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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풍경
▲ 한옥마을 풍경 한옥마을 풍경
ⓒ 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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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전주에서 살았다. 20살 무렵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살았으니, 약 8~9년은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부모님은 전주에서 살고 있어, 명절 때마다 방문해야 하는 곳이기에 나름 내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하나 둘 계속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서울 인사동이나 명동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난 인파로 가득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기 시작하면서, "장사가 잘 되는 곳"을 찾아  더 많은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인들과 새로운, 그리고 더 새로운 음식점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도 마찬가지겠지만, 전주 한옥마을도 더는 '전통'의 느낌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간판만 한글로 제작한 프랜차이즈의 거리. 수많은 카페와 그 카페를 이용하기 위해 구름같이 모여드는 사람들. 한옥이 주는 이미지인 쉼과 여유를 이제는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몇 십년 전통을 자랑한다던 맛집들도 특색이 없어져가고, 점점 그 맛을 잃어간다. 그 이유가 부동산 비용 때문인지, 아니면 변화하는 한옥마을에 맞추어 평준화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더는 그 맛집들조차 굳이 전주한옥마을을 다시 가야할 이유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다시 전주한옥마을을 가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한 딱 그 무렵에, 전주한옥마을은 다른 도시로 '전주한옥마을'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풍년제과의 초코파이가 서울 대형백화점에 입점하더니, 이제는 지하철 매점에서도 팔기 시작한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는 '베테랑 칼국수'가 입점하게 되었다(가격도 전주보다 천원이나 비싸다).

꼬치구이점 몇 개 내보낸다고, 본래 이미지 살아날까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예전에는 친구와 각자 6천 원씩 들고가서 밥 먹고 음료수 하나 사서, 한옥마을 내에 있는 평상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전주한옥마을은 아무 곳에나 털썩 앉게끔, 그리고 눕게끔 만드는 곳이었다. 교과서나 어른들이 말하던 "쉼과 여유, 느림의 미학"의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나 또한 '꼰대'가 되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옥과 전통의 가치란 아마 그런 것이지 않을까 느끼고는 했다. 

그러나 전주한옥마을은 이제 더는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자본과 소비문화만이 존재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한옥마을을 즐긴다는 것은 어느새 '소비하는 것'이 되었다. 수없이 돈을 쓰고 실망하고, 그리고 그 실망감을 이기기 위해 더 돈을 쓰는 곳...

전주시가 한옥마을에서 꼬치구이점을 퇴출시킨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하고 든 생각은 전주시가 그 이유로 밝힌 '한옥마을 이미지를 위해서'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이미 자본이 대거 들어선 한옥마을에서 겨우 꼬치구이점 몇 개 내보낸다고 본래의 이미지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리xxx, 이디x, 스타xx 등 자본의 상징들이 즐비한 곳에서 "한옥마을 이미지" 퇴색 이유의 책임을 소상인들에게만 돌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때문에 꼬치구이점 상인들의 말이 인상깊다.

"허가 내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가라고 하냐..."

사실 앞서 전주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오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인기있는 음식점들을 무차별하게 들여왔다. 찾는 사람들이 늘자, 그에 맞추어 거대 자본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제는 자본들에게 눈엣가시가 된 소상공인들을 "한옥마을 이미지"를 위해 퇴출하는 중이다.

더 이상 전주한옥마을은 '한옥마을'이 아니다. 그저 자본과 소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이 다투는 곳이다. 자본이 또 하나의 마을과 그 마을의 가치를 망쳐놨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이미지의 퇴색을 소상공인에게만 돌려서는 안된다. 탓 하기에 앞서, 자본으로부터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또는 그것을 실패한 자신들의 책임을 깨닫고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돼버렸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전주한옥마을이 "한옥마을의 이미지를 위해서" 통째로 없어져야만 하는, 그런 곳이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태그:#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 #꼬치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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