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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근현대가 오롯이 남아있는 광주 양림동. 아까시나무와 흑호도나무가 어우러진 게스트하우스 풍경이다. 최근 시작된 텔레비전 드라마 '너를 기억해'의 촬영무대로 쓰였다.
 전통과 근현대가 오롯이 남아있는 광주 양림동. 아까시나무와 흑호도나무가 어우러진 게스트하우스 풍경이다. 최근 시작된 텔레비전 드라마 '너를 기억해'의 촬영무대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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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국어를 가르쳤던 선생님 덕분이다. SNS를 통해 가끔 소통하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사직공원에 시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쉬는 날을 이용해 그 시비들을 보고 오라고 했다. 과제였다. 지금 생각하면 현장학습이었다. 하지만 그땐 솔직히 번거롭게만 여겼다.

그때를 생각하며 광주 사직공원으로 갔다. 광주유니버시아드가 열리고 있는 지난 5일이다. 학창시절에 만났던 시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고산 윤선도와 면앙정 송순의 시비가 먼저 반겨주었다. 금남군 정충신과 충무공 이순신의 숨결도 느껴지는 듯했다.

어렸을 때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린이날 몇 번 찾았던 사직동물원 풍경이었다. 호랑이와 사자 울음소리 쟁쟁하던 그 시절이었다. 옛 팔각정은 사라지고 현대적 감각의 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광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광주 근대화의 산실, 양림동을 걷다

고산 윤선도의 시 '오우가'가 새겨진 광주 사직공원으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 옛 학창시절을 떠올려 준 길이다.
 고산 윤선도의 시 '오우가'가 새겨진 광주 사직공원으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 옛 학창시절을 떠올려 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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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직공원의 전망대. 여기서 광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광주 사직공원의 전망대. 여기서 광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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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원은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이 있었던 곳이다. 사직단은 조선 태조 3년에 설치됐다. 1960년대 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헐렸다. 시비는 70년대 들어 세워졌다.

사직공원을 끼고 있는 양림동에는 시비만 있는 게 아니다. 많은 문인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시인 김현승과 곽재구, 이수복, 서정주가 여기서 살았다. 소설가 황석영과 문순태, 박화성도 있다. 영화감독 임권택도 학창시절을 양림동에서 보냈다. 그 중에서도 다형 김현승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더러는/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는/나의 전체는 오직 이 뿐!'으로 시작되는 '눈물'의 작가다.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보다 속으로 흘리는 눈물의 가치를 노래한 작품이다.

평양에서 태어난 김현승은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7살 때 양림동으로 옮겨왔다. 김현승을 기리는 시비가 호남신학대 음악관 옆에 있다. 펜촉과 횃불을 상징하는 조형물에다 '가을의 기도'가 새겨진 책 모양의 비문으로 이뤄져 있다.

펜촉과 횃불을 상징하는 조형물에 책 모양의 비문으로 이뤄진 다형 김현승의 시비. 호남신학대학교 음악관 옆에 있다.
 펜촉과 횃불을 상징하는 조형물에 책 모양의 비문으로 이뤄진 다형 김현승의 시비. 호남신학대학교 음악관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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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근대 문화예술을 꽃피웠던 오웬기념각. 여기서 기독교 집회는 물론 각종 강연과 음악회, 영화와 연극 공연이 열렸다. 양림교회에 자리하고 있다.
 광주의 근대 문화예술을 꽃피웠던 오웬기념각. 여기서 기독교 집회는 물론 각종 강연과 음악회, 영화와 연극 공연이 열렸다. 양림교회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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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원을 끼고 있는 양림동은 광주 근대화의 산실이다. 광주의 근·현대사가 오롯이 남아있다. 지금도 기독교와 유교, 전통과 근·현대가 공존하고 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광주를 대표한다.

예부터 광주의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미국의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선교사들은 여기에 교회를 열고, 학교와 병원을 개설했다. '광주의 예루살렘', '서양촌'으로 불렸다.

선교사들이 1904년부터 들어왔다. 오웬(오기원)과 유진벨(배유지)이 앞장섰다.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한 오웬기념각은 신문화의 발상지였다. 통합 양림교회에 있다. 근대 문화예술을 꽃피웠던 곳이다. 기독교 집회는 물론 각종 강연과 음악회, 영화와 연극 공연, 학예회와 졸업식 장소로 쓰였다.

여기서 공연된 연극 <늑대와 소년>은 광주 최초의 서양극이었다. 수피아여학교 교사 김필례의 음악발표회는 광주지역의 첫 독주회였다. 1919년엔 3·1운동을 고취시키는 설교가 행해졌다. 광주YMCA도 여기서 창립됐다.

광주 근대교육의 산실이 된 수피아 여학교의 역사관. 수피아여중과 수피아여고 교정에 있다.
 광주 근대교육의 산실이 된 수피아 여학교의 역사관. 수피아여중과 수피아여고 교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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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고아를 돌봤던 우일선(우월순) 선교사의 사택.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전쟁 고아를 돌봤던 우일선(우월순) 선교사의 사택.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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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과 함께 광주선교부를 연 유진벨은 후학 양성에 나섰다. 그의 집 사랑채에 모인 여학생 3명이 시작이었다. 수피아 여학교의 첫걸음이었다. 수피아여학교에 역사관이 있다. 광주3·1만세운동 기념탑도 있다. 남학생을 모아 공부를 가르친 곳은 숭일학교로 발전했다.

광주기독병원의 전신인 제중병원도 그의 임시 사택에서 시작됐다. 나병 구제와 결핵 퇴치에 나섰다. 그 기념비가 병원에 세워져 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땐 부상당한 시민을 치료해 주었다. 5·18광주민중항쟁 표지석이 병원에 세워져 있다. 기독병원 내 의학자료 전시관에서 선교와 병원의 역사도 만난다.

