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수의견>의 김성제 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소수의견>의 김성제 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뉴타운 재개발을 다뤘는데 영화 자체가 재개발됐다"는 김성제 감독의 말엔 뼈가 있었다. 웃자고 던진 말이었지만 정확하게 <소수의견>이 버텨왔던 지난 2년이 압축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6월에 완성해놓고도 극장에 걸리지 못하던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영화와 관련해 또 하나의 싸움이 진행 중이다. <소수의견>은 지난 6월 24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지만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같은 날 개봉한 <연평해전>과 비교해보면 예매율이나 좌석점유율을 고려해도 과한 차별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할 만하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까지 개봉한 마당에 정작 주요 시간대는 대형배급사 차지가 됐다. 선택권을 보장받기 위해 관객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때가 온 셈이다.

제목은 <소수의견>이지만 작품이 품은 함의는 다수가 가진 올바른 상식에 대한 지지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성제 감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수의견> 분명히 용산참사 모티브로 삼았다"

- 영화는 처음부터 실화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2009년 벌어진 용산참사에 대한 연상 작용은 피할 수 없더라. 그 관계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은지.
"개봉 훨씬 전부터 '용산참사에 대한 영화'라고 보도되곤 했다. 이제 개봉한 만큼 말씀드릴 시점이 됐다. 용산참사와의 관련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분명 모티브로 했다. 다만 걱정이 된 건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한 싸움은 진행 중인데 유가족분들, 관계자들이 다른 기대를 하실 수도 있겠다는 점이었다.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더 크게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풍경과 공기를 녹이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정치드라마로 말하고 싶다. 국회나 청와대가 꼭 나와야 정치드라마일까. 드라마 <하얀거탑>도 정치 드라마다. 여러 층위 사람들 욕망이 부딪히며 갈등을 만들고 해결하는 그 자체가 정치일 수 있다.

10개 중에 진실이 9개 섞이면 대부분 실화라고 생각하시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것도 거짓이다. <소수의견>도 마찬가지다. 차용한 것 중 사실적인 게 있지만, 용산 남일당 비극과 비교하면 영화 속 사건 자체가 다르다. 배경도 강북 뉴타운 개발 현장이었다. 핵심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사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를 차용하기도 했다. 또 용산참사 땐 증인들이 많다며 국민참여재판이 거부당했다. 영화에선 오히려 검찰이 제시한 증인 수를 줄이라며 참여재판으로 가지 않나. 그 지점부터가 판타지의 시작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건 모티브를 가져온 거다."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 원작과 좀 다른 부분도 있다. 특히 여검사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아나운서가 설명하는 느낌이더라.
"맞다. 배심원을 상대하는 검사가 본래 원작에선 이민정 검사였고 섹슈얼리티가 강조돼있다. 근데 난 배심원들이 섹슈얼리티에 설득당하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름도 바꾸고 다르게 표현했다. (영화에선 유인하라는 이름이며, 사실 유인하는 공수경 기자 역의 김옥빈이 실제로 만나서 참고한 기자 이름이기도 하다-기자 주) 배우 오연아가 이 역을 맡았는데 그냥 아나운서라고 생각해달라고 요구했다. 김혜자 선생님을 상상하며 톤을 잡아갔다.

그리고 법원 바닥에 한 단을 더 세워서 연극 무대처럼 만들었다. 검찰과 변호사 모두 배심원을 상대로 연기하는 거니 연극적 요소를 강조하고 싶었다. 윤계상이 윤진원 변호사를 맡지 않았나. 윤진원은 다시 배심원을 보고 연기하는 거지. 사실 이 장면 찍을 때 판사 역의 권해효 선배와 아들을 잃은 박재호 역의 이경영 선배가 8시간 넘게 토론했다.

윤진원의 법정 동선 때문이었는데 원래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 해당 배우에겐 실례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굉장히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토론이었다. 개인적으론 행복한 경험이었지만 제작 스태프 입장에선 지옥이었을 거다. 밤샘 촬영하고 오전엔 법정을 비워줘야 하는데 토론이 길어졌으니. 이걸 보면 감독은 참 이기적인 직업인 것 같다.(웃음)"

<소수의견> 채운 소중한 캐릭터... "분노 아닌 연대 담았다"

- 유해진이 연기한 장대석 변호사를 보면 386세대의 어두운 면을 느낄 수 있다. 윤진원을 돕는 것에 주저하다가 돕긴 하지만 실천 의지가 떨어진 현재 386 엘리트가 떠올랐다.
"나 역시 1980년대 끝자락에 대학을 다녔기에 그 정서를 잘 안다. 지금 친구들이 장대석처럼 살기도 한다. 개인적인 욕심으론 내 청년, 중년 시절이 마주치는 느낌을 윤계상과 유해진씨를 통해 담고 싶었다. 이 말을 들으면 배우들은 아마 감독이 감상에 절었다고 할 듯.(웃음)"

