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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의 앤 셜리의 성격을 빼어 닮은 7살의 지수
 '빨간 머리 앤'의 앤 셜리의 성격을 빼어 닮은 7살의 지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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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제(7월3일) 부모님과 함께 꼬마 숙녀가 왔습니다. 

석양이 되려는 햇살을 뒤로 받으며 들어오는 그녀의 머리칼이 빨갛게 변해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빨간 머리 앤'이 왔다고 느꼈습니다. 

얼굴에 주근깨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녀의 밝은 웃음도 앤 셜리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몇 살이야?"
"7살이요. 그런데 친구들보다 키가 훨씬 커서 모두 9살로 여겨요." 

내 눈에는 기차역에서 매튜를 처음만난 11살의 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들어오고 10분도 안되어서 그림을 그려서 내게 내밀었습니다.

지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땅 아래와 땅 위가 모두 조화로운 평화를 그렸습니다.
 지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땅 아래와 땅 위가 모두 조화로운 평화를 그렸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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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에요."

땅속의 지렁이와 개미, 춤추는 돼지와 물을 뿜는 코끼리... 땅속과 땅위가 모두 즐거운 초록지붕집의 마당 같았습니다. 모티프원은 집 전체가 초록색이랍니다.

"친구! 고마워!"
"그냥 지수라고 불러도 돼요."
"아니야. 지수의 친구가 되고 싶어."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엄마와 저녁을 먹고 들어온 친구는 모티프원의 큰 애완견 해모에게 말을 걸면서 서재의 제 주위에서 맴돌았습니다.

명랑하고 쾌활하고 수다쟁이면서 말괄량이였습니다.

"해모에게 손을 달라고 해봐! 착한 사람에게는 손을 주거든..."
"정말이요? 그렇지만 해모가 피곤할 수도 있으니 그냥 쓰다듬어만 주겠어요." 

지수는 앤처럼 명랑하고 쾌활하고 수다쟁이면서 말괄량이였습니다.
 지수는 앤처럼 명랑하고 쾌활하고 수다쟁이면서 말괄량이였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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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자기 방으로 간 친구는 밤 11시가 넘어서 잠옷을 입은 채로 다시 서재로 왔습니다. 

"저는 야행성인데... 할아버지도 그러네요."

나는 앤의 말을 흉내 내어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하지만 7살에게는 늦은 시간이란다.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에요. 꿈을 꾸는 곳이기도 하지. 그러니 꿈을 꾸고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친구는 두 발자국을 옮기다가 다시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이 그림 속 아이의 이빨이 빠졌네요? 저도 이빨이 빠졌는데..."
"그래. 너만 한 나이에는 이빨이 흔들리면 빨리 빼주는 것이 좋아. 네가 엄마 젖을 먹을 때 났던 젖니를 제때에 뽑지 않으면 덧니가 될 수 있거든. 친구, 내일 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밤이 늦었지만 서재의 물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지 몇 분이라도 늦추고 싶어 했습니다.
 밤이 늦었지만 서재의 물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지 몇 분이라도 늦추고 싶어 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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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저 인형은 해모와 똑 같은데요?"
"맞아. 해모도 그 인형도 같은 콜리종류의 개야. 내일보자."

지수가 잠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지연시키는 핑계가 된 콜리조각
 지수가 잠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지연시키는 핑계가 된 콜리조각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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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히 주무세요!  ... 그러데 해모는 자나요?"
"그럼 자지. 친구 안녕~"
"네, 안녕히 주무세요. 그런데 제가 다른 그림 그려드릴까요?"
"지금 '안녕히 주무세요'를 몇 번 했는지 알아?"
"네, 알아요. 백번이요." 

#2 

아침 8시가 되자 그녀가 눈을 비비며 서재로 왔습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 어젯밤에 네가 100번 같은 인사를 해서 약간 실망했었는데 찬란한 아침이 되니 그 실망이 다 사라지고 없네."
"그래서 행복하세요?"
"그럼. '빨간 머리 앤'이라는 이야기책이 있어. 애니메이션영화로도 볼 수 있고. 그 주인공, 앤이 꼭 지수를 닮았어. 실수도 잘 하지만 상상력도 뛰어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그 앤이 이렇게 말했어. '정말 행복한 나날이란 항상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며 자잘한 기쁨들이 이어지는 날'이라고. 오늘 잠깬 지수를 보니 다시 그 진주알 몇개가 꿰어진 듯 행복하구나."
"행복하니 다행이군요. 해모와 산책해도 될까요?"
"지수 혼자는 곤란하고 아빠하고 라면 괜찮아. 해모는 착하지만 지수보다 훨씬 몸집이 크잖아."

지수와 아빠는 해모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30분쯤 뒤에 돌아왔습니다.

지수와 지수아빠 그리고 해모가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지수와 지수아빠 그리고 해모가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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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모가 지수 힘들게 하지 않았어?"
"집에 안 오려고 해요."
"지수와 더 산책을 하고 싶은 거지. 지수 같으면 좋은 사람과 있으면 오고 싶겠어?"
"그렇긴 해요. 그런데 저 아래 풀이 있는 동산에서 몇 바퀴를 돈줄 아세요?"
"다섯 바퀴?"
"아휴, 열 바퀴를 돌았어요."

해모는 산책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더 서성거리고 싶어했나봅니다.
 해모는 산책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더 서성거리고 싶어했나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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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서재에서의 지수처럼 해모도 그 풀이 있는 동산이 좋았나보구나? 어제 밤 지수는 서재에서 '안녕히 주무세요'를 몇 번 했는지 기억해?"
"백번이요."
"하지만 해모는 10번밖에 안돌았잖아."
"아참, 해모가 열번이 아니라 백열번을 돌았어요."
"그런 경우, 앤은 뭐라고 생각했는지 알아? '생각대로 되지 않는 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 거니까.'라고 더 기뻐했지. 좋아하는 해모와 110번을 돌 수 있었으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군."

헤어져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치 앤이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가는 것처럼 아쉬웠습니다. 나는 몇 번 뒤돌아보며 멀어지는 지수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매튜였으면 좋을 테데... 앤을 입양할 수 있으니... "

개구쟁이, 지수가 떠나는 것은 제게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개구쟁이, 지수가 떠나는 것은 제게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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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앤의 말을 되새기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 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김지수, #앤셜리, #빨간머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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