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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하는 우리들만의 '속리산 1박 2일'을 위해 2015년 7월 4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고속도를 상쾌한 기분으로 속도를 내달리는데 쭉 뻗은 고속도로가 내 기분처럼 상쾌했다. 장애를 얻고 확연히 한 눈에 이상이 있음을 자각하고 병원치료 시 재활병원의 의사에게 이를 상담한 적이 있다.

당시의 그는 '노안이 올 나이가 되었다'며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이른바 자가 재활을 하면서 내 눈에 이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공무원 시험 준비 시 주석을 단 작은 글씨는 전혀 읽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민원인이 내미는 신분증에서 6과 8, 3과8, 5와 8 등을 구별하지 못해 혼자 애를 먹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쪽의 시각령(Visual Cortex)에 손상이 생겨 이른바 반맹(Hemianopsia)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왼눈이 선명하지가 않아 운전시에는 나도 모르게 중앙선 쪽으로 붙지 못하고 바깥으로 치우치게 주행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왼눈이 선명해지면서 운전 시 중앙선은 물론이고 반대 차선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이날 아침 운전하는 내내 기분이 상쾌했다. 병원 치료를 스스로 그만두고 내 몸을 실험도구 삼아 이른바 자가 재활을 한 내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인 것이다.

지난 5월 '38년만의 소풍' 당시 번개를 이곳 속리산에서 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이곳 보은에서 우리의 친구 서충식(51, 보은군 탄부면)이 300여 마리의 한우를 기르며 1만5000여 평의 논을 경작하는 대농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번개의 준비를 위해 내가 일찍 나서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 내게는 각별한 충식이가 일군 농장을 친구들보다 먼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비닐우산조차 귀했던 1972년 초여름 수업이 파하던 때 쏟아지는 비로 인해 멀게는 4~5킬로미터까지 걸어다녔던 우리들 중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들은 난감했다. 농사일에 바쁘던 부모님들도 우산을 가지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학교에 오시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면 소재지여서 또래의 남학생들만 우리 마을에 30여명 되는 큰 마을이었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나를 포함한 세 명만 한 학교에 다녔고 나머지는 다른 학교에 다녔다. 늘 셋이 다녀야 했던 난 우산이 없던 충식이와 내 우산을 함께 쓰고 충식이네 마을과 갈리는 사거리까지 신작로를 통해 넷이서 함께 갔다.

문제는 거기부터 오른쪽으로 1킬로미터 남짓이면 우리 마을이고 충식이는 그대로 3킬로미터 정도를 더 가야 했다. 한 마을에 사는 두 친구는 거기서 집으로 갔고 우산 없는 충식이를 보낼 수 없었던 난 혼자서 그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왔다. 포장이 안된 신작로를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내가 거의 7~8킬로미터를 우산을 쓰고 걸어야 했으니 얼마나 젖었겠는가?

집에 가니 어머니가 놀라시며 따뜻한 아랫목속 이불로 끌어들여 따뜻한 품에 꼬옥 안아주셔서 그대로 잠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일이 학교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초지종을 아시게 된 그의 아버지가 학교에 찿아가 교장 선생님에게 알렸고 매주 월요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하던 조회시간에 난 '선행상'을 받았으며 가슴에도 명찰처럼 플라스틱 표지를 달게 되었다. 거기에 교장선생님이  훈시를 하시는 단상에 올라오게 하셔서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순신 장군님보다 더 훌륭한 어린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당시에 난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가슴에 단 '선행' 표식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어머니가 잊지 않고 달아주셨고 한 마을에 살았던 큰 아버지들과 사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화제가 될 정도였다.

어린 내 가슴에 오래도록 자랑스러운 훈장이었던 그 일을 있게한 상대를 '38년 만의 소풍'에서 수십 년 만에 만났으니 그 반가움이 오죽했겠는가? 공주농고를 졸업하고 아버님이 고향의 가산을 정리하고 떠난 후 간혹 소를 키운다는 소리를 전해 듣기만 하다가 드디어 오늘 찾아 가는 것이다.

들녘에 대규모로 조성된 축사에 가니 큰 눈망울의 소들이 송아지부터 어미소, 비육우까지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고 건강한 모습의 충식이는 소들의 먹이를 트랙터를 이용해 대형 혼합기에 쏟고 있었다.

