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토요드라마 <심야식당>의 포스터

SBS 토요드라마 <심야식당>의 포스터 ⓒ SBS


SBS 토요드라마 <심야식당>이 논란 속에 공개됐다. 지난 4일 30분씩 1, 2부를 연속 방송한 <심야식당>의 시청률은 각각 3.8%, 3.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자정이 넘어 방송된 지상파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준수한 수준이다.

하지만 <심야식당>은 방영 전, 논란에 휩싸였다. 원작의 주요 캐릭터인 '게이바 마담' 코스즈를 "한국 정서를 고려해 뺐다"는 제작진의 설명이 원작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과 더불어 성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국 정서"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심야식당>은 2007년 일본에서 연재를 시작해, 일본에서 240만 부, 국내에서 43만 부가 팔린 아베 야로 원작의 동명만화를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TV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으로 부활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와 두터운 팬층을 자랑한다. 여타 리메이크 작품이 그러하듯 시작부터 말고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사실 일본 드라마를 (표절이 아닌) 리메이크한 작품 중에 평가나 시청률 면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은 많지 않다. 굳이 꼽아 봐도 <하얀거탑>이나 <꽃보다 남자> <공부의 신> <직장의 신> 정도다. 지난 2014년 방송된 <노다메 칸타빌레>는 '망작'의 반열에 올랐다.

그만큼 한일 양국의 정서 차와 기획의도, 시의성, 작품 해석 등 여러 요인으로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리메이크다. <심야식당>의 논란도 이를 감안해야 할 듯하다. 그래서 곱씹어 봤다. 이제 고작 1, 2회가 방영된 한국판 <심야식당>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몇 가지 이유를 말이다. 단, 이 변명의 글을 반어로 읽든 정색하고 읽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이 극한의 판타지 드라마를 읽는 몇 가지 키워드

 <심야식당>에 출연한 남태현의 연기를 패러디한 영상 중

<심야식당>에 출연한 남태현의 연기를 패러디한 영상 중 ⓒ 인터넷 캡처


하나, 이 드라마는 극한의 판타지다. 인서트 장면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여는 식당의 배경은 서울시 종로 2~3가 뒷골목이다. 그곳에 술은 인당 한 병만 팔며, 손님이 원하는 요리를 척척 내주는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임대료는 물론 수지타산과 '골목 공동체' 차원으로만 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스터(김승우 분)가 건물주"라는 해석이 난무하는 것도 그래서다. 아마 포장마차였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배경을 포함해 현실성을 최대한 거세시키자. 그래야만 몰입할 수 있다. 음악 한 번 틀지 않는 마스터가 고가의 오디오 장비를 인테리어 차원에서 배치한 것도 마찬가지다. 선반 안쪽에 책을 가득 꽂아 놓은 것으로 봐서 최소한의 '식자층'일 가능성도 크다. 1, 2화만 놓고 보면 생계와는 무관하게 (취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게 분명하다. 아마도 제작진이 명시한 "한국적 정서"는 '판타지 드라마'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다.

둘, 아이돌 남태현은 최대치의 연기를 펼쳤다. 지금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심야식당 남태현 눈물신 자막 버전'을 쳐보라. 1화에 가난한 고학생으로 민우로 출연한 그룹 위너의 남태현이 보여준 최상의 연기가 친절한 자막과 함께 올라와 있다. 눈물과 웃음이 범벅된 이 장면은 근래 보기 드문 희대의 감정 연기를 남기고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남태현의 연기 덕분에 중견 연기자의 호연이 더 빛을 발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무뚝뚝함에 감춰진 인정 넘치는 조폭 중간보스 류를 연기한 최재성이 대표적인 예다. 2화에 등장한 심혜진 역시 꼭 그가 아니아도 됐을 만한 캐릭터와 연기를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아우라만으로 표현해내지 않는가. 남태현의 캐스팅은 아마도 YG라는 소속사의 등을 업었다기 보다 이러한 노림수가 있지 않았을까.

