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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지난달 31일, 당진지역에 새로운 송전탑 100여기가 세워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76만5천볼트 송전선이 지나가는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의 경우, 1990년대말 이후 주민 150여명 중 24명이 암에 걸렸다. 이 중 13명은 이미 사망했고 현재 11명이 투병중이다. 주목할 부분은 암에 걸린 24명 가운데 23명이 송전선로로부터 500m이내에 거주했다는 사실이다.

가족력 있는 환자가 두 명이라니, 나머지 암환자는 직간접적으로 송전선전자파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게 JTBC의 보도 내용이다. 지상에서 전선 연결을 하지 않았는데도 손에 들고 있는 형광등에 불이 들어올 정도니 송전탑 높이 100m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이를 방출하는 초고압송전선로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 수 있다.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당진이 아닌 타 지역으로 송전하기 위한 시설이고 보니, 당진 주민은 억울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나쁜 전기'를 계속 쓰는 한 피할 수 없는 눈물이라 하겠다. 착한 전기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당진에서 추진되고 있는 송전선로공사는 전문가의 지적대로 선로고장확률 1만분의 1에 대비하는, 그야말로 불필요한 공사라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나쁜 전기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정책의지로 보이기도 한다. 나쁜 전력 시스템을 고착시키기 위해 자그마치 2천억 원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기는 '불평등'을 낳는다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총 161기의 철탑 건설공사를 마무리지었다고 밝혔다.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총 161기의 철탑 건설공사를 마무리지었다고 밝혔다.
ⓒ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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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전기 중 대표적인 것이 대량 소비지와 멀리 떨어진 고리원전이나 당진화력발전소 등에서 생산된 전기다. 반경 30㎞내에 405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그 주민을 방사능 위험에 노출시킨다. 그리고 전기를 소비지까지 보내는 시설인 고압송전선은 인근 주민들에게 전자파 위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게 나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전기가 나쁜 전기이다.

물론 나쁜 전기는 중심에 있는 대도시 주민을 위해 변방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의 결과다. 그리고 이는 지역별 전기 자급률이 낮은 데 원인이 있다. 서울과 경기도의 전기 자급률은 각각 4.7%와 29.6%이다.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이 각각 쓰는 전기의 95.3%와 70.4%가 이 지역들 밖의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얻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부산이나 충남지역은 자체 전력생산량의 60% 이상을 다른 지역으로 보낸다.

결국 지금과 같이 수도권의 전기 자급률이 너무 낮고 그만큼 나쁜 전기가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경기도는 전력자립도를 2030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실현된다면 그 때까지 수명연장논의가 필요한 노후핵발전소 11기중 7기를 대체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밀집된 원전과 밀양송전선로의 부당함을 외치는 주장 속에는 원전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면 서울 한복판에 건설하라는 요구가 들어 있다. 이런 주장은 일본에서도 똑같다. '원전을 동경으로'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에너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전기가격차등제 주장이 타당성을 얻고 있다. 전기생산지의 전기소비자와 그 밖의 전기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요금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를 좀 싸게 구매하는 이점이 원전에 잠재된 핵 위험을 상쇄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윤리적인 전기를 몰아내는 근본적인 방안은 지금과 같이 발전소가 특정지역에 집중되는 것을 벗어나 지역 분산형으로 입지시키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가 지역분산형 에너지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에너지의 비정상적 가격과 소비

나쁜 전기를 없애려면 우선 전기 다소비 지역인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의 전기 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전기 자급률은 수요를 줄이거나 그 지역의 자체공급을 늘려서 해결할 수 있다.