 곡물의 겨 등을 커다란 혼합기를 이용해 섞어 고급육을 사용하기 위한 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 각종 재료를 커다란 혼합기에 섞어 고급육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한다 곡물의 겨 등을 커다란 혼합기를 이용해 섞어 고급육을 사용하기 위한 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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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비롯한 곡물들의 겨와 짚을 혼합기에 섞는 동안 여유가 있어 대농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입대를 해서 휴가를 나와 고향집을 찾아가니 당시 결혼한 큰 누님이 사시던 이곳 보은으로 이사를 했다고 해 3박 4일 휴가 중 이틀을 허비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농사에 뜻이 있어 농고를 다녔으나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형편인지라 남의 땅을 부쳐가며 틈만 나면 남의 일을 다니며 품을 팔았다고 한다. 농토를 빌려서 경작하는 자기 농사는 새벽이나 밤 시간을 이용했고 일과 시간은 온전히 남의 품을 팔아서 생활을 하며 돈울 모아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새벽 4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인대에 손상이 가 얼마 전 어깨수술을 했단다. 그렇게 밑천 하나 없이 성실과 젊은만을 가지고 살았따. 그러더니 이 지역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서 타동네 앞에 축사를 짓기 위해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니 압도적 지지로 새로운 축사를 신축했다. 이후 한우 사육에도 인정을 받아 보은·영동·옥천 축협의 감사를 거쳐 지금은 11명의 이사 중 하나로 활약한다고 했다.

 젊음과 성실을 밑천으로 이 고장에서 인정받은 충식이는 다른 마을에 두번째의 한우농장을 설립할 때 누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 구역을 나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한우농장 두곳에서 300여마리 한우를 사육중이라 한다 젊음과 성실을 밑천으로 이 고장에서 인정받은 충식이는 다른 마을에 두번째의 한우농장을 설립할 때 누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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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시절 작은 우산 하나에 의지했던 친구의 고달팠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너른 들 가운데 굳건히 자리한 넓은 한우농장을 떠나 그 시절의 친구들과 속리산에서 함께 할 '1박 2일'을 준비하기 위해 친구들과 합류했다.

우리 초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해야 71명이다. 그중 이번 1박 2일에 15명이 참석했다. 그 중에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인터넷으로 개인 음악방송을 한다는 강은지(53, 천안시 쌍용동)는 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우크렐라를 연주했다.

또 먼 곳 포항에서 올라와 일 때문에 늦은 밤 내려간 일환이 수박, 참외, 메론 등 갖가지 과일에 장소가 협소해 설치를 못했지만 캠핑장비 일체를 준비해온 표준과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배현길(51, 대전시 송강동) 차편이 없어 선배를 동원해 참석한 친구들까지 모두들 열과 성을 다해 이번 모임을 잘 가꾸었다.

이번 모임의 목적인 회칙안을 확정짓는 일은 바비큐 파티를 하며 마무리지었으며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지켰다.

 꿉머구벅 졸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킬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속리산중에서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운 초등학교 친구들 꿉머구벅 졸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킬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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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밤을 보내고 일이 있는 친구들이 빠져나간 후 남은 우리는 정이품송, 법주사를 관람하고 충식이와 식사를 위해 보은 축협이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

축협매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이나 직원들이 '서 이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 충식이가 이 지역에서 받는 신망을 능히 짐작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성실과 땀만으로 일구어낸 놀라운 성취가 곧 더 큰 그의 업적으로 이어질거라는 생각에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 길에 올랐다.

 축협에서 직영하는 '한우 이야기'에서 만난 조합원과 직원들이 충식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가 이 지역에서 얻은 신망을 알 수 있었다
▲ 헤어지기전 보은축협에서 직영하는 '한우 이야기'에서의 점심식사 축협에서 직영하는 '한우 이야기'에서 만난 조합원과 직원들이 충식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가 이 지역에서 얻은 신망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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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품송, 법주사, 말티고개 등을 한껏 여유를 부리며 돌아보며 행복했던 '왕초71의 속리산 1박2일'을 마무리했다.
▲ 마무리를 함께한 친구들과 정이품송 앞에서 정이품송, 법주사, 말티고개 등을 한껏 여유를 부리며 돌아보며 행복했던 '왕초71의 속리산 1박2일'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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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치식, #서충식, #왕초71, #완전한 재활, #자가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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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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