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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어 먹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은 농부의 아들이었고, 의사로 성공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세상물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음식 맛있게 한다고 식당 차리면 다 잘 될 것 같아요? 망해요 망해. 농사도 마찬가지라고. 쉬워 보이죠? 아니라고, 자기 먹을 것만 농사지으면 모를까?"

그의 결론은 간단했다. 귀농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농사, 귀농에 대한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넉넉한 자본을 들고 시작하면 겨우겨우 할 만하다는 게 최고의 긍정이었다. 하지만 해 보지도 않고 발을 뺄 수는 없었다. 농사를 잘 알지 못하기에 조금씩 맛을 보기로 했다.

몇 해 전부터 일군 주말농장

바질은 날 때부터 반질반질하고 특유의 향이 난다. 기특한 작물이다.
▲ 바질 새싹 바질은 날 때부터 반질반질하고 특유의 향이 난다. 기특한 작물이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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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몇 해 전부터 주말농장을 일구기 시작했다. 여가 활동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 아이템 개발이 목적이다. 예쁜 화초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돈이 되는 작물을 심었다. 그렇게 감자, 들깨를 심어서 왕창 손해만 보고 올해는 시류를 따라 바질을 심었다.

양평에 있는 황토땅 5평을 1년 기한으로 빌려 인터넷으로 주문한 스위트 바질 씨앗을 500립 정도 뿌렸다. 4월 초순의 일이다. 외국산 작물을 우리 땅에 심자니 농사 초보인 나도 머리가 복잡했다.

작은 비닐하우스도 만들어 보고 노지에도 뿌려보고 포트에 직접 심어도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키웠다. 결과는 20% 생존. 100주 정도의 바질이 살아 남았는데 그 중 상품성이 있는 건 절반 정도였다.

6월 중순부터 잎이 제법 커지고 맛도 올라서 파스타에 넣어 먹어봤다. 평이 좋았다. 합격. 이제 상품으로 팔아보기로 했다.

100주의 바질이라고 하면 한 가정에서 소화하기에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생바질잎을 따고 또 따서 물리도록 파스타를 해 먹어도 잎이 줄지 않는다. 우리집에서 파스타 해 먹는 빈도수라면 말려서 먹으면 1년은 먹을 수 있을 양이다.

하지만 판매를 하자고 하면 또 양이 애매하다. 대략 1킬로그램 정도의 양이 나온다. 어디까지나 짐작이고 품질을 따지지 않은 수치다. 뭐, 그 만큼만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수확량을 그렇게 예상하고 기존에 생바질잎을 파는 업체의 가격정책을 파악한 다음 100g에 1만2000원의 가격을 매겨서 오픈마켓에 상품 등록을 했다. 약 20일이 지난 지금 150g를 팔았다.

5평 주말농장에 든 비용.
 5평 주말농장에 든 비용.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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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시점에서 수지타산이 맞는지 계산해봤다. 알아 보기 쉽게 100g의 바질을 키우는 데 들어간 비용을 산출해봤다. 1만2000원보다 한참 모자라야 이익이 남는 것이다. 계산 결과, 내가 1만2000원짜리 바질 100g을 키우는 데 들어간 비용은 1만1000원이었다. 100g씩 팔 때마다 1000원의 이윤이 남는데 올해 총 1000g을 수확한다면 만 원의 이윤이 남는 셈이다.

석 달 일해서 얻는 이윤이 단돈 만 원이라니. 암담했다. 세 달 동안 밭 갈고 씨 뿌리고 잡초 뽑고 거름 주고 물 뿌리고 키워서 가지 치고 꽃 따내고 수확해서 포장재료 구입해서 택배로 실어 보냈는데 고작 만 원을 남긴다니 억울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시급을 따져봤다. 40시간(총 20회 방문했는데 회당 2시간씩 일했다고 가정하면) 일하고 만 원 받았으니 시급이 250원 꼴이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이건 노동이 아니라 노예 생활이다. 이런 사업주가 있어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면 무조건 내가 이긴다.

 주말농장, 5평 바질 농사의 수지타산

물론 나는 일종의 실험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성적표만으로 내 농사를 예측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원래 본 제품이 나오기 전에 만드는 샘플은 고비용이 투여될 수밖에 없다. 기술도 부족하고 안정적인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아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투자 비용에 가깝다.

성적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본격적인 농사를 지으면 개선될 점도 보인다. 주말농장과 본농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땅과 이동거리다. 땅은 늘릴 것이고 평당 임대료는 지금보다는 훨씬 낮아질 것이다. 충분한 자본을 마련한다면 내 땅을 구입할 수도 있는 문제다. 거기다 본격적인 농사를 지으면서 자동차로 먼 거리를 움직이지는 않는다. 터전을 잡고 우리 동네에서 농사를 짓게 될 것이므로 교통비는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농사 지어 먹고 살 수 있을까?

초보농사꾼의 손길에도 안 죽고 잘 살아 주었다. 내려다보자면 때떄로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 스위트 바질 초보농사꾼의 손길에도 안 죽고 잘 살아 주었다. 내려다보자면 때떄로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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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내 개인의 문제는 크지 않다. 아직 준비하는 단계이니 자본을 마련하고 기술을 익히고 앞으로 더 실험을 해 보면서 방법을 찾아볼 여지가 남아 있다. 정작 큰 문제는 농사를 바라보는 사회와 정부의 태도다.

요즘 언론에서 농촌의 현실을 다룬 내용을 본적이 없으며 FTA를 체결하는 족족 우리 농산물은 궁지로 몰리고 있다. 이것이 추세라면 내가 터전을 이루고 먹고 살려 하는 농사의 미래는 암담하다. 개인이 극복해 나가기에는 꽤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난 어떻게든 해 보고 싶다. 꼭 전업농사꾼이 아니라도 좋다. 다른 직업과 병행하면서라도 내 입에 들어갈 작물을 내 손과 발로 키워 내고 그걸 팔아서 돈을 벌고 애를 키우며 살아가고 싶다. 무슨 큰 포부가 있거나 대단한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땀흘려 먹고 사는 일 중에 그게 가장 멋져 보인다.

그야말로 단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나는 이렇게 또 한 번의 각오를 다져본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바질농사, #스위트바질, #도시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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