우일선(우월순) 선교사는 전쟁고아를 돌봤다. 그의 사택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선교사들은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헌신을 했다. 죽어서도 광주에 묻혔다. 호남신학대학교 뒷산에 선교사와 가족 45명의 무덤이 있다.

사직도서관 앞에 선교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광주에 온 유진벨이 1904년 12월 25일 첫 예배를 가진 자리다. 그 앞으로는 선교사들의 이름과 활동사항이 적힌 표지판이 줄지어 서 있다. 모두가 광주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선교와 함께 광주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선교사들의 묘역. 호남신학대학교 뒷산에 자리하고 있다.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선교와 함께 광주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선교사들의 묘역. 호남신학대학교 뒷산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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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에 남아있는 고택 이장우 가옥. 1899년에 지어졌다. 광주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광주 양림동에 남아있는 고택 이장우 가옥. 1899년에 지어졌다. 광주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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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은 광주의 부자들이 선망하던 동네였다. 최승효 가옥과 이장우 가옥은 당시 부자의 집이었다.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능소화와 어우러진 최승효 가옥은 1920년에 지어졌다. 다락에 독립운동가들을 피신시켰다고 전해진다. 편액 '백세청풍(百世淸風)'이 걸려 있다. 오랫동안 맑은 바람이 부는 곳이란 의미다.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나무'의 고택

어머니 나무
 어머니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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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무
 어머니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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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가옥은 1899년에 지어졌다. 안채가 광주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한 뼘 정원을 품은 감나무도 눈길을 끈다. 속살까지 아낌없이 내줬다고 '어머니나무'로 불린다. 옛집이 전쟁과 근대화의 광풍을 이겨내고 도심에 살아남았다는 것이 경이롭다.

가까운 데에 있는 양촌공 정엄 선생의 효자비와 충견상도 애틋하다. 정엄 선생이 써준 서신을 한양과 평양까지 배달했다는 개다. 한양으로 심부름을 다녀오던 길에 낳은 새끼를 광주의 집까지 물어 나르다 지쳐 죽었다. 죽어서까지 주인의 곁을 지키고 서 있다.

능소화가 최승효 고택 앞 풍경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고택을 찾은 여행객이 능소화를 감상하고 있다.
 능소화가 최승효 고택 앞 풍경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고택을 찾은 여행객이 능소화를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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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공 정엄 선생의 효자비와 충견상. 살아서 충성을 다했던 개가 죽어서도 주인의 곁을 지키고 서 있다.
 양촌공 정엄 선생의 효자비와 충견상. 살아서 충성을 다했던 개가 죽어서도 주인의 곁을 지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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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에는 희귀한 나무도 많다. 선교사들이 가져와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일선 사택 아래에 있는 호랑가시나무는 수령 400년이 넘었다. 나무 둘레로 의자도 만들어져 있다. 광주시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수령 100년이 넘은 아까시나무, 흑호도나무도 여러 그루다.

왕버즘나무, 팽나무, 은단풍나무, 튤립나무, 측백나무도 있다. 고목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숲속에 자리한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와 게스트하우스가 예쁘다. 서인국과 장나라 주연의 텔레비전 드라마 <너를 기억해>의 배경으로 나오고 있다.

음악가 정율성에 대해 알 수 있는 거리전시관. 양림동의 한 아파트 담벼락을 활용해 만들었다.
 음악가 정율성에 대해 알 수 있는 거리전시관. 양림동의 한 아파트 담벼락을 활용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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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쓰지 않는 생활용품을 모아 높은 펭귄골목. 마을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윷놀이를 즐기는 등 쉼터로 이용하고 있다.
 집에서 쓰지 않는 생활용품을 모아 높은 펭귄골목. 마을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윷놀이를 즐기는 등 쉼터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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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정율성의 생가와 거리전시관도 양림동에 있다. 정율성은 광주가 낳은 걸출한 항일운동가이면서 중국 최고의 인민음악가다. 중국의 아리랑이라 불리는 '옌안송' 등 360여 곡을 남겼다. 그가 작곡한 '팔로군행진곡'은 '중국인민해방군가'가 돼 13억 중국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

펭귄마을도 있다. 공터의 쓰레기를 치우고 일상의 폐품으로 예술정원을 꾸민 펭귄텃밭이 여기에 있다. 골목길에 집에서 안 쓰는 시계와 액자도 걸어 놓았다. 잡동사니를 모아 놓았다. 하지만 골목박물관처럼 보인다. 마을주민 이춘대(59)·김동균(62)씨가 앞장서 만들었다. 펭귄마을이란 이름은 이 씨의 걸음걸이를 빗대서 붙였다.

예술작가들의 알토란 같은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515갤러리는 학강초등학교 옆에 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사직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줄지어 선 라이브 카페가 활기를 띤다. 사직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광주야경도 황홀하다.

광주 근대화의 산실인 양림동. 광주의 근·현대사와 기독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문화중심도시 광주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광주사직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광주 근대화의 산실인 양림동. 광주의 근·현대사와 기독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문화중심도시 광주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광주사직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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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양림동은 남광주시장에서 가까운 광주천변에 있다. 호남고속국도 동광주 나들목에서 동문대로, 필문대로를 따라 조선대학교 앞을 지난다. 남광주 고가도로를 타고 광주천을 건너자마자 양림휴먼시아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내비게이션은 광주기독병원이나 호남신학대학교를 입력하면 된다.
문의-양림동 주민센터 ☎062-607-4503



태그:#광주양림동, #오웬기념각, #우일선사택, #이장우가옥,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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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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