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TV 쇼에서 요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요리' 같이 비싸고 까다로와 보이는 말보단 '맛집' 같이 싸고 푸짐하며 입맛을 자극하는 말이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맛집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쉽게 떠오르는 구성 요소들이 있다. 속사포 같은 내레이션과 심심찮게 말초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요란한 화면 구성, 어딘가 한 군데씩은 튀는 데가 있는 메뉴, 빈틈없이 가게를 채운 사람들이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치우며 한결같이 내놓는 호평 등.

팔지도 않는 메뉴를 급조해가며 방송국과 음식점을 '중매'시키는 브로커가 있음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트루맛쇼>가 관객에게 충격을 준 것이 2011년이다. 그간 요리를 소재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요리사가 레시피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지만 최근처럼 대세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불과 몇 년 사이에 '셰프테이너' 같은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요리사가 TV 쇼의 소재로 떠오르게 된 것일까?

'독설'과 '냉정함'으로 무장한 브라운관 속 요리사의 등장

 올리브 TV <마스터 셰프 코리아3>의 녹화 현장 모습. 왼쪽부터 강레오, 노희영, 김훈이 심사위원.

올리브 TV <마스터 셰프 코리아3>의 녹화 현장 모습. 왼쪽부터 강레오, 노희영, 김훈이 심사위원. ⓒ CJ E&M


우선은 어쩌다 TV가 요리사라는 소재에 눈길을 두게 되었는지부터 생각해 본다. TV쇼가 요리사를 소재로 사용하게 된 건 요리사와 요리 자체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기 보단 요리사라는 캐릭터가 지닌 독특함 덕이었을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은 한창 독설과 직언이 예능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였던 시기였다. 강하고 거침없는 캐릭터가 사랑받던 때였다. 그 과정에서 주방을 휘어잡으며 욕설도 마다않는 요리사를 전면에 내세운 해외 TV 쇼가 몇몇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욕설을 수시로 내뱉으며 마음에 차지 않는 요리를 서슴없이 깎아내리는 고든 램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네 닭은 너무 안 익어서 샐러드를 먹으려고 들 지경이다", "네 닭은 너무 안 익어서 잘만 하면 수의사가 살릴 수도 있겠다"는 독설이 관용구가 되어 인터넷에 나돌 정도로 고든 램지는 유명세를 떨치는 '스타 셰프'다. 이런 독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건 고든 램지가 미슐랭 스타를 수두룩하게 가졌을 정도로 함부로 부인 못할 실력파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TV 쇼에 등장한 요리사들도 처음엔 꼭 고든 램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2009년과 2011년에 제작된 QTV <예스 셰프>나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제작된 올리브 TV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리즈에 등장하는 요리사는 심사위원으로서 항상 냉정할 정도로 엄격한 모습을 보여줬다. 화려한 커리어를 바탕으로 공정한 심사를 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비슷하다. 2010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인 MBC <파스타>에서도 깐깐한 성격의 요리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요리사를 소재로 한 많은 TV 쇼가 경쟁과 생존이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해외의 TV 쇼와 비슷한 점이다. 요리사나 요리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심사위원의 독설과 극도의 경쟁 속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이 시청자에게 말초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 이런 TV 쇼의 핵심이다. 물론 탈락자를 둘러싸고 한바탕 눈물을 쏟는다거나 하는 '감동 코드'가 중간중간 섞이면서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이 때의 '위압감을 풍기는 요리사' 캐릭터는 요리사가 TV쇼의 소재로서 활용될 수 있는 한 전형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지금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데까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뭔가 가르치려 들고 왠지 어려워 보이는 캐릭터를 별반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금 브라운관 속 요리사들, '이것'이 다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김풍, 샘킴, 정창욱, 최현석, 미카엘 아쉬미노프(왼쪽부터)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김풍, 샘킴, 정창욱, 최현석, 미카엘 아쉬미노프(왼쪽부터) ⓒ JTBC


그렇다면 최근의 TV 쇼에 등장하는 요리사들은 뭐가 다른 걸까? 아무래도 웃기고 친근한 데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말부터 방영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특히 그렇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최현석의 '소금 뿌리기'가 각광을 받은 것처럼, 요리사 간의 대결 방식이 사용되는 것은 다른 프로그램들과 비슷하지만 적절하게 웃음 요소가 녹아들은 것이 <냉장고를 부탁해>의 특징이다. 비교적 구하기 쉬운 재료로 덜 복잡하게 요리한다는 점은 덤이겠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백주부의 고급진 레시피'도 마찬가지다. 이 안에서 백종원이 선보이는 요리는 쉽고 재미있고 친근하다. 거기다 그는 웃기기까지 하다. 물론 요리도 '그럴싸'하다.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인터넷 방송 형식이라는 점은, 역시나 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부에서 지적하듯 그렇게까지 '바람직한 상'은 아닐지 몰라도, 결국 대중적인 기호에는 이런 '친근하고 웃기는' 요리사 캐릭터가 더 잘 들어맞는다는 얘기가 된다. 록스타처럼 욕설을 서슴지 않는 고든 램지나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으면서도 '대충'을 강조하는 제이미 올리버 같은 반항아보다는, 망가지면서 호감을 사는 '예능감 있는' 요리사가 TV 쇼엔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점은 2013년 첫 방영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올리브 TV <한식대첩> 시리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지역 고수'들은 이웃처럼 친근하고 곧잘 구수한 농담도 건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추세가 어떤 방향으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흥미진진한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심지어 이제는 '요리'를 넘어 '미식'을 내세운 프로그램도 방영되고 있지 않은가? 예전처럼 출연자들 간 의견 일치를 강요하지도 않고 개개인의 맛 취향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분명 이전의 TV 쇼에서 찾아볼 수 없던 점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한식대첩 마스터 셰프 코리ㅏ 마이 리틀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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