추억의 군용건빵, 주먹밥, 맛스타 코너 등을 운용해  참석자들이 체험하도록 했다.

6.25 후 전국 최초로 자원입대 참전한 학도병... 첫 전투서 70여 명 전사

1950년 7월 13일, 6.25가 발발하자 국가가 위태롭다고 느낀 전남지역(여수, 순천, 광양, 보성, 고흥, 강진 등) 17개 학교 중학생 183명은 '조국수호'라는 혈서를 쓰고 순천에 주둔해 있던 국군 15연대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15~18세의 중학생(현재 고등학생)들은 독립 학도중대로 편성돼 목총을 들고 9일간의 기초훈련만 받고 전선에 투입되었다.

학도병들은 전주를 탈환하기 위해 남원까지 갔다가 후퇴하라는 명령을 듣고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건너편 야산에 진지를 구축했다. 7월 25일 아침 7시, 인민군들은 그날 중으로 진주를 점령하기 위해 섬진강변을 따라 가다가 학도병들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중무장한 인민군 최정예 6사단 선봉대대는 전차 및 대공화기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유리한 고지에 위치한 학도병들과 인민군 간의 3시간 반 동안의 치열한 전투가 끝났다. 화개전투는 훈련도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참전한 학도병 70명이 전사했지만 하동-진주-마산을 거쳐 부산을 점령하려던 인민군의 진로를 1주일 이상 지연시켜 낙동강 최후방어선 전열 구축에 골든타임을 제공했다. 

강제가 아닌 자원입대한 학도병들은 화개전투, 진주촉석루전투, 진동사수전투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산화했다. 당시 참전했던 학도병 183명 중 많은 학생들이 전사하거나  고령으로 사망해 기념식에는 14명만 참석했다.

조국이 위태로워 참전하게 됐다는 심보라씨

기념식이 열리기 전 행사장 인근에서 한 장의 사진을 들고 다니며 "복사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한 노인을 만나 안내하다가 학도병으로 참전해 싸웠던 얘기를 들었다. 6.25 전쟁이 나자 당시 여수상업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심보라(85세)씨는 동창생 9명과 학도병에 자원입대했다. 7월 13일 순천 철도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6개소대의 독립 학도중대로 편성되어 9일간의 기초훈련을 받았다.

목총을 들고 1주일간 훈련을 받은 학도병들은 남원을 거쳐 화개장터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내려오는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진지를 구축했다. 7월 25일 오전 7시에 전투가 시작됐지만 훈련도 총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도병들 70명이 전사했다.

전국 최초의 학도병 183명 중 한분으로 참전해 부상을 당했던 심보라(85세)씨 모습
 전국 최초의 학도병 183명 중 한분으로 참전해 부상을 당했던 심보라(85세)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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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요? 처음에는 제대로 된  전투는 못했죠. 뭐 총이 없는데 어떻게 싸워요. 몇 명에 한 정씩 있는 총이라야 99식 소총이거나 일본군이 사용했었던 38식 단발 소총인데 반해 인민군들은 소련제 다발총으로 드르륵 하며 쏘았으니…"  

살아남은 학도병들은 진주로 후퇴해 촉석루 전투와 함안 진동전투, 고성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진주촉석루 전투에서 모두 총을 지급받았어요. 진주촉석루 전투에서 파편상을 당해 상이군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총알과 포탄이 너무 많이 날아다녀 무엇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30년전인 1985년도에 학도병으로 싸웠던 화개전투 현장에서 죽어간 전우가 묻힌 시신위에 자신이 손수 만든 십자가를 세우고 사진을 촬영한 심보라씨(우측)와 죽은 학도병들이 산에 널려있는 것이 안타까워 동네주민들과 함께 시신을 묻어준 현장을 알려준 동네 주민(왼쪽). 지금은 고인이 됐을거란다.
 30년전인 1985년도에 학도병으로 싸웠던 화개전투 현장에서 죽어간 전우가 묻힌 시신위에 자신이 손수 만든 십자가를 세우고 사진을 촬영한 심보라씨(우측)와 죽은 학도병들이 산에 널려있는 것이 안타까워 동네주민들과 함께 시신을 묻어준 현장을 알려준 동네 주민(왼쪽). 지금은 고인이 됐을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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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유해발굴단이 전투현장에서 발굴한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국군유해발굴단이 전투현장에서 발굴한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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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와 다리에  파편상을 입었다며 심보라씨가 상이군경증을 보여줄 때 "왜 학도병에 지원하게 됐는지"를 묻자 "6.25가 나기 2년 전 여수와 순천에서는 여순사건이 났어요. 이대로 두면 나라가 위태롭겠구나 싶어서 참전했지요"라고 대답했다.

행사가 거의 끝나 진남실내체육관을 나오니 최신형 K2전차와 장갑차 등을 전시하는 곳에서 군인과 시민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아무개씨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6.25전쟁이 터지자 보병학교에 입대해 소대장으로 참전했어요. 당시 18살 학생이었는데 3개월간 훈련받고 전쟁터에 바로 투입되었지요. 그때 얼마나 사람이 많이 죽었는지…. 부대배치를 받아 전임 소대장을 찾으니 어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정말 배고프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전쟁터에 나선 군인들이 많이 죽어갔어요. 동기들은 거의 전쟁터에서 죽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던 동기들도 나이가 들어 죽고 지금 살아남은 동기들 몇 명 안돼요.

연단에 꽃다발을 걸고 앉아있는 분들이 최초 참전한 183명의 학도병 중 현재까지 생존한 학도병들이다.
 연단에 꽃다발을 걸고 앉아있는 분들이 최초 참전한 183명의 학도병 중 현재까지 생존한 학도병들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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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국민들이나 젊은이들 하는 짓 보면 걱정이 돼요. 정말 무슨 일 나면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재향군인회 하는 짓들도 마음에 안 들어요. 관제데모나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고. 전쟁터에 나가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게 전쟁이에요.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도 수억을 주며 보상해주면 입 닫는 것이 말이 됩니까? 6.25 전쟁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들은 얼마나 보상해줍니까?"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지. 군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관제데모나 하는 게 참…" 하고 말문을 닫은 김씨는 "다음에 또 보자"며 자리를 뜨는 김씨를 보며 참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5살인 김씨가 받는 참전수당은 18만 원이고 여수시에서 받는 7만 원이 전부다.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에서는 화개전투에서 유골을 발굴해 유전자 감식을 했지만 아직도 유족을 못 찾은 9명 학도병들의 유족을 찾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학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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