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받는다고 해도 프로그램의 자율성이 침해되기 때문에 운영에 문제가 많게 된다.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는 그런 입장이다. 이건 운영지원이 목적이 아닌 독립예술영화관을 대관극장으로 취급하는 행위다. 소통하자고 할 때는 아무 반응이 없다가 이제야 저런 식의 방안을 내놓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김세훈 위원장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된다."

부산 국도&가람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2일 통화에서 최근 영진위가 내놓은 예술영화관 운영지원사업과 관련해 한숨을 내쉬었다. 정 프로그래머는 "서울이나 수도권은 지원을 안 받아도 버틸 수 있겠지만 지방은 다르다"면서 "영진위의 이번 예술영화관 운영지원사업은 그간 어렵게 독립예술영화를 위해 버텨온 극장에 대한 배려를 없애는 대신 지역 멀티플렉스를 밀어주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비판했다.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약 우려 상존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운영지원사업에 반발하고 있는 독립예술영화관들의 입장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운영지원사업에 반발하고 있는 독립예술영화관들의 입장 ⓒ 독립예술영화관모임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운영지원사업에 대한 영화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영진위의 사업안은 기존 공모 심사를 통해 극장을 선정, 개별 지원하던 방식이 아니라 위탁단체가 선정한 작품을 조건에 맞게 상영할 경우 지원금을 주는 것이 골자다. 전국의 비멀티플렉스 예술영화전용관 15개 관과 지역의 멀티플렉스 10개 관을 선정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독립예술관들은 영진위의 사업안이 '운영지원 중단에 목적을 두고 있는 개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국독립예술영화관모임은 지난 29일 성명을 통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올해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은 지난해와 같은 내용으로 속히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독립 예술영화가 다양한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개적 논의를 시급히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독립예술영화관모임은 영진위 사업안의 문제점을 크게 4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예술영화전용관의 프로그램 자율성 침해와 관객의 영화선택기회 박탈 ▲선정된 24편의 영화만을 지원하게 됨으로써 독립·예술영화 다양성 훼손 ▲외부위탁단체를 통함으로써 예산이 낭비되고 사업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칠 우려 ▲진흥사업을 통제 수단으로 활용, 진흥사업이 영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문제 등이다.

전국의 예술영화관에서 같은 시기에 동일한 영화가 상영될 것이며, 이는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게 독립예술영화관들의 주장이다. 또한 개별 예술영화전용관의 성격과 지향성이 무시되어 프로그램 편성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며, 예술영화전용관 관객은 다양한 영화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민한 부분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약이다. 영진위의 방식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정치,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작품의 선정은 사실상 봉쇄될 가능성이 높다. 위탁단체가 영진위의 영향력 아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작품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간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벨> 등은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영진위가 작품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 검열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우려는 언제든 상존한다.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영진위 예술영화관 운영지원사업안을 의심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영진위 "기존 문제점 개선 위한 것"...검열 가능성은?

 국내 독립예술영화관들

국내 독립예술영화관들 ⓒ 독립예술영화관모임


이에 대해 영진위는 기존 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영진위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예술영화 유통과 상영, 그리고 관객의 영화 소비패턴의 변화된 환경을 반영함으로써 기존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공급자(상영관) 중심에서 관객(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한 예술영화 진흥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기존 사업 과정에서 극장들이 지원금을 극장 운영비 위주로 사용하면서, '극장 연명책'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고, 해외 예술영화 중심의 프로그램 편성으로 인해 정작 한국 예술영화가 외면받는 등 그 취지가 많이 퇴색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진위는 "예술영화의 빈번한 교차 상영의 증가는 극장과 배급사 양측에도 실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관객 조사 결과에서도 지역일수록 접근성이 좋은 멀티플렉스 내 예술영화 상영관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따라서 "새롭게 시행되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은 선정된 한국 예술영화의 배급과 상영, 그리고 관객을 중심으로 하는 지원 방식으로, 마케팅 비용과 상영관 확보 비용을 지원해 관객의 접근성과 관람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는 것이다.

영진위는 "궁극적으로 예술영화 유통·배급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어 위탁사업자와 관련해서는 "예술영화의 배급과 상영관 확보라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이라 위탁수행자를 선정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영화계가 우려하는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약 등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지역 예술영화관 폐관으로 몰고 간 건 영진위"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영화계 독립성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토론회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영화계 독립성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토론회 ⓒ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내 대다수 독립예술영화관들은 영진위의 이 같은 사업안에 대해 신청 자체를 안 하겠다는 태도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독립예술영화관들과 독립영화단체들은 개악을 저지하겠다며 강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6일 백지성명에서 영진위의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 반대를 천명했다. 한독협 측은 "영진위의 사업방향은 문화공간으로서 문화다양성을 위해 노력해온 예술영화전용관들은 더 이상 필요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낀다"며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백지성명을 낸다고 밝혔다.

일부 지역 소재 영화관의 경우 운영에 따른 어려움 때문에 지원 사업 신청 여부를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참여하는 곳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외면할 경우 지역 멀티플렉스만 혜택을 받는 상황이 될 수 있어, 사업에 대한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독립예술영화관모임은 오는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영화계 독립성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다. 김난숙 씨네코드 선재 대표는 독립예술영화관을 대표해 영진위 사업안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예정이다.

독립영화정책전문가인 원승환 민간독립영화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는 "영진위가 지적한 문제 중에는 영진위 스스로 원인을 제공한 부분이 있다"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예술영화전용관도 잃고,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유통 확대라는 미션도 놓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 이사는 "영진위는 '예술영화의 빈번한 교차 상영의 증가'가 문제였다고 한다"면서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은 교차 상영을 최소화하겠다고 하지만 어차피 이 사업도 교차 상영으로 따져보면 대단한 변화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한 원 이사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서울과 수도권에 편중되면서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고, 관객 수 또한 지역 편차가 급격하게 벌어졌다"라는 영진위의 인식도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인구 10~20만 지역의 예술영화관을 부당하게 평가해 지원에서 제외해 폐관으로 몰고 가고, 지역의 예술영화 상영을 소외시킨 건 영진위"라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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