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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릴 주(走)는 갑골문에서 보듯 마치 춤을 추듯 달리는 사람의 모양이다.
▲ 走 달릴 주(走)는 갑골문에서 보듯 마치 춤을 추듯 달리는 사람의 모양이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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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시장에 나귀를 팔기 위해 손자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나귀를 앞장세우고 손자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한 사람이 그걸 보고는 나귀가 있는데 타지도 않고 걸어간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노인은 손자를 당나귀에 태웠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이 노인은 걸어가는데 어린 아이가 탔다며 한 마디 한다.

노인은 하는 수 없이 손자를 걷게 하고 자신이 나귀에 올랐다. 얼마 안 가서 또 한 사람이 어린 애는 걷고 어른이 탔다며 손가락질이다. 이도저도 안 되자 노인은 결국 긴 막대를 구해 나귀를 그 사이에 걸쳐 손자와 함께 어깨에 메고 걸었다. 그렇게 나귀를 메고 강을 건너다 그만 강물에 나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자기만의 길을 가라, 남들이 뭐라 하든 내버려두고(走自己的路,讓别人說去吧)"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길을 걷는 것은 인생에 대한 가장 위대한 은유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고 노인처럼 귀가 얇은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인생이란 길을 걷다보면 주변의 얘기, 남들의 시선에 자신의 걸음이 흔들릴 때가 많고, 뚜벅뚜벅 자기만의 길을 걷기가 쉽지만은 않다.

달릴 주(走, zǒu)는 갑골문에서 보듯 마치 춤을 추듯 달리는 사람의 모양이다. 윗부분은 팔을 흔들리며 달리는 사람의 형태인 요(夭)이고, 아랫부분은 발바닥을 나타내는 지(止)가 결합되어 '달리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다(走的走, 留的留)"는 말처럼 중국어에서는 주로 '걷다, 가다'의 의미로 쓰인다.

당대 두보와 명대 동기창(董其昌)은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가라(讀萬卷書,行萬里路)"는 조언을 남겼다. 폭넓은 지식을 책에서 얻고, 그 지식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검증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임금은 치수를 위해 중국 각지를 누볐고, 공자는 자신의 뜻을 실현할 곳을 찾아 천하를 주유했다. 사마천은 사료를 찾아 전국을 직접 두 발로 걸었고, 이시진은 약초를 구하러 또 천하를 떠돌았다. 저마다의 절박한 이유로 두 발을 내딛어 자기만의 길을 걸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걸음은 두레박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그들 앞에 길어 올려 주었다. 가슴에 사무치는 절박한 이유를 품었으니, 노인처럼 주변의 얘기와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니체는 "생각은 걷는 발의 뒤꿈치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팔을 춤추듯 흔들며 두 발을 번갈아 내딛어 보자. 그 발의 뒤꿈치에서 새로운 생각이 움터 자라고, 그 걸음이 두레박 되어 새로운 지혜를 길어 올려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태그:#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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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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