- 또 윤진원 변호사의 징계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위원장의 존재가 참 소중했다.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어른이 갈수록 줄어드는데 신선했다.
"문학 등에서 희망을 말할 때 보통 다음 세대에 걸지 않나. 난 영화를 통해 이 현실에 대한 꾸지람을 노인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박규채 선생님이 이 역을 맡았는데 본래 배우셨다. 암 투병으로 몸이 약해지셨는데 그 역할은 반드시 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기가 아닌 진짜 노인의 눈빛이 필요했다. 알고 보니 우리 영화 PD의 이모부시더라. 영화진흥공사의 마지막 사장을 하셨던 분이기도 하다."

  영화<소수의견>의 김성제 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엄밀히 말하면 영화가 현실을 상징하고는 있지만 분노를 조장하고 전하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연대와 공감의 메시지가 강하게 읽혔다.
"맞다. 법정극으로 좁혀서 보면 성장 드라마 혹은 윤진원과 장대성의 버디 무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가장 미안해지는 게 공수경(김옥빈 분) 기자다. 연대의 코드가 분명히 있다. 법률가들을 사회 엘리트라 하는데 그들끼리 줄 세우고 순위를 정하지 않나. 그걸 조롱하고 싶기도 했다. 결정적인 증거 나왔을 때 변호사들이 어려운 말로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 공 기자가 화내면서 그냥 기사 쓴다고 하지 않나. 법정 극의 영역에선 민폐 끼치는 여자 캐릭터로 보일 수 있는데 거기에 기자의 멋이 있는 거다.

영화 이후를 생각하면 박재호는 결국 집행유예든 만기출소든 세상으로 나올 거다. 집도 아들도 잃었지만 그가 기댈 수 있는 연대감의 씨앗이자 출발점은 공수경 기자의 글일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거기까진 못 갔지만, 김옥빈씨를 통해 그걸 말하고 싶었다. 공수경 기자의 실제 모델분이 술을 진짜 잘 마신다. 2년 전 배우들과 만나 술 먹었는데 다 이겨버렸다. 개봉 때 보니 이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술을 자제한다더라.(웃음)"

"힘들어도 유머 잃지 말고 살자!"

  영화<소수의견>의 김성제 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마흔 중반에 연출로 데뷔했지만 본래 유명 프로듀서였다. 오라는 회사가 많았다고 들었다. 또 연출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요리도 배웠다고 들었다.
"영화를 그만두기엔 너무 멀리 왔다. 지금이라도 불러주면 갈 텐데.(웃음) <소수의견>마저 투자 못 받으면 네 작품째 좌절당하는 거였다. 개봉 못 했으면 영화를 진짜 그만뒀을 거다. 젊을 땐 청운의 꿈이겠지만 10년 넘게 이러고 있으면 노추(老醜)겠더라. 그동안 고시 공부를 했다면 뭐라도 됐을 거다. 하여튼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재교육 과정을 살폈다. 굴삭기와 요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전자는 3개월간 지방에서 합숙해야 하더라. 가정이 있어 차마 못 하겠고, 요리를 배웠다. 상수동 어느 식당에 가서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감독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요리는 계속할 거다. 현재 식당을 준비하고 있다. 능력이 있다면 제주도에 가 있더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 가능성이 없다면 상암동 CJ E&M 앞에 산다고 해도 못 만들 거고. 연애하듯 밀당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단 맺어지면 혼신을 다해야 하지만, 징징거리며 여자를 따라다녀 봐야 사랑이 이뤄지진 않지 않나. '나 좀 뭐 있어!' 이래야 따라오지.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웃음)"

- <소수의견> 이후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겠지. 이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지지 않는 인물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조금 더 재밌게 하려고 인위적으로 꾸미면 관객은 분명 알아차린다. 다만 영화로 사람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갈 존재다. 세상은 어쩌면 대단히 희망적이진 않겠지만 죽을 만큼 절망적이지도 않다고 본다. 지난 10년, 20년도 쭉 살아냈지 않나. 나 역시 대한민국이 어찌 흐르든 이 땅에서 40년 이상은 더 살 거다. 너무 심각해지지도 말고 적절히 유머를 잃지 않으며 사는 게 견디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의견 김성제 이경영 윤계상 유해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