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배우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배우 강수연. ⓒ 이정민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6일 임시총회를 갖고 강수연 배우를 공동집행위원장에 임명했다. 부집행위원장에는 KNN기자 출신으로 이명식 부산영어방송 본부장을 선임했다. 이번 공동집행위원장과 부집행위원장 선임은 올해 1월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던 부산시에 대해 영화제 측이 제안한 절충안을 이행하는 성격이다.

부산시가 지난 1월 사퇴 압박 이후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하면서 공동집행위원장 선임이 논의돼 왔다. 공동집행위원장 선임에 대해 영화계는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했으나 최종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간의 갈등이 외형상으로는 정리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부산시가 사실상 영화제를 간섭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잠잠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의 경우 예전에도 물망에 올랐었기 때문에 무난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새로 선임된 이명식 부집행위원장의 경우 부산시의 요구를 받아들인 인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두 인사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차이가 크게 난다.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 2010년에도 후보 물망

우선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의 경우 부산영화제의 의사가 관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 2010년 당시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이용관 위원장과 함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었다. 친분 있는 프로그래머를 통해 본인에게 직접 의사타진을 하는 등 상당히 진척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을 경우 연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했고, 이용관 위원장이 단독으로 맡아야 한다는 김동호 위원장 뜻이 강해 무산된 걸로 알려졌다. 배우 안성기 역시 물망에 올랐으나 "연기를 계속하겠다는 뜻이 강했다"는 것이 영화제 관계자의 전언이다.

강수연 신임 공동집행위원장은 1회 때부터 줄곧 부산영화제에 참여해 왔고, 개폐막식 사회자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영화제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시절 좌파 공세로 정치적 탄압을 받을 당시 기자회견을 자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하는 등 영화제 지키기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영화제 기간 동안 해외 주요 게스트들을 맞이하는 안방마님 역할을 해왔었고, 해외 영화계와의 인맥도 방대해 부산영화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영화제 관계자는 "강수연씨는 부산영화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애정이 깊은 분이다. 어려운 시기에 공동집행위원장직을 맡아준 강수연씨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에 제약이 따를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집행위원장은 부산시의 간섭 인정하는 모양새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에 선임된 이명식 전 부산영어방송 본부장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에 선임된 이명식 전 부산영어방송 본부장 ⓒ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에 비해 이명식 부집행위원장은 부산시 몫으로 결정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부산영화제가 공동집행위원장을 원하는 인물로 선임하는 대신 부집행위원장은 부산시가 원하는 인물을 받아들인 셈이다. 일종의 주고받기를 통한 타협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제가 시의 압박에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한 영화제가 부산시의 요구에 영화와 무관한 인사를 사실상 낙하산 형식으로 내려앉게 한 것 자체가 수치라는 것이다.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힘이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영화계의 한 인사는 "국제적인 영화제로서의 위상보다는 지역 영화제에 방점을 두면서 스스로의 권위를 깎아내리려 한다"는 한숨 섞인 반응을 나타냈다. 일부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영화계가 단호한 저항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부산영화제가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어정쩡한 타협을 택하면서 위기를 자초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임시총회에서는 부조직위원장 추가 선임에 대한 안건도 통과시켰는데, 부산영화제 전용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영화의 전당 이사장이 겸임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인사들은 "이 자리도 서병수 시장 측근 인사와 가까운 인물이 내정된 상태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간섭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부산지역 언론계 관계자는 "신임 부집행위원장이 방송기자 출신이고, 지난 시장 선거 때 도움을 줬다는 등의 소문이 있다"면서 "전문성이 결여된 인물로 부산시의 요구를 반영할 것이기에 프로그램에 간섭할 여지가 많아 내부적 마찰이 우려되는 면이 있다"고 전했다.

"부산영화제의 무기력한 대응, 독립성과 자율성 침해 빌미될 수도"

 6일 부산국제영화제 임시총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에 선임된 (오른쪽부터)강수연 배우와  서병수 부산시장,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6일 부산국제영화제 임시총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에 선임된 (오른쪽부터)강수연 배우와 서병수 부산시장,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제의 독립성과 프로그램 자율성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으로 영화제가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평이 지배적인 가운데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작품들이 제대로 상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행정기관의 간섭이 더욱 노골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부산영화제가 아주 무기력하고 수세적으로 끌려 다녔고, 결과도 시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게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며 "향후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대해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부집행위원장은 예전처럼 지역 인사들 중에서 선정된 것으로 아직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 선임된 분들에 대해 앞서가는 예측을 하기 보단 일단 지켜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최은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일단 두루 열악한 상황에서 차선의 조건으로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는 일단 이렇게 가고 내년에 어떤 변화가 있다면 또 다시 대응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강수연 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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