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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런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표현은 단순히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정치권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표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 경제 주간지에 실린 칼럼 중 일부다. 칼럼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발언들을 반추하면서, 세간의 시각과는 달리 이 발언들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며, 이같은 상황에서 거부권 행사에 대한 야당의 반발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전략적 오류'이고, 대통령이 정치개혁의 뜻을 밝힌 것이 맞다면 여야 모두 긴장하라는 것이다.

이 칼럼을 쓴 필자는 수도권 모 대학교의 정치외교학과에 재직 중인 ㅅ교수다. 칼럼은 물론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글이니만큼, 무조건 정치적 중립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된 칼럼니스트라면,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써야 한다. 하지만 정쟁을 유발한 대통령을 정치개혁의 선봉장으로 미화하고, 야당의 반발을 '구태 프레임'으로 단순화시키면서 '민심을 읽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 칼럼을 국민 다수가 공감할지는 의문이다.

우선 ㅅ교수는 대통령의 말을 빌어 여야 공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아닌 자기를 위한 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미국 순방을 끝까지 강행하려다 마지못해 포기한 것은 누구인가. 메르스 환자가 아직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만하게 매듭지을 수 있었던 국회법 문제로 대형 정쟁을 촉발한 것은 누구인가. 민생에 전념해야 할 여당 의원들을 원내대표의 생사여탈 문제에 골몰하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ㅅ교수의 모순은 또 있다. '유승민을 사퇴시키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면서도, 정작 여당 내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대통령 발언 이후 매일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상황이 오죽 심각하면 최고위원회의가 파행되고, 욕설까지 난무했겠는가. 이같은 상황이 대통령의 정치적 악의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친박계 의원들의 집단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교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아니 둘을 모른 체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야당 저격'이다. '대통령이 정치권 전반을 불신하고 있다'면서도 칼럼에서 문제시되는 대상은 야당 뿐이다. ㅅ교수는 새정치연합이 '국회의원 211명'이라는 숫자를 들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한 점을 문제삼았다. 거부권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211이라는 숫자가 왜 중요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의회 다수당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여당이 다수당인 현 정국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큰 문제인 셈이다. 그만큼 당청 간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고, 정부와 여당이 따로 놀고있음을 시인한 꼴이다.

또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일지라도 국회에서 다시 2/3의 찬성으로 통과시키면 법률로 확정된다. 야당의 논리는 '다수가 추인했으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잘못된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2/3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을 되돌려보내 재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메르스와 가뭄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불필요한 정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의미다.

사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세월호 사건의 진상조사를 총괄하는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을 검찰 서기관으로 두게 되어있는 독소조항 하나를 없애기 위해 여야가 논쟁과 협상을 거듭해 만들어낸 산물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려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스스로 개정해서 대안 마련을 위한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또한 ㅅ교수는 야당이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그럼 대통령은 정치권을 비판해서는 안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당연히 대통령은 정치권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을 비판하기 이전에, 한국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치권의 문제로부터 대통령 그 스스로가 떳떳하고 자유로운지 먼저 되물었어야 한다.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메르스는 당면한 '나의 문제'지만 국회법 개정안 문제는 사실 '남의 문제'다. 대통령은 민생과 동떨어진 문제로 정치를 파행시켰고, 당연히 정치권을 비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칼럼을 읽고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통령의 말은 '유승민 찍어내기'라고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만약 아니었다면 유 원내대표가 '폴더 사과'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여당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 당대표 비서실장이 한 자리에서 충돌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해명할 수 있는 답은 '대통령이 유승민을 싫어한다' 뿐이다. 그런데도 ㅅ교수는 마치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화법처럼 '대통령이 정치권 모두를 비판한 것이다 → 야당은 각성해야 한다 → 부정부패 정치인은 주의해야 한다'는 어지러운 구성의 칼럼을 통해 대통령이 정치권 개혁의 신호탄을 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대통령의 정치보다 더 나쁜 것은 사실 이같은 대통령의 행태를 말도 안되는 논리와 수사로 감싸는 것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작고 소소한 것보다 크고 중대한 것에 대한 지적에 힘쓰는 것이 대통령을 위해서도, 우리 정치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다. 학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 칼럼은 학자적 양심을 기대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편향적이며 편협하다. 학자적 양심을 포기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국민 보편의 상식에 역행하는 칼럼을 반복해서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ㅅ교수는 알아야 할 것이다.


태그:#박근혜, #유승민, #새정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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