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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징비록>의 선조 임금을 포함해서 옛날 임금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모습을 지켜본다면, 그들은 필시 의아심을 품게 될 것이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이유에 입각하여 그들은 '박근혜는 왜 양위 소동(사퇴 소동, 사퇴 쇼)을 벌이지 않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직무는 대통령의 직무와 겹친다. 헌법 제86조 제2항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各部)를 통할한다"고 했다. 또 제82조에서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書)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행정부를 통할하고 대통령이 작성하는 공식 문서에 서명하는 자리가 국무총리이므로, 헌법상의 총리는 대통령의 복제판과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외형상으론 막강하지만, 총리는 실제론 힘이 별로 없다. 총리가 헌법상의 권한을 행사하려고 하는 순간, 그는 옷을 벗거나 대통령과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허수아비나 다름없는데도 총리를 두는 것은,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중대 사안이 발생할 경우에 대통령을 대신해 물러날 사람을 두기 위해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방탄용'으로 총리를 두는 측면이 강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현실에서 총리제도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옷을 벗을 인물을 미리 대기해 두는 것이다. 이런 관행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은 제대로 임기를 채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총리제도는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실용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방탄용 총리의 존재를 특히 부러워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옛날 한국의 군주들이다. 그들이 처한 입장을 음미해보면, 서두에서 "그들은 '박근혜는 왜 양위 소동을 벌이지 않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라고 언급한 이유가 수긍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통치자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 수시로 발생했다. 농사가 안 되거나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비판의 화살이 임금을 겨냥했다. 임금이 정치를 못해서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비판이 가해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옛날 왕들은 영의정 같은 수석대신을 대신 사퇴시키는 방법으로 책임을 피해나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영의정을 포함한 수석대신과 오늘날의 총리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위치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의 이전(吏典) 편에서는, 영의정이 지휘하는 관서인 의정부의 직무와 관련하여 "전체 관원을 통솔하고 국정 전반을 통할하고 음양을 다스리며 국가를 경영한다"고 규정했다. '음양을 다스리며'라는 것은 만물이 잘 순행하도록 돕는다는 정도의 의미다. 옛날에는 우주만물의 법칙이 지상에 잘 구현되도록 만드는 것도 국가의 책무에 포함했기 때문에, 음양을 다스리는 것도 임금과 의정부의 책임에 포함됐다.

 영의정이 근무한 부서인 의정부가 있었던 자리. 별표 부분이다.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 있다.
 영의정이 근무한 부서인 의정부가 있었던 자리. 별표 부분이다.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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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 총리를 내세울 수 없었던 옛날 군주들

<경국대전>에 나오는 의정부의 책임은 곧 영의정의 책무였다. 규정만 놓고 보면, 영의정의 책무는 임금인 주상의 책무와 겹쳤다. 영의정의 직무와 주상의 직무가 겹쳤고 대한민국 총리의 직무와 대통령의 직무가 겹치고 있으니, 영의정과 총리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임금이 영의정을 임명하기는 했지만, 영의정은 임금보다는 기득권층인 사대부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임금이 국정운영의 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방원과 재상(영의정을 포함하는)이 그 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정도전이 유혈 충돌을 벌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의정은 사대부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임금의 국정운영을 견제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영의정은 수석대신의 위상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의 당수나 기득권층의 대표 같은 위상도 함께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자신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피하고자 영의정을 대신 사퇴시키는 것은 조선시대 정치풍토에서는 낯선 일이었다. 그래서 옛날 왕들은 자기를 대신해 사퇴해줄 방탄용 총리를 둘 수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옛날 군주들은 방탄용 총리를 둔 대한민국 대통령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 파탄이나 대외관계 악화 또는 천재지변 등이 발생했을 경우에, 옛날 왕들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졌을까? 남을 대신 사퇴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반성을 통해 그들은 임금 자리를 보전했다.

임금의 자기반성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식사 때 반찬 수를 줄이거나, 후궁의 침실에 들지 않거나, 하늘과 땅에 제사(기우제 포함)를 올리거나, 백성들의 의견을 구하는 등의 방법이 있었다.

특히 기우제의 경우에는, 제사를 지내면 기적적으로 비가 내릴 거라는 미신적인 기대감으로 지냈다기보다는, 제사를 통해 임금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세상만물이 잘 돌아가리라는 비교적 합리적인 기대감으로 지냈다고 해석하는 게 이치에 맞다.

 지단에서 제사지내는 청나라 황제의 모습을 재현한 행사. 중국 북경(베이징)의 지단(디탄)공원에서 찍은 사진.
 지단에서 제사지내는 청나라 황제의 모습을 재현한 행사. 중국 북경(베이징)의 지단(디탄)공원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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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여러 가지 형식의 반성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왕들은 최종적으로 최고 수준의 방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최고 수준의 반성이라는 것은 바로 양위 소동(앙위파동·선위소동·선위파동)이었다. 

물론 진짜 사퇴하려고 소동을 벌이는 것은 아니었다. 왕위를 내놓겠다고 고민했을 만큼 임금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그런 소동을 벌인 것이다. 드라마 <징비록>의 선조 임금이 숱한 사퇴 소동을 벌인 의도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자신이 반성하는 군주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소동을 벌인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이른바 '국무총리 잔혹사'를 경험했다. 정홍원 총리를 제외하면, 그동안 박 대통령이 옆에 둔 총리는 실질적으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과 달리 방탄용 총리를 활용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 

최근에 어렵사리 구한 황교안 총리를 그런 용도로 활용한다면, 후임 총리를 구하기 위해 또다시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방탄용 총리를 내세우기 힘들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은 옛날 군주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어좌.
 경복궁 근정전의 어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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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박 대통령은 경제 악화를 막지 못한 것은 기본이고, 2014년 4월 16일에는 어린 학생들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는데도 구하지 못하고 금년에는 외래 전염병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는데도 차단하지 못했다.

이 같은 각종 실책으로 인해 그는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런 상태에서 자기를 대신해 사퇴할 총리마저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니, 박 대통령이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기반성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기반성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25일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는 국무회의 발언에서 그는 '배신의 정치'라는 유행어를 만들면서, 국정 파행의 책임을 여당 원내사령탑과 국회의원들에게 전가했다. 여당 원내사령탑과 국회가 제대로 협조를 안 해서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라 여당 지도부와 국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박 대통령이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상황이 극단적 수준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자기반성의 수준은 '식사 때 반찬 수를 줄이거나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의견을 구하는 정도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박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미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자기반성의 수준은 사실상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옛날 임금들이 지켜보고 있다면, 그들은 박 대통령이 양위 소동이라도 벌여 자기반성의 극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럴 생각을 하기는커녕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으니, 옛날 왕들은 박 대통령의 처신에 대해 의아심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체 뭘 믿고 저러나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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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