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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 계약했던 방으로 드디어 이사했다. 7월이 되어서 살던 세입자가 다른 곳으로 가고, 나와 동거인이 새로 입주했다(관련기사 : "고양이 옷장에 숨기세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

지난 한 달간 집 바깥으로 외출하기가 힘들었다. 고양이 때문이었다. 살던 집을 내놓았기에, 부동산 관계자와 집주인이 고양이를 발견하면 큰일이었다. 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드나들 때 고양이가 뛰쳐나갈까 걱정도 됐다.

그때부터 내가 집에 항상 대기하면서, 방을 보러오면 문을 열어주었다. 5월부터 일을 쉬는 중이라 늘 집에 있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조언처럼 옷장에 숨기고, 울음소리가 들릴까봐 노트북으로 음악도 틀었다. 요즘 뜨는 밴드 '혁오'의 노래에 "야옹" 하는 코러스가 간간히 섞였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지만, 집을 나가려는 순간부터 집주인의 마수가 뻗쳐오기 시작했다. 1년을 살고, 추가로 연장한 1년을 다 채우지 않고 이사 가는 점을 감안해서 돈을 더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거기다 계약은 한 사람 거주였는데 내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이유로 관리비를 더 받겠다고도 통보해왔다. 멈추지 않고 청소비와 부동산 수수료 등을 더 달라는 요구도 이어졌다. 결국 방을 정리하면서 "한 달 방세 만큼의 비용을 더 차감하고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울컥, 하고 목까지 반박하고 싶은 말이 차올랐지만 참았다. 힘없는 세입자의 삶이 이런 건가 하고 삼켰다. 그래도 고양이 세입자가 한 마리 더 있다는 사실을 안 들킨 게 어디냐 싶었다. 만약 그것까지 알아챘다면 어떤 구실로 돈을 더 뜯겨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

드디어 이사, 줄어가는 통장 잔고

이사 후 가구를 구매하느라 줄어가는 통장 잔고.
 이사 후 가구를 구매하느라 줄어가는 통장 잔고.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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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잘 마쳤다. 간소한 짐을 옮기는 것은 수월했는데, 서랍장을 들어서 트럭에 싣는 일은 허리에 통증을 불러왔다. 이삿짐 센터에서 보내준 기사님이 좋은 분이라 다행이었다. 동거를 위해 두 사람의 집을 합치느라 이사를 두 번 해야 했다. '이러다가 몸살 나겠다' 싶긴 했지만, 그것도 돈 걱정에 멀리 날아갔다.

이사하는 집에서는 방이 더욱 넓어졌다. 그러다보니 옵션에 포함되지 않은 가구가 있어서 추가로 구매해야 했다. 최대한 저렴한 제품으로 구입하고, 비용은 동거인과 공평하게 절반씩 나누었다. 입주와 동시에 관리비와 월세도 새로운 집주인의 계좌로 이체했다.

여기까진 계산한 부분이었지만, 이사오기 직전에 추가로 냈던 관리비 때문에 통장잔고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사실 직장을 그만두고 쉬면서 퇴직금으로 지냈던 터였다.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은 라면과 집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아껴썼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며칠만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른 잔고 감소에 덜컥 겁이 났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찌해야 할까. 7월까지는 쉴까 생각하기도 했건만, 예상보다 빨리 줄어드는 퇴직금을 보니 단기 알바라도 해야할 것 같다. 돈을 벌기는 정말 힘든데, 지출되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실감하는 요즘이다. 집안일을 하면서 <오마이뉴스>에 리뷰를 기고하는 삶이 평화로워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런 생활의 끝이 소리없이 다시 코앞에 다가온 것 같다.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앞으로 더 행복하기를...

새로 이사한 집에 설치한 고양이 해먹. 반응이 나쁘지 않다.
 새로 이사한 집에 설치한 고양이 해먹. 반응이 나쁘지 않다.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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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살던 집에서는 창 밖 구경을 취미로 삼던 냥이였는데, 새 집에선 창문 구조가 허락하지 않는 상황. 미안함에 돈을 아껴서 해먹을 선물해주었다. 내가 밥을 한 끼 덜 먹어도, 고양이가 행복한 표정이라면 괜찮다 싶기도 하다.

자금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다시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살아오면서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당장 다시 원고를 쓰고, 일을 구해서 해야할 것이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쉽지 않겠지만 다시 해나갈 수 있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일을 쉬면서 진작 찾아뵙기로 한 아버지께 다녀오지 못한 것이 떠올라 죄송할 따름이다. 아버지네를 방문하는 것은 아마 일을 해서 재정 위기를 극복한 이후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새로 이사온 동네는 지난주까지 살던 대학가보다 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방도 넓어지니 마음도 편안하다. 앞으로도 헤쳐나갈 부분이 계속 생기겠지만, 그래도 다 장점과 단점이 다른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난 것은 아쉽지만, 여기서 다시 추억을 쌓아나갈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든 상황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그래도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힘을 내기로 한다. 잘 될 것이다. 고양이도, 나도, 그리고 마침내 동거인이 된 나의 사랑스러운 애인도.

덧붙이는 글 | 장그래 가계부 기사 공모글입니다.



태그:#퇴직금, #생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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