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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부터 비가 내립니다. 이 비는 가문 땅을 촉촉히 적시고, 못을 그득 채워주겠지요. 나무가 더욱 푸르게 자라도록 북돋우고, 온갖 씨앗이 씩씩하게 트도록 이끌어 줄 테고요.

비가 오는 날에 아이들은 비 노래를 부릅니다. 큰아이는 '비야 비야 오너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작은아이는 '비야 비야 그쳐라'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큰아이는 나무가 살려면 비가 와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작은아이는 비가 그쳐야 마당에서 뛰논다고 노래합니다. 큰아이는 동생한테 다시 말합니다. 이렇게 비가 와야 놀이터 미끄럼틀이 뜨겁지 않다고 말합니다. 비가 와줘야 우리가 더 신나게 놀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비는 그치지 않습니다. 배불리 밥을 먹은 두 아이는 비를 맞으면서 마당에서 뜁니다. 옷이 젖든 몸이 젖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비를 맞으면서 깔깔깔 노래합니다.

한동네 어느 집도 가난하게 살고, 한집 어느 식구나 허기지련만 배 안에 아기 가진 이만은 넉넉히 먹고 입었습니다. 아득한 옛적부터 온 동네, 온 식구가 그를 그리 대접해 왔습니다. 사람은 태어나고부터가 아니라 어머니 배 안에 생겼을 때부터였습니다.(<인간 회복의 교육> 23쪽)

갓난아기로야, 같은 방에 늘 함께 있는 사람이기에 새 경험은 없이 만날 똑같은 나날일 것 같지만, 아기 돌보는 어른이 하기에 따라서는 하루하루가 새날임은 물론, 반나절조차 오만 가지 새 경험으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경험은 그 사람을 온통 새롭게 합니다.(<인간 회복의 교육> 35쪽)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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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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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운씨가 쓴 <인간 회복의 교육>(살림터, 2015)을 새롭게 읽습니다. 이 책은 1982년에 처음 나왔고, 성내운씨는 1926년에 태어나서 1989년에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온삶을 오롯이 교육운동에 바치면서 한 길을 걸은 성내운씨가 쓴 <인간 회복의 교육>은 <에밀>이라는 책을 읽은 뒤 이 책을 한국 사회에 맞추어 새롭게 풀어서 쓴 이야기 꾸러미입니다.

<에밀>은 1700년대 프랑스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돌보는 길을 밝힌 이야기입니다. 이 책 한 권으로도 넉넉히 알차거나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고, 좀 오래된 유럽 이야기로 여길 수 있습니다.

성내운씨는 이 이야기를 오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한테 새로운 이야기로 들려주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깃든 넋을 헤아려서 한국 어린이와 어버이가 2000년대에 새롭게 거듭나서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주고 싶어서 <인간 회복의 교육>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이른바 조기 교육이 크게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두 살이면 두 살배기 아기로서 알차게 발달시키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머리만 어른스러운 아기이기를 바라는 생각일 경우가 많지 않은가 생각됩니다.(본문 64쪽)

선생님은 에밀이 어린 동안은 책으로 하는 공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에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책 삼아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 선생님은 어린 에밀을 우선 개구쟁이로 자라게 하셨습니다.(본문 73, 76쪽)

1982년에 처음 나온 책이기에, <인간 회복의 교육>을 읽으면 1970∼80년대 한국 사회와 교육이 어떤 모습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2010년대에 새롭게 읽는 동안 한 가지 모습을 더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와 교육은 197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달라지지 않았어요. 시설이나 건물은 번쩍번쩍 빛나고, 대학교를 마치거나 외국에서 배우고 온 사람은 부쩍 늘었습니다만, 입시지옥은 더욱 단단해지고 학력 차별은 사그라들지 않아요. 1970년대나 2010년대나 똑같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지난 마흔 해 사이에 학교교육은 언제나 입시교육으로만 흐를 뿐, 삶하고 사랑하고 사람을 아끼거나 섬기는 교육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에밀>에서든 <인간 회복의 교육>에서든, 아이는 '개구쟁이'나 '말괄량이'로 뛰놀면서 자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아이는 '시골'에서 뛰놀 수 있도록 어버이와 어른이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가지 책에서 나오는 '시골'은 그냥 시골이 아닙니다. 숲이 우거진 삶터입니다. 나무가 아름드리로 크고, 냇물이 싱그러이 흐르며, 온갖 들짐승이 함께 살고, 풀내음이 짙은 바람이 불며, 손수 씨앗을 심어서 가꿀 수 있는 삶터를 '시골'이라는 이름으로 가리킵니다.

1982년에 처음 나온 책 겉그림.
 1982년에 처음 나온 책 겉그림.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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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나 '말괄량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기쁘게 놀고, 신나게 노래하며, 아름답게 웃을 수 있는 아이입니다. 장난감이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나 손전화에 기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싱그러이 웃고 뛰놀 줄 아는 아이가 바로 개구쟁이요 말괄량이입니다.