전기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기요금을 통하여 소비자에게 소비를 자제하란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 특히 제조업체들이 열수요 해결을 1차 에너지에서 효율이 많이 떨어지는 2차 에너지인 전기로 전환하게 만드는, 턱없이 싼 산업용 전기요금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6월 21일 당국은 주택용의 경우 하절기(7월~9월) 전기요금을 내리고, 산업용의 경우 1년 동안 토요일 사용량에 대해 할인해주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오히려 소비자에게 전기소비를 얼마든지 더 해도 좋다는 신호를 주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에너지의 윤리성을 따지기 전에 당연히 에너지원별 가격을 비교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일본만 해도 제조업의 소비전기 가운데 자체발전충당비율이 20.6%인데 비하여 우리나라 제조업의 그것은 4.1%에 불과하다. 에너지 가격정책의 차이에서 오는 개별기업들의 대응태도의 차이다. 에너지 가격의 비정상이 에너지의 비정상적인 소비왜곡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에너지기본계획(2014년 1월)에서 전기가 유류보다 싸다는 것을 인정하고 에너지 가격 체계의 합리적 개편추진을 언급했지만 결국 가격조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제조업체들이 자가발전으로 자체충당을 하거나 다른 에너지원을 고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미 세계경제는 저성장국면에 있고 우리나라 전력수요증가율 역시 지난해에 0%대에 진입했다. 그럼에도 최근 발표된 제7차전력수급기본계획은 앞으로 14년 동안 연평균 전력수요증가율을 2.2%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도 전력수요를 줄이기보다는 거꾸로 경험적 추세와 관계없이 전력수요를 오히려 늘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전력피크로부터 해방됐다?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자료사진)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자료사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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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절기 전기 요금 인하 등과 같은 정부의 전기 가격 정책은 하절기 전력피크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선언과 같다. 제7차전력수급기본계획(목표년도 2015~2029년)은 전력예비율을 적정선인 12~15%를 훨씬 넘긴 22%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전력예비율은 2014년에 이미 20%대에 육박해 있어 전기피크에 대비할 수 있게는 되었다고 하지만 원전 증설을 핵심으로 하는 과잉설비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기저설비에 의한 설비예비율 수요가 충족되는 한 소비지와 가까이 입지한 열병합발전소와 같은 발전설비는 이제 가동필요성을 잃어버린 유휴시설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가능한 그 가동률을 높여서 서울·경기지역의 전력생산을 자급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왜곡된 에너지가격, 과잉설비 그리고 과도한 전력예비율을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은 발전설비의 다양성과 발전입지의 소비지화를 통한 친환경적이고 착한 에너지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탈핵의 길을 멀게 할 것이다.

하절기 전기요금 인하 또한 전기를 많이 쓸수록 좋다는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전기에너지는 에너지소비시장에서 석유나 가스와 경쟁한다. 발전연료 중 가스, 중유, 경유 등에 대해서는 유럽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의 탄소가격(2012년 기준 7600원/톤)보다 현격히 높은 중과세(천연가스기준 3만 3000원/톤)가 부과되는 반면 주요 전력원인 핵, 석탄에 대해서는 면제되어 왔다. 이를 통해 핵, 석탄 의존도가 발전비중의 약 70%를 점유할 만큼 심화되어 왔다. 이른바 전력마피아와 원전마피아가 주도하는 엉터리 같은 시장왜곡이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열병합발전소의 유휴화 원인

에너지 다소비지역인 경기도와 서울의 전기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지역 안에 발전설비를 늘리거나, 있는 발전소의 가동률을 제고해야 한다. 우선 대도시 안에 시설되어 있는 열병합발전소의 가동률이 높게 유지될 수 있도록 계통 한계 가격과 급전지시 그리고 적정한 열 요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지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저발전이 대폭 신규진입하고 전력예비율이 20%대에 근접하면서 열병합발전이 가지는 가치들-이를테면 송전망 건설수요 감축, 계통편익(분산전원확대를 통해 수요처 인근에서 발전해 공급)을 통한 착한 전기-이 전력시장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동시에 햇빛발전 같은 재생가능한 발전설비 확대를 통하여 자급률을 높여간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그러나 햇빛발전 투자의 불확실성을 담보함으로써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을 이끌어온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정부는 2011년을 끝으로 폐지했다. 이에 따라 자발적인 민간의 소규모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 유인이 날아가 버렸다. 지난해 7월 부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햇빛발전1호기를 준공하여 가동하고 있지만 투자회수가 난감하게 되었고 결국 2호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말았다.

한 협동조합원은 자그마치 900만 원을 투자했다가 원금회수는 고사하고 아무런 배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시장 조건을 이렇게 마구 뒤집어 놓음으로써 대안 에너지를 향한 시민적 자발성까지 회수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역분산형 소규모 재생가능에너지의 싹을 아예 잘라,  메이저 전력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임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은 에너지 절약이 요구되는 시대라기 보다 에너지 선택만 남은 시대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원전 증설을 포기시키고 서울·경기의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 절약이 불가피한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수요관리라 할 수 있다. 소비자가 절약과 선택을 동시에 고려하게 유도하고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에너지가 시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에너지 당국의 거대한 정책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너지에 관해선 정부가 독립적이고 실질적으로 시장보다 우위에 서야 할 때이다.

거대 공기업이 주도하는 독점적 전력시장이 정부를 끌고 다니도록 방치할 때 이 한반도는 동남해안에 잠재한 핵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될지 모른다. 'Simplicity Institute(미국의 단순성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Samuel Alexander(새뮤얼 알렉산더)'는 그의 책 <PROSPEROUS DESCENT>에서 "석유가 싸질수록 비용은 늘어난다"고 말한다. 석유가격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설을 전기에 적용하면, 전기값이 싸다고 우리가 좋아만 할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유진생 부천녹색당원 입니다. 부천지역신문이자 협동조합신문인 콩나물신문에도 송고합니다. 이 글은 블로그(http://blog.naver.com/igohun?Redirect=Log&logNo=220408543720)에도 실렸습니다.



태그:#76만5천볼트송전선, #원전, #전기자급률, #소규모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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