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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까지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 기자 말

그는 나흘간 우리 집에서 방문을 달아줬던 목수였다. 안방 문을 달러 들어온 그는 행여 오해라도 살까봐 그런지, 애써 살림살이에 눈길을 두지 않고 조신조신 행동했다.

이들에게 이 변두리 골짜기인 엔조로에 사는 '외국 놈'은 신기할 터. 탄자니아인이 갖는 외국인 이미지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것들이다. 어떤 물건을 쓰고, 무엇을 먹으며, 집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일거수일투족 모든 게 다 궁금한 게 그들이다. 이런 세상에서 그의 이러한 모습은 내게 큰 신뢰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아니,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벽 옆에 세워둔 통기타. 다니는 교회에 이와 똑같이 생긴 기타로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정말 멋져 보인다고 한다. 한번 쳐보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는 그에게 믿음이 생겼다.

나를 볼때마다 긴 머리 귀신이라고 운다. 아프리카 사람의 머리는 자랄수록 나선형으로 감아 돌아가 피부를 자극하기에 거의 모든 남자가 박박 미는 대머리다. 이러니 난생 처음으로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피부 하얀 사람을 만난 꼬맹이로서는 겁나게 무서운 거다.
▲ 안집 꼬맹이 데이비드 나를 볼때마다 긴 머리 귀신이라고 운다. 아프리카 사람의 머리는 자랄수록 나선형으로 감아 돌아가 피부를 자극하기에 거의 모든 남자가 박박 미는 대머리다. 이러니 난생 처음으로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피부 하얀 사람을 만난 꼬맹이로서는 겁나게 무서운 거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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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져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를 쫓아가니, 구멍가게 앞에서 우유와 빵을 사 먹고 있다. 이런저런 이바구 끝에 그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으며, 목공소에서 일을 하고, 오늘처럼 출장 나가는 날에는 일당 1만 실링(한화 8000원 정도)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값을 대신 치러주고, 일이 끝나는 다음날 책장·소파·옷장·방충망·찬장을 직접 만들어 주길 부탁하며 공사비 45만 실링 중 30만 실링을 선불로 줬다.

먼저 책상과 찬장이 필요할 거라면서 기다려달라고 했던 일주일 뒤에 실버호텔 옆 그의 작업장을 찾아갔다. 그는 한꺼번에 다할 테니 2주일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받은 돈으로는 재료를 샀다면서 창고 문을 열어 쌓아둔 목재를 보여줬다. 그리고 열흘 뒤. 모기 조심하라며 그의 동료는 우리집을 방문해 새로 만들 방충망 치수를 재기도 했다.

"뭘 믿고 돈부터 줘? 믿을 게 따로 있지. 같은 종족인 나도 탄자니아 사람 못 믿는데. 순진한 므중구(외국인) 같으니라고."

어떻게 알았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반응이었다. 약속했던 3주때 금요일 오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작업장을 찾았다. 나와는 하등 상관이 없을 문짝을 짜던 그가 책상은 이미 만들어놨다면서 창고문을 열어 확인시켜줬다.

"책상만? 다른 것은?"

그는 곧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내일은 분명 책상도 가져다주고, 방충만도 달러 갈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집에서 꼭 기다리라고 있으란다.

"으음... 너 이러다 경찰서 갈 수 있어"

나를 무던히도 괴롭히던 목수. 사진 찍을려고 하니 자기도 양심은 있는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 목수 나를 무던히도 괴롭히던 목수. 사진 찍을려고 하니 자기도 양심은 있는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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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3시가 넘어도 그는 오지 않는다. 슬슬 약이 오른다.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머리가 부산해진다. 내게서 받은 돈으로 사뒀다던 나무로 다른 사람의 문짝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가게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뿐,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냐고 물어보자 모두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축구 경기를 보러 술집에 갔다고 한다. 젠장, 어느 술집인지 알아야 쫓아갈 수 있지. 이윽고 얼마 후에 '오늘 경기는 이랬네 저랬네' 웅성거리면서 사람들이 들어온다.

"왜 거짓말했냐?"
"폴레 싸나(정말 미안하다)."
"너 내일 일요일은 교회에 가냐?"
"그럼, 당근이지."
"만날 거짓말 하면서도 교회는 다니나 보지?"
"…."

'쎄마 우옹고(거짓말) 한 다음에 카니사(교회)가서 쿠살리(기도) 하면 싸와(오케이)냐?"
"…. 미안해. 월요일은 반드시 갈게."
"으음…. 이러다가 너 경찰서 갈 수 있어."

참나, 싸우다가 말이 많이 늘었다.

매번 그를 찾아갔지만, 매번 허탕을 쳤다.
▲ 목수 가게 매번 그를 찾아갔지만, 매번 허탕을 쳤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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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미스터 킴비씨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가 월요일 가보겠단다. 하루 지난 월요일, 돌아온 그가 말하기를 화요일은 분명코 만들어오기로 약속했단다.

역시 화요일이고, 나발이고, 그 목수로부터는 일언반구 소식이 없다. 이들에게 약속이란 그저 터진 주둥이에서 나오는 하등 무게 없는 말과 같다. 그러나 조선 놈인 내가 터진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흘러 들을 수는 없지 않는가.

어떻게 해야 하나….


태그:#탄자니아, #모시, #아프리카봉사, #NGO, #아프리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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