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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2연평해전의 수병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영화 '연평해전'이 300만 관객을 돌파하여 순항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13년간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가끔 언론보도로만 사람들에게 알려져왔던 북한의 대남도발인 제2연평해전이 미디어의 중심에 서서 여러 영화애호가는 물론 시민에게까지 주요 사건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재평가된 제2연평해전

영화를 관람한 시민들은 공감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정치인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법제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회에서는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이 개봉 다음 날 국회에서 '연평해전'의 상영회를 개최하였다. 두 의원 모두 연평해전 영화의 제작에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국회의원들도 '영화삯'을 법제화로 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제2연평해전 전투수행자에 대한 명예선양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내놓았다. 사상자들에 대한 별도법안을 내놓는 것인데, '전사자'로 격상은 물론 명예선양 및 보상심위의를 설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새누리당에 이어 새정치민주연합의 안규백 의원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의 군인연금법 부칙에 '제2연평해전 전사자에 대하여 개선된 기준의 사망보상금을 적용/지급한다는 예외규정을 덧붙인 것이다. 다만 여권 내에서 법안을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전사한 군인에 대하여 기념할 수 있는 법안이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나온 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이다.

미디어로써 재평가되어 온 대한민국사

이번 '연평해전' 영화로 인해 13주기를 맞은 제2연평해전은 미디어의 중심에 서서 여러 영화애호가는 물론 시민에게까지 6월 29일의 이야기를 전했고, 결국 250만명의 거대한 여론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굵직한 역사와 사건, 그리고 무시되어왔던 소수자의 이야기들이 미디어로 재평가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1년 개봉된 '도가니'는 공지영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농아학교인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반인륜적인 만행을 다시금 세상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고, 지난 2009년 개봉된 '이태원 살인사건'은 12년 전 일어났던 살인 사건에 대해 다시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TV 프로그램인 '공개수배 사건 24시'가 직접적인 범죄자 검거라는 쾌거로 연결되고, 1995년 드라마인 '모래시계'를 바탕으로 홍준표가 정계에 진출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을 본다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정보가 하루빨리 변하고 어제의 큰 사건이 오늘은 다루지조차 않는 미미한 일이 되는 현재라면 앞으로 미디어가 다시금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사건들을 수면 위로 끌어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 영화나 미디어가 만들어낼 새로운 여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연평해전'을 보고 13년 전 제2연평해전에 대해 다시금 기억하듯, 10년 후에는 세월호 침몰사고라던가, 연평도 포격 사태,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등도 영화화되어 시민들의 가슴을 다시금 울리고 이것이 잊었던 기억에 대해 다시금 기억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미디어와 평론에 과한 정치적 논란

지난 2014년 개봉된 '변호인', 올해 초 개봉된 '국제시장', 그리고 이번의 '연평해전'까지의 공통점은 과도한 진영논리로 인해 영화관람에서까지 정치 관념을 입각시켰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의식이 아직까지 성숙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4년에는 미국에서도 '국제시장'과 비슷한 논란이 있어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개봉한 이후 전쟁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거두었다. 아랍 지역으로 파병된 한 저격수가 심신이 망가지는 과정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곧이어 무슬림에 대한 증오범죄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이는 곧 미국 내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이어졌다.

국내도 마찬가지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SNS에 "어제 당원 100명과 연평해전 단체관람. 대통령 한 번 잘못 뽑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 대통령은 아예 NLL을 적에게 헌납하려 했었죠."라고 올렸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평론가들이 평론과 관람을 거부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연평해전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내부 장치의 허술함에 조금의 비판이라도 가하는 순간 본디의 정치적 관념과는 관련없이 매도당하고 비난당하는 현상이 있었고, 실제로 한 언론은 이를 언급하며 '변호인'과 비교했다가 역풍을 맞는 일이 있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제2연평해전은 우리가 승리한 전투"라며, "조금 늦었지만 제2연평해전의 영령을 다시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져 다행"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상영회를 개최하고 법을 발의한 네 명의 의원이 당적을 뒤로 하고 실질적인 예우에 초점을 맞춘 것과 상충하는 발언이다.

대중의 영화표에는 정치적 논리가 없다. 특히 연평해전은 진보와 보수와는 상관없이 관객에게는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 전쟁영화 그 이상 이하가 되지 못한다. 진보 측에서는 대항마라며 관람 캠페인 등을 전개하기도 했던 영화 '소수의견'은 관객들의 외면 속에 곧이어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점점 예매율을 뺏기며 극장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다.

도가니, 지슬과 같은 영화는 한국 현대사 속 잊어버린 조각을 채우고 안보, 범죄 재심과 같은 국가 공통적인 관심사를 다시금 생각하는 역할을 해 왔다. 다만 2013년 말 변호인과 함께 시작한 영화의 정치로의 입각은 자칫하면 대중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보수와 진보의 "표뺏기 전쟁"이 "영화표 뺏기 전쟁"으로 커지는 것은 한국 영화계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영화에 대한 과한 정치적 논쟁이 달갑지 않은 이유이다.



태그:#영화, #연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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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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