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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라 비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 송계야영장의 하늘 장마철이라 비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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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웠던 '가족캠핑'을 가는 날이 왔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지는 않을까'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씨는 아주 좋았다. 아침 일찍부터 들뜬 마음으로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월악산 국립공원 '송계야영장'으로 향했다. 부산 근교에 있는 가족들은 한 두 달에 한 번씩 술자리도 갖는데, 멀리 충청도에 떨어져 있는 누나네 식구들은 얼굴 보기가 힘들어서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함께 얼굴 볼 수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고는 각자 '먹고살기 바빠' 자연스럽게 만날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2013년, 내가 갑상샘암 치료를 받으면서 놀란 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 뒤로 자연스럽게 한 두 달에 한 번씩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 모이고 있다.

이번 캠핑에 모인 우리 가족들은 4인 가족 2팀, 2인 가족 1팀, 싱글 2명으로 총 12명의 대식구가 모였다. 그 많은 식구들이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거리에 있는 충청도까지 이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캠핑'을 해야 하니 잠자리에 먹거리까지 준비해야했다. 움직인 차량만 해도 5대다.

수안보에 모여 장을 본 후 야영장에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텐트 4동과 먹고 놀 사이트 1곳까지 총 5개의 사이트를 구축했다. 조카들을 제외하면 가족들 중엔 내가 제일 막내라 열심히 팩을 박고 텐트를 쳤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앉았다가 일어날 때 빈혈이 생기곤 했다. 그래도 마냥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사이트를 구축하고 잠시 그늘에 앉아서 쉬면서 다함께 수다를 떨고 있으니 출근을 하느라 일찍 합류하지 못한 충청도 누나네가 도착했다. 특히 작은 조카는 군대가기 전에 얼굴보고 지금 전역한지가 오래되었는데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다. 지금은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한다고 서울에 살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들 다함께 모인다고 내려오라고 했는데 군소리 하지 않고 와준 게 기특했다.

'성'은 달라도 우리는 가족이다

누나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충청도 사람인 매형과 선을 보고는 시집을 갔다. 그 때는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 않아 우리 집에서 누나네 가려면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렇게 멀리까지 딸을 시집보낸 아쉬움이 25년이 훌쩍 지난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매형의 좋은 인품에 그 아쉬움이 눈 녹듯 사그라든다.

오늘의 집게 잡이는 '고서방'이라고 불리는 외삼촌네 누나의 남편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우리 매형은 대학교 때 외삼촌네에서 하숙을 하면서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제는 누나의 남편으로 우리 가족이 되었다. 아주 가정적이고 순한 성격의 매형이 참 좋다.

나는 재혼가정에서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다시 부모님이 헤어지면서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당시 어머니에게는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최소 나와 15살 이상 차이가 나는, 나와는 '성'이 다른 형제들이다. 그 형제들의 자식들이 나에게는 조카들인데 이제 그 조카들이 어느덧 나이가 들어 성이 다른 삼촌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유씨, 허씨, 고씨, 어씨, 강씨, 박씨까지 성씨는 달라도 우리는 한 가족이다. 몇 년 만에 이렇게 모인 우리의 대화는 밤늦도록 끝날 줄을 모른다.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충청도 우리 매형은 몰래 먼저 텐트에 들어가서 자다가 사촌형에게 다시 끌려 나오기까지 했다. 그래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다시 웃으며 밤을 보냈다.

캠핑의 꽃인 숯불에 돼지목살과 새우를 구워 먹었다.
▲ 숯불구이 캠핑의 꽃인 숯불에 돼지목살과 새우를 구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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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목살과 새우를 숯불에 맛있게 구워낸 숯불구이와 충청도에 오기 전 마산 어시장에 들러서 사온 조개를 솥에 넣고 끓인 조개찜이 오늘의 주 메뉴였다. 조개찜을 먹고 난 냄비에 라면과 어묵을 넣은 어묵라면도 너무 맛있었다. 야영장 옆 마트에 있는 치킨집에서 치킨도 시켜 먹었다.

먹고 마시고 웃고 대화하는 이 시간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고 냄비에 물 하나 올리는데도 서로 하겠다며 우르르 일어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앉아서 먹는 사람보다 서서 먹는 사람이 많은 상황까지 연출됐다.

밤이 깊어지면서 하나둘씩 잠자리에 들고 마지막엔 싱글인 나와 사촌형 둘만 남았다. 우리는 오늘 어차피 한 텐트에서 둘이 함께 자야한다. 큰 대야에 얼음을 붓고 담가 둔 맥주를 한 캔씩 꺼내 마지막 한잔을 기울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나 힘이 되어준 나의 가족들

맛있게 먹고 놀다가 모두가 각자 잠자리에 들고 난 빈자리
▲ 빈자리 맛있게 먹고 놀다가 모두가 각자 잠자리에 들고 난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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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누나가 아침에 우리 텐트를 찾아와 사촌형과 나를 깨운다. 9시가 갓 넘은 시간이었는데 다른 팀들은 충청도 매형이 아는 블루베리 농장에 블루베리 수확하러 다녀왔다고 한다. 아는 지인이 블루베리 농장을 하는데 작은 나무에 열린 블루베리를 인부를 사서 따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포기를 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올해 작은 나무에 열린 블루베리는 언제든지 와서 따가도 좋다고 했단다. 그 덕에 우리 가족들은 블루베리 실컷 먹고 있다.

어제 밥솥에 밥을 한가득 했는데 다른 음식들 먹는다고 밥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 아침에 그 밥에 김치 넣고 볶아서 어제 남은 양념돼지갈비를 구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서둘러 사이트들을 정리했다. 역시 1박 2일 동안의 캠핑은 너무 짧고 아쉽다. 짐 풀었다 걷기 바쁘다.

오늘 점심은 충청도 매형이 맛있는 음식을 사기로 했기 때문에 수안보에 있는 한 백숙집을 예약하고 시간 맞춰 도착했다. 백숙집 앞마당엔 패진 장작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장작불 위엔 가마솥 몇 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가마솥에 끊인 백숙으로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다.

둘째날, 장작을 패서 가마솥에 백숙을 끓여주는 집에서 점심으로 몸보신.
▲ 가마솥 백숙 둘째날, 장작을 패서 가마솥에 백숙을 끓여주는 집에서 점심으로 몸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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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백숙집 주차장에 서서 한참동안 작별인사를 했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일정을 맞춰 모이기가 쉽지 않다. 서로가 그것을 잘 알기에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이별이기에 더 아쉬움이 컸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 혼자 다른 '성'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가 다른 가족들을 가까이 하기 꺼려했었다. 그리고 점점 나이를 먹어 가면서 성이 다른 삼촌을 바라보는 조카들의 시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게 나 스스로의 틀에 갇혀 가족들을 멀리하고 지내왔었다. 하지만 결국 그 들은 내 가족이었고 내가 갑상샘암을 선고 받고 치료를 받을 때 힘이 되어준 것도 그들이었다.

언제나처럼 그들은 날 보고 웃어 주었고 나를 동생으로 삼촌으로 처남으로 도련님으로 대해 주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도 좀 더 마음을 열고 진정한 가족으로 그들의 품에 안겼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태그:#가족여행, #송계야영장, #캠핑, #숯불구이, #가마솥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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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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