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 및 교육감 선거에서의 화두는 바로 학생들의 '수면권'이었다. 이에 따라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9시 등교', 그리고 충북 김병우 교육감이 '0교시 폐지' 등을 들고 나왔다. 공약을 앞세워 당선된 진보 성향의 이들 교육감들은 '성적' 이전에 학생들의 '행복 추구권'을 앞세우며 각각 학생들의 충분한 아침잠을 위해 '0교시'를 폐지하고, 9시 등교를 실행에 옮겼다.

2014년 11월 충북 고교생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서 도내 766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70.2%의 학생들이 만족을 표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올해 초 충북의 한 시의원은 '김 교육감의 0교시 폐지 정책으로 '9년은 행복할지 몰라도 90년 불행할 수도 있다'며 0교시 폐지로 인한 교육량 감소, 학력 저하를 문제 제기하고 나서기도 하였다. 과연, '잠'을 줄이고 교육량을 늘려야만 학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인가? '성취'와 '능력'을 위해 개인의 희생과 고통 감수를 당연시하는 '능력 사회'에서 '잠'은 어떤 존재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지난 6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에서 파헤쳤다.

능력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잠을 줄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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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다큐스페셜 ⓒ MBC


다큐는 자신의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잠을 줄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표 사례는 수능을 앞둔 고3수험생이다. 좀 더 높은 성적을 위해 애쓰는 승엽이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수면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부족한 잠 때문에 아침 밥상에서도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엄마는 고기반찬에 영양제까지 챙겨 먹인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잠은 승엽이의 고민이다.

직장인 김씨는 높은 연봉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지만, 유학을 다녀온 동료들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김씨가 남들보다 잠을 덜 자며 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푼다. 일상의 그는 늘 피곤에 절어있다.

보다 나은 능력을 위해 잠을 줄이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만의 사례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점령한 세계 곳곳에서 '능력 사회' 속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잠을 줄이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20%가 잠을 덜 잘 수 있는 '스마트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고, 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 잠을 쫓는 '경두개직류 자극장치(TDCS)가 인기를 끈다. 우리 사회에서 잠을 쫓는 각종 각성 음료는 학생층을 중심으로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위적으로 잠을 쫓는 방식, 성공을 위해 잠을 희생하는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일까?

잠을 줄여 자신의 충전에 사용하는 직장인 김씨, 그를 진단한 의료진은 그의 건강 상태가 시한부 폭탄과도 같다고 경고한다. 줄어든 수면 시간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불면증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태이며, 잠을 자도 숙면을 취하지 못해 쌓인 만성 피로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가장 만만하게 희생의 제물이 된 잠. 하지만, 그 잠을 줄인 결과는 뜻밖에도 참혹하다. 다큐는 현대 인류에게서 벌어진 엄청난 재앙들이 뜻밖에도 부족한 잠의 결과물임을 밝힌다. 체르노빌을 비롯한 대재앙을 불러일으킨 각종 사고들 뒤에는 뜻밖에도 잠이 부족한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즉 잠은 그저 줄여도 되는 만만한 게 아니라 집중력이나 인지능력에 관련 있는 중요한 요소다. 다큐는 잠이 부족할 때 '재앙'이 올 수도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실험군을 잠을 잘 자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나눠 설명한다.

무시했던 잠의 역할...사회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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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다큐는 잠의 역할에 대해 규명한다. 평생 잠을 연구해온 학자들을 동원해 그리고 실제 실험을 통해 '잠'이 그저 휴식을 넘어, 깨어있는 시간 동안 했던 활동을 정리하고 축적하는 시간임을 밝힌다. 깨어있는 동안 했던 공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잠'은 필수인 것이다.

다큐에선 승엽이와 달리, 자신의 환경에 맞춰 잠을 충분히 자며 공부하고 있는 고등학생 다은과 수림의 학습 방식을 바람직한 예로 제시한다. '뇌과학'은 우리 뇌를 도서관에 비유한다. 즉 깨어있는 동안 받아들인 각종 정보를 우리가 잠을 잘 동안 차곡차곡 정리하여, 서가에 책을 꽂듯이 데이터베이스화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잠을 자지 않는다면, 우리 뇌는 정리되지 않는 정보의 포화 상태가 된다는 게 뇌과학의 설명이다.

이렇게 최신의 과학적 이론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수능 만점자가 나오지 않았다'며, '9년의 행복이 90년의 불행을 낳는다'는 담론이 횡행한다. 그런 여전한 '능력 우선주의' 그리고 '그 희생의 제물로서 잠을 당연시 하는'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다큐 스페셜-잠을 지배하라>의 방향은 유의미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늘 그렇듯이, 승엽이와 수림이, 다은이의 방식 제시처럼, 공부를 잘 하기 위한 '개인의 선택'의 문제처럼 제시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잠의 문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처럼 개인이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시스템으로 강요되는 사회 근본적 문제다. 원은인 사회에 있는데 선택은 개인으로 귀결하는 다큐의 시선이 아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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