셋, 김승우를 향한 지적은 오히려 쏙 들어갔다. 캐스팅 소식 직후 팬들을 중심으로 미스 캐스팅이 아니냐는 말들이 오갔다. <심야식당>을 패러디한 한 소화제 광고에 출연한 배우 김갑수의 모습이 회자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타 비판에 가려 '마스터' 김승우에 관련된 잡음은 자취를 감췄다. 굉장히 어색한 (원작과 같은) 반말투의 내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드 원작 속 마스터를 연기하는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는 만 63세인 1951년생. 이에 비해 1963년인 김승우가 산전수전 다 겪은 듯 보이면서도 오지랖을 떨지 않고, 심지어 '쿨'내가 진동하는 마스터를 연기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컸다. 그러나 방영 직후, 이러한 우려는 기우였던 것으로 판명됐다. 남태현을 비롯해 앞으로도 매회 게스트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느냐, 또 원작의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느냐에 더 관심이 쏠리게 됐으니 이 어찌 성공이라 하지 않겠는가.

일본 원작 리메이크사에 길이 남을 드라마 <심야식당>

 <심야식당>의 포스터

<심야식당>의 포스터 ⓒ SBS


넷, 한국판 <심야식당>은 그간 드라마를 집필했던 작가가 쓰지 않는다. 이 점은 꽤나 중요하다. <황금어장>으로 유명한 최대웅 작가, <개그콘서트>를 이끌었던 홍윤희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의외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설마 원작이 만화고 짧은 호흡의 드라마이기에 두 예능 작가 출신이 극본을 쓰게 됐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예능 작가 출신인 박지은 작가의 도드라지는 활약이 반면교사가 됐을 수 있다.

아마도 원작이 품고 있는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긴 대사나 삶의 측면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압축적인 설정에 그 두 작가가 여타 드라마 작가보다 훨씬 두각을 나타내서이리라. 1, 2화에 실로 진부하고 평이한 대사가 넘쳐나는 것은 아직 두 작가의 몸이 덜 풀린 것으로 이해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섯, 한국판 <심야식당>은 '먹방'에 관심이 없다. '먹방'에 이어 '쿡방'이 대세가 된 지금, <심야식당>은 이 대세를 거스르는 대범함을 자랑한다. '일드'에서 단순한 레시피 소개가 아닌 각 캐릭터의 사연을 상기시키며 긴 여운을 드리우는 요리 과정을 과감히 빼버렸다. 제작진의 입장에서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으리라.

중간중간 요리 조리 과정을 찍긴 했다. 그러나 드라마에 집중하라는 배려였을까. 1회를 구태여 조리 과정이 딱히 필요 없는 '가래떡 구이와 김'으로 선정하기까지 했다. 2화 메밀전 역시 도드라지게 맛깔 나는 조리 과정을 연출하는 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심야식당>의 관건은 매회 번갈아 등정하는 캐릭터와 특정 음식의 절묘한 연관관계다. '쿡방'에 대한 무관심은 이에 더 집중하겠다는 어떤 선언이 아닐까.

여섯, 황인뢰 PD의 연륜을 믿어 보자. 1980년대 <호랑이 선생님>으로 친숙한 황인뢰 PD는 한국 드라마의 서정성과 영상미학을 대표한다. 1990년대만 해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개 숙인 남자> <연애의 기초>로 한 획을 그었고, 2000년대 들어 한류드라마 <궁>과 <궁S>를 연출한 바로 그 감독이다.

어쩌면 12시에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는 소수자나 하층민의 연대에 삶과 인생사의 깊이를 녹여낸 원작 <심야식당>의 연출자로 그만한 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가답게 "한국적 정서"를 고려해 게이와 스트리퍼 캐릭터를 빼 버린 결기를 보라. 누군가는 분명 <심야식당>의 원작이 8090의 어떤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으리라. 우리는 앞으로 원작 만화의 많고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는가만 지켜보면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일곱, <심야식당>은 일본 만화나 드라마 리메이크의 어떤 전기를 마련할지 모른다. 재차 강조하지만, 어떤 작품보다 마니아가 두터운 드라마이자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드라마를 "한국 정서"를 고려해 이식시키는 작업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드물게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용단을 내렸다. 이 용단과 결기야말로 향후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하고 싶은 제작사나 연출자, 작가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마니아들의 우려나 원작이 지향을 무시하면서까지 한국형 드라마로 시청률을 의식하고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 대승적인 당위 말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심야식당>이 분명 한국 드라마 사에 기록될 문제적 작품이 될 것이란 점은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할 것이다. 

심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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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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