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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말을 하지 않은 지 3일째였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을까. 농담처럼 이야기한다는 게 너무 진지했나 보다. 아내에게 뭔가 불만이 있었던 듯싶다. 돌이켜 보면 이게 다 'A' 때문이었다.

강자가 나타났다, 모두 곁눈질로 그를 봤다

내 꿈많던 30대 연애시절, 하룻밤에 수차례 빌딩을 지었다 부수곤 했다.
 내 꿈많던 30대 연애시절, 하룻밤에 수차례 빌딩을 지었다 부수곤 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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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봐. 돈은 남자들이 벌어오는데, 아내가 남편 결재도 없이 집행을 한다는 게 말이 돼?"

1996년. 결혼한 지 두 해 지난 어느 날, 퇴근 후 우연히 갖게 된 직장 동료와의 술자리. 취기가 오르자 모두 '자신들은 집에서 큰소리를 치고 산다'고 말했다. 술의 힘을 빌어서였을 게다. 모두 가정에서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양 떠벌였다. 딱히 할 말이 없던 나는 크게 맞장구를 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니들처럼 큰 소리 치며 살고 있다'는 연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난 퇴근 후 매일 가계부 검사를 하지. 그러면 아내는 과장 앞에 결재를 받으러 온 신규 직원처럼 벌벌 떨지."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평소 말이 없던 입사 동기 A가 입을 열었다. 녀석 한 마디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로 변했다. 제 잘났다고 떠들던 사람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A의 말을 뒤엎을 만한 위력적인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공무원 경력 6년 남짓한 동기들. 어렵게 기안해 과장 앞에만 가면 주눅이 들었다. 칭찬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해 와!" 라는 말을 들으면 그나마 운이 좋은 날이었다. "너 시험 봐서 들어온 놈 맞아? 무슨 일을 동네 반장 일처리 해, 인마!"라는 큰 소리 뒤엔 여지 없이 결재판이 바닥을 뒹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부서마다 상황은 비슷했다.

A가 집에서 과장같이 행동하고 아내는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니... 존경심마저 일었다. 보기와 다르게 녀석 '참 폼 나게 산다'는 생각을 했다.

"집사람이 1만 원 이상 지출할 땐 사전 협조를 구해야 하고, 5만 원 이상 지출 시엔 미리 계획서를 제출토록 하지."

녀석이 한술 더 뜨자 술자리는 갑자기 싸해졌다. 그러면서도 부부 싸움 한번 하지 않는다는 녀석을 모두는 부러움 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니 흘낏 훔쳐봤다는 표현이 옳겠다. 강자가 나타났다는 동물적 위기감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하마터면 내가 가계부를 쓸 뻔했다

"내 동기 A있잖아. 그 짜식은 글쎄 아내가 1만 원 이상 지출하기 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대."
"그래서 뭐?"

다음날,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가급적 기분을 덜 상하게 할 요량으로 A의 뒷말은 생략했다. 눈치 빠른 아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리 없다.

"이걸 보고 그런 소릴 해. 당신 봉급에서 애들 유아원비, 어머님 용돈, 당신 용돈, 쌀값, 반찬값... 거기다 당신 PC통신 좀 많이 해? 그 비용. 난 1년 동안 속옷 한 번 산 적 없어."

잘못 건드렸다. 내 한 마디에 아내는 미리 준비한 듯 한꺼번에 많은 말을 다 하려다 컥컥대기까지 했다. 이미 울상이 돼 버린 아내 얼굴. 수습불 가다.

"앞으로 당신이 가계부 써!"

밖에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려봐야 갈 데도 없다. 몇 시간 뒤 집으로 돌아온 내게 아내는 가계부를 내 밀었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결혼 전 아내는 대기업 전산실에서 근무했다. 보수도 공무원인 나보다 1.5배는 많았다. 사람 하나 믿고 강원도 두메산골 화천까지 왔는데, 그 잘난 남편이 '1만 원 이상 지출 시 승인'을 받으라하니 경상도 말로 '돌아삐지 않겠나' 말이다.

20년이 지났다, 내 집도 생겼다

공무원 7년차 내 급여 명세서. 수령액은 54만6060 원이었다.
 공무원 7년차 내 급여 명세서. 수령액은 54만6060 원이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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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참 힘들겠다. 부인이 좀 도와주면 편할텐데…."

어느 날, 바람을 쏘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춘천에 나갔다. 지하 상가를 걸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 한 남자가 아기를 업고 또 다른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 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앞서 걷는 여인은 부인인 듯 했다. 청바지에 뾰족 구두를 신은 여인은 상당히 세련돼 보였다. 한참 뒤 '여보 같이 가!'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기 둘을 데리고 가는 사람은 남편이 맞다.

'뒷모습이 꼭 A를 닮았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옆모습을 보니 A가 맞다. 불현듯 '여기서 아는 척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그가 뒤돌아볼세라 옆 점포에서 예정에도 없던 반바지를 하나 샀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상황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딱 두 가지로 귀결된다. 하나는 녀석의 허풍이다. 아내에게 잡혀 사는 현실을 거짓으로나마 위안을 삼고 싶었던 거다. 그렇지 않다면 녀석의 지나친 권위에 그의 아내가 쿠데타를 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유아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대학생이다. 빚을 내 24평 규모의 아파트도 샀다. 1억여 원의 대출금은 깔렸지만, 허리띠를 졸라 매면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니다. 박봉을 쪼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온 아내에게 오늘은 왠지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장그래 가계부 기사 공모글입니다.



태그:#가계부, #급여 명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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