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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목적이 흐릿해져서 손 놓고 흘려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 그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잘 쓰여진 글을 읽으면 저자가 보이고 저자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담론>을 두 달 넘게 끼고 지냈다. 출장 길에도 동행했다. 꼼꼼히 두 번을 읽었는데 저자 신영복 선생의 조언을 따라 세 번 읽을 작정이다. 어쩌면 그 이상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첫째 텍스트를 읽고, 둘째로 저자를 읽고, 그리고 세 번째로는 책을 읽는 나 자신을 읽어야한다는 이른바 '讀書三讀(독서삼독)'을 따르고 싶기 때문이다.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

<담론>의 표지
 <담론>의 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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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신영복선생이 터득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등의 고전을 발췌해 같이 읽고 그 의미를 곱씹는 시간이고 2부는 역시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람과 사건을 소개하면서 인간과 삶이 추구하는 가치를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철학은 망치로 한다 – 니체

<담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는 것인데,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 여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 신영복 선생은 아는 것을 느끼고 실천하기까지의 어려움을 강조하기 위해 머리와 가슴과 발을 상징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을 린(Richard J. Lynn)이라는 철학자가 'Classic of Change'라 했다고 한다. '변화를 읽는 틀'이 <주역>이기 때문인데, <주역>에서는 변화를 '역이불역易而不易, 불역이대역不易而大易'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이것을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변하지 않는 것도 크게 보면 변한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논어>에서의 '화동和同담론'을 빠뜨릴 수 없다. 이것은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를 줄여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않는다." 화(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화합으로 동(同)은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지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공자가 14년간의 유랑에도 벼슬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패권적 지배 질서로 움직이던 군주들에게 왕도 정치 또는 화(和)의 논리가 통할 리 없었다는 것이다. 공자 사후 2500년, 공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철학자, 정치 지도자가 된다. 중국이 화이부동하는 군자의 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비자>를 설명하는 글의 마지막엔 간디가 열거하는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사회악'이 등장한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등이다. 저자는 말한다.

"1930년대의 인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가 성찰해야 하는 것들입니다."(p.191)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

1부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특히, 나는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 등 고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더욱 힘겨웠다. 상대적으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2부는 이해하기 쉽고 저자의 빛나는 위트와 유머로 인한 재미와 감동이 배가된다.

2부는 몇 명의 어린이들과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청구회 사건, 그 이야기를 휴지 조각에 쓰게 된 사연, 남한산성에서의 혹독한 시련과 20년 복역의 세월 동안 생긴 인간에 대한 안목 등을 바탕으로 쌓은 성찰의 기록이다.

"근대사회가 자기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Big 5'입니다. 근대사회는 사회의 공적(公敵) 다섯 가지를 해결했다는 것이지요. 빈곤, 질병, 무지, 부패, 오염을 해결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가. 이 다섯 가지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반론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습니다. 빈곤의 문제, 지금도 10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아사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매일 10만명의 인구가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p.366)

메르스(MERS)와 같은 신종 질병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인체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발생하는 질병인 '우울증'도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 정치와 경제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는 부패, 그리고 방사능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각한 오염 문제 등은 오히려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이 성공회대학교에서 한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 책, <담론>이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한 학기 동안 이어진 강의를 통해 그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화두로 던지는 말은 '공감', '함께', '양심' 등이다.

그의 생각과 마음은 안도현의 시(詩), <스며드는 것>에 나타나고 그가 감옥에서 만났던 청년이 헌혈 전 피를 많이 뽑기 위해 냉수를 들이키며 느꼈다던 양심의 가책을 곱씹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비올 때 우산을 씌워주기 보다는 함께 비를 맞는 것을 택한다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듣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저자 신영복, 돌베개, 2015년 4월 20일 초판발행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돌베개(2015)


태그:#화이부동, #변화를 읽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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