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맨도롱 또똣>의 제목은 제주 방언으로 '기분 좋게 따스한'이라는 뜻이다. 제주도 방언을 차용한 제목답게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해녀가 되려는 이정주(강소라 분)는 해녀 학교에 들어간다. 거기에는 결혼 한 달 만에 남편이 죽은 후 물질을 하며 아이를 키운 자부심 강한 해녀 김해실(김희정 분)이 있다.

<맨도롱 또똣>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해녀와 그녀들을 키워내는 '해녀 학교'를 다뤘다. 이 드라마는 스타 작가 홍미란과 홍정은을 내세웠지만 시청률도 높지 않았고, '해녀'의 이야기도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반면 2013년 일본 NHK를 통해 방영된 <아마짱>은 도호쿠 북쪽 산 리쿠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일본 해녀, 아마가 되려고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156부의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27%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더구나 극 중 아이돌 그룹까지 되었던 작은 마을의 소녀가 대지진 이후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가 아마가 되는 이야기는 아마라는 직업을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해녀, 일본에서 아마라 불리는 두 해녀가 각기 다른 '조명'을 받는 것은 드라마가 뜨고 안 뜨고의 문제일까? 거기엔 단지 낮은 시청률의 <맨도롱 또똣>과 높은 시청률의 <아마짱> 이상 복잡한 두 나라의 문제가 얽혀 있다.

세계 문화 유산 등재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

 지난 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지난 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 SBS


일본이 <아마짱>을 드라마화한 시기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침체되었을 때이다.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가 필요했고, 눈에 띈 것이 바로 '아마'였다.<아마짱>은 일본의 해녀 아마가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거기엔 또 하나의 숨겨진 의도가 있다. 일본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아마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굳이 아마를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부각시켜야 했을까? 그 배경엔 해녀 혹은 아마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문화 콘텐츠 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은 이러한 양국의 문화적 갈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해녀 삼춘의 죽음이다. 제주도에서는 존중과 친근함을 나타내는 말로 삼춘이라는 단어를 쓴다. 삼춘이라 불리던 해녀 양석봉 할머니는 86세가 되던 지난 4월 16일, 78년간 물질하던 바다에서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양 할머니는 차가운 겨울 바다도 마다치 않고 숨을 멈춰야만 살 수 있는 해녀로 살며 네 아들을 유학까지 보낸 장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국 그녀가 평생 살아오던 바다에서 생을 마쳤다.

어느 나라의 잠수부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으로 깊은 바닷속을 누비는 제주 해녀. 그들의 우수성에는 전 세계인도 찬사를 보냈고, 이에 따라 제주도는 10년 전부터 제주 해녀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해 왔다. 그런데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 언론이 제주 해녀가 아닌 일본의 아마를 부각시키는 기사를 내면서 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본이 뒤늦게 '해녀'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지난 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지난 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 SBS


뒤늦게 뛰어든 일본의 움직임은 빨랐고 체계적이었다. 정부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아 해녀 전시장 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아마의 고향이라는 미에현을 중심으로 한 8개의 현과 정부가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다각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일본의 아마가 제주의 해녀를 본뜬 것이라는 설에도 일본은 아마의 기원을 3000년 전까지 당기며 학문적 기원을 마련했고, 미비한 지역적 유산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아마 축제'를 마련했다. 심지어 일본은 공동 등재를 제안하는 등 대안까지 마련했다. 결국 10년간의 노력에도 정부와 지방의 엇박자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우리나라는 심사 보류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제주 해녀의 문화유산 등재는 2016년 하반기에 결정된다.

문화 유산 등재보다 해녀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우선

하지만 < SBS 스페셜 >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저 한일 양국의 문화 전쟁이 아니다. 정작 제주 해녀를 연구해온 학자는 반문한다. 제주 해녀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그리고 이 질문의 숨겨진 의미는 문화유산 등재 전쟁 속에 드러나지 않은 양국 해녀의 위상과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2016년 문화유산 등재를 낙관하는 제주도. 현재 제주에 남아있는 해녀는 4415명으로, 일본의 2174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이다. 하지만 지난 3년 사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바다를 등진 해녀가 92명이다. 더구나 대부분 해녀들은 중년 이상이다. 호구지책으로 해녀로 살지만 단 한번도 자부심을 느낀 바 없다는 그녀들은 자신의 딸들이 해녀의 삶을 택하겠다면 말리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 종일 물질을 하는 해녀의 삶은 문화유산 등재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부심의 대상이기보다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택하는 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지난 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지난 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 SBS


그러나 일본에서 만난 아마들은 한국의 해녀와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달랐다. 잠수복을 입고, 흰 천을 뒤집어쓰고, 허리에 납을 매달고 물질을 하는 모양새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온종일 물질을 하는 제주의 해녀들과 달리 아마들은 바다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단 2시간의 물질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마들은 민박집을 운영하거나 현에서 운영하는 아마 체험장에서 일한다. 아마의 수입은 월 500만 원 정도다.

단지 돈벌이만이 아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아마가 된 제주 해녀의 말처럼, 그저 먹고살 게 없어서 해녀가 되었다고 보는 한국의 시각과 아마 체험을 하기 위해 관광객이 줄을 선 일본의 처우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3대를 잇는 아마 가문이 탄생하고,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젊은 여성들이 아마가 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결국 < SBS 스페셜 >이 도달한 곳은 '해녀'의 존재론이다.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해녀. 그런 사회적 인식과 처우가 달라지지 않는 한 세계 문화유산 등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한일 양국 해녀 전쟁의 승자는 거창한 성과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직업적 자부심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 SBS 스페셜 >의 결론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SBS스페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