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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아이에게서 인생을 배웁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질 때가 생깁니다.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혹은 작은 행동이 어른들을 감동시키고, 인생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명절날 식구들이 모이면 으레 거실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합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사촌들과 다른 방에서 놀게 되지요. 그런데 아이가 별안간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방문을 '쾅' 열고 나오더니 "많이 먹고 잘~~자라라~~" 하고 들어가는 게 아닙니까! 식구들은 순간, 3초쯤의 정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박장대소', 어릴 적 엄마에게서나 들어봄직한 말을 들은 어른들은 3초간 광속으로 추억 속으로 빠져든 듯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구, 어른들이 먹고 떠들어 시끄러웠나보다. 비꼬네", "어디서 들은 어른 말씀을 따라하는 것이지. 뭐", "엄마 아빠가 많이 힘들어 보였나 보네. 많이 먹고 잘 자라래" "저 놈이 어른들보고 잘 자라래. 똑바로 살라는 것 아냐?" 아이의 돌발 발언은 순간이었지만 한참을 이야깃거리가 되어 어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그림책 공작소
▲ 프랭크 애시 그림책 삼둥이 < 그림책 공작소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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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중에도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필자도 영아책으로 구분된 책은 잘 사지 않기에 그저 지인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책을 샀습니다. 잘 찢어지지 않고 작은 손에 들기 좋은 보드북이라 딱 영아책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가 뜻하지 않은 감동을 만나 코끝이 찡해져왔습니다. 마치 "많이 먹고 잘 자라라"란 격려를 들었을 때처럼 마음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그림책 공작소에서 낸 <뚝딱뚝딱 처음책>은 요즘 예능 대세 '대한', '민국', '만세'처럼 삼둥이입니다. 프랭크 애시의 세 권의 명작이 삼둥이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꼴찌 강아지'는 이 세상의 모든 꼴찌들에게 보내는 격려 메시지입니다. 아홉 형제 중 꼴찌로 태어난 강아지가 젖도 꼴찌로 먹고, 눈도 꼴찌로 뜨고, 뭘 해도 더디고 부족해 '나는 왜 맨날 꼴찌일까?' 고민에 빠집니다. 강아지들의 입양이 시작되고 하나 둘 형제들이 새 주인에게로 떠나지만 꼴찌는 아무도 데려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오면 좋아서 하는 일들이 죄다 실수로 이어져 아무도 데려가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꼴찌 강아지는 선택되지 못해 마지막에 온 아이에게 주어지지만 그 아이에게 꼴찌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첫째 강아지'가 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취준생'이라 초조한 조카에게 보내주고 싶은 책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꼭 아빠처럼'은 이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이야기에는 아빠와 아들이 나옵니다. 예능프로 '수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처럼요. 아이는 일어나 하품을 할 때도 '꼭 아빠처럼', 밥을 먹을 때도 '꼭 아빠처럼' 장화를 신을 때도 '꼭 아빠처럼' 낚시를 가는 길에 꽃을 꺾어 엄마에게 드리는 것도 '꼭 아빠처럼'합니다.

낚시를 할 때도 '꼭 아빠처럼' 준비하지요. '아빠처럼' 고기를 잡았을까요? 재미있는 반전이 담겨 있어,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이미 '꼴찌 강아지'의 결말을 알려드려 두 번째 이야기는 남겨두어야겠습니다. 아빠들이 읽으면 '아빠라서 참 좋다' 생각하며 술김에가 아니라 맨 정신에도 아들 녀석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무뚝뚝한 옆집 초보 아빠에게 선물해야겠네요.

세 번째 이야기는 '안녕, 우리집'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집은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와서 몇 달 간은 도무지 새 집에 적응도 안 되고 낯설어 물건을 찾아다니고 옛집에서 편리했던 것,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안녕, 우리집'은 이렇게 정든 집을 떠나는 모든 이에게 주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집에 살았든, 초라한 집에 살았든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살아가며 집 안 곳곳에 '추억'을 심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시나브로 심고 있지요. 아기 곰이 그 추억과 이별할 시간을 놓치지 않았네요. 어른들은 분주함 때문에 잃어버린 그 시간을 말입니다.

아기곰은 깜박 잊은 게 있다며 새집으로의 출발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옛집에 들어가 거실, 침실 두루두루 둘러보며 잊은 것을 찾아보지요. 아빠랑 엄마는 따라 들어와 아기 곰이 잊은 것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추억'이었습니다.

아빠 곰은 아기 곰을 안고 찬찬히 집 안을 돌아다니며 집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추억'을 담은 후에 이사를 떠납니다. 떠나야 하는 것들과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그림책은 실연당한 조카가 필요한 책일지도 모르겠네요. 보내야할 것들과 작별하고 추억을 얻는 지혜를 가르쳐주니까요.

'프랭크 애시'의 그림책 삼둥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꼴찌에게 박수를" "아빠 만세" "안녕, 지나간 것들" 아가들에게서 인생을 배웁니다.   



뚝딱뚝딱 처음책 보드북 세트 - 전3권

프랭크 애시 글.그림, 김서정 옮김, 그림책공작소(2015)


태그:#안녕,우리집, #꼴찌 강아지, #꼭 아빠처럼 , #그림책 공작소, #프랭크 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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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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