모든 동포가 먹고 입는 것을 생산하는 가장 쓸모 있는 기술이 가장 덜 버는 기술이 되고, 일부 사람들을 위해서 사치품을 사다 파는 가장 쓸모없는 기술이 가장 많이 버는 기술이 되고 있다면, 그러한 사회적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 교사들 자신도, 사람에게 쓸모는 적지만 돈은 많이 버는 기술을 우러러보고, 쓸모는 많지만 돈은 적게 버는 기술을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본문 111쪽)

교과서에 실려 있는 역사가, 선량한 민중이 평화를 염원하며 살아온 발자취라기보다는 그 민중을 지배해 온 왕과 귀족들이 전쟁을 일삼으며 살아온 발자취라는 데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교과서를 외우고 있노라면, 학생들은 부지불식간에 임금들의 은혜를 입어 민중들이 그만큼이라도 살아온 듯이 느끼도록 쓰여 있는 점입니다.(본문 145쪽)

잘 놀고 자란 아이들이 착합니다. 마음껏 놀며 자란 아이들이 아름답습니다. 기쁘게 놀면서 동무하고 어깨를 겯던 아이들이 참다운 마음을 가꿉니다.

놀지 못한 채 학교에서 시험공부만 하던 아이들은 삶을 가꾸는 보람을 어릴 적부터 못 배웁니다. 놀이하고 등진 채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은 사랑을 고이 돌보는 기쁨을 어릴 적부터 못 배웁니다. 놀이를 영 모르는 채 학교랑 학원 사이만 오가던 아이들은 사람이 얼마나 거룩하면서 예쁜 숨결인가를 어릴 적부터 못 배웁니다.

시험공부만 하던 아이들은 숫자랑 돈이랑 성적만 배워서 알 뿐입니다. 입시공부에 얽매이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짝꿍을 만나더라도 서로 아끼는 사랑을 헤아리기 어려울 뿐입니다. 진보를 외치는 입으로 데이트폭력을 일삼고 마는 슬픈 모습은 무엇일까요? 머리에 지식은 있으나, 이 지식을 다스리는 숨결이 없다는 뜻입니다. 책으로 읽어서 얻은 지식은 있되, 몸으로 깨우치거나 느끼거나 배운 넋은 없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책으로 배울 수 없습니다. 기쁘게 놀고, 사랑스레 놀며, 아름답게 노는 사이에 튼튼하고 씩씩하며 의젓한 어른으로 설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 어린이들이 어른들과는 달리 전쟁을 모르고 평화 속에서 창조를 즐기며 살아가게 하는 길은, 지금 그들에게 우리의 과거와는 달리 평화를 살게 하는 것뿐입니다.(본문 174쪽)

남이 가진 것 나는 없대서 슬퍼하지도 아니하고, 남이 없는 것 나는 가졌대서 우쭐하지도 않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나는 남과 다를 뿐, 도리어 그래서 남이 대신 못할 사람이 될 수 있는 '나'라는 것을 믿고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 저는 학생들이 이리 된 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이 학생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본문 245, 246쪽)

비가 퍼붓는 날에도 아이들은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빗물놀이를 즐깁니다.
 비가 퍼붓는 날에도 아이들은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빗물놀이를 즐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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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회복의 교육>이라는 책에서도 밝히듯이 '평화를 살아'야 '평화를 지을' 수 있으며,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전쟁훈련을 시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바로 전쟁과 전쟁훈련을 배워요. 아이들한테 매질을 하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바로 주먹질(폭력)을 배웁니다.

아이들한테 따스한 말을 들려줄 때에 사랑을 배웁니다. 아이들한테 착한 몸짓을 보여줄 때에 삶을 배웁니다. 아이들하고 씨앗을 심으면서 살림을 가꾸는 어른이 될 적에 아이들한테 사람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키우느라 수천억 원이나 수조 원에 이르는 돈을 해마다 쏟아부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아름드리 숲이 되도록 삶터를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4대강사업처럼 냇물을 망가뜨리는 짓에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는 바보짓이 아니라, 냇물을 사랑하면서 들을 보살피는 숨결에 손길을 뻗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골(숲)'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바라보면서 알아야 합니다. 씨앗 한 톨은 비료와 농약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거름을 주면 열매를 더 알차게 맺습니다만, 거름이 없어도 씨앗은 자랍니다. 무엇보다도 숲에 거름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사람이 숲에서 베어서 쓰는 나무는 사람이 거름 한 방울조차 주지 않아도 수백 해나 수천 해를 곧게 자랍니다. 모든 아이는 '나무처럼' 뛰놀면서 자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어른은 아이가 '숲처럼' 포근한 품이 되어 삶자리를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 회복의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됨을 되찾는 가르침입니다. 사람다운 길로 돌아가는 배움입니다. 스스로 사람인 줄 제대로 깨달으면서 슬기롭게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aladin.co.kr/hbooks)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인간 회복의 교육
성내운 글
살림터 펴냄, 2015.5.28.
13000원



인간 회복의 교육 - 에밀의 스승 루소와 이름 없는 교사들에게 드리는 편지

성래운 지음, 살림터(2015)


태그:#인간 회복의 교육, #성내운, #인문책, #교육책,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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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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