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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다고 하지마세요,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한 안산시외버스터미널행 고속버스가 안산역을 지나자 가로수마다 걸려있는 노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가장자리가 하얗게 바랬다. 일부는 주름진 채로 축 늘어져있다. 그 아래를 평온한 얼굴로 지나는 시민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초록빛이 완연한 잎사귀 아래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현수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물 같았다.

하얗게 바랜 세월호 현수막, 빠르게 늙어가는 유가족들

메르스로 잠시 휴지기를 가진 416기억순례가 4일 재개했다. 순례객들이 304개 기억함이 전시된 기억전시관을 둘러보는 중이다.
▲ 416기억순례 메르스로 잠시 휴지기를 가진 416기억순례가 4일 재개했다. 순례객들이 304개 기억함이 전시된 기억전시관을 둘러보는 중이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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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을 곁에서 지켜보면 매우 빨리 늙어가는 게 눈에 보입니다. 방금 했던 일을 기억 못하고, 눈이 나빠지고, 수면장애에 시달립니다. 잇몸 질환으로 이 14개가 빠진 부모도 있습니다. OO엄마는 몸에 섬유질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온갖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4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위치한 416기억전시관에서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이 416기억순례객들에게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모든 기록을 수집하는 416기억저장소가 주관하는 이 순례는, 기억전시관과 단원고, 합동분향소를 순례하며 참사의 기록을 곱씹고, 잊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메르스로 잠시 휴지기를 가진 순례는 이날 재개됐다.

3층짜리 빌라촌 한가운데 위치한 기억전시관에는 현재 '기억함' 304개가 전시돼 있다. 개관 사진전인 '아이들의 방'에 이어 두 번째 기획전이다. 22평 전시관 천장을 가득 채운 기억함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물품이 담겼다. 그 중 2-4 고 김웅기 학생의 기억함에는 18살이 되는 해에 선물하려고 6살 때 파둔 인감도장이 들어갔다.

"참사 초기에 아픔을 잊기 위해서 이 동네를 떠난 분들이 요즘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다고 합니다. 옛 집 앞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인기척이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갑니다. 밤길을 걸을 때는 가로등이 없는 길로 갑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기억전시관을 찾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시선을 피해 동굴 속에 숨는 거죠. 마치 저렇게요."

유가족과 시민이 찰흙으로 빚은 조형물이 416기억전시관에 전시됐다.
 유가족과 시민이 찰흙으로 빚은 조형물이 416기억전시관에 전시됐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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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무국장이 가리킨 곳에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찰흙으로 만든 조형물 10여 개가 놓여있었다. 두꺼운 벽을 세우고, 그 앞에 울타리까지 만든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에는 찰흙 인형이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설명을 듣던 한 대학생 순례객이(27) 검은 뿔테 안경을 벗고 눈가를 매만졌다. 

"힘들면 로비로 나와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두 번째 코스인 단원고 앞에서 김 사무국장이 말했다. 그를 따라 입구로 들어가자 콘크리트 건물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3층에 오르자 지금은 '명예 3학년'이 된 옛 2학년 교실이 나왔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 단원고 남현철 학생의 책상.
 세월호 참사 실종자 단원고 남현철 학생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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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기억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희생학생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416기억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희생학생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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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명이 사망하고 17명만이 돌아왔다는 1반에 들어서자 칠판, 창문, 창틀, 게시판, 책상을 가득 채운 추모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순례객 10여 명이 교실 곳곳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면 나오라'던 김 사무국장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복도를 따라 쭉 이어진 교실에는 무게를 헤아리기 힘든 지난 445일 동안의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있었다. '난 진짜 너 살아있다고 믿는다, 빨리 돌아와'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어느새 '잊지않아, 절대로', '잠겨도 좋으니 그대는 나에게 물처럼 밀려오라' 같은 추모 인사로 바뀌었다. 반대로 책상마다 놓인 다육식물은 생기가 넘쳤다. 표면에 윤기가 흘렀다. 누군가 보살피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단원고 희생학생들의 교실에 붙어있는 메시지.
 단원고 희생학생들의 교실에 붙어있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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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기억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명예3학년 학생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416기억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명예3학년 학생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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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 병원만 8곳...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생존학생들"

"생존 학생들의 마음에는 지금도 굉장한 아픔이 쌓여있습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평준화로 바뀐 첫해에 입학해서 반 아이들 모두가 동네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들과 처음으로 떠난 수학여행이었고요. 생존 학생들은 적게는 1개, 많게는 8개의 병원을 다닙니다. 깊은 트라우마가 피부병, 심장질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마친 장동원 생존학생 학부모대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3반에서는 희생 학생의 어머니 3명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청소 중이었다. 교실 안은 아이들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반듯하게 정돈돼 있었다. 장 대표는 "아픔도 교육"이라는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말을 빌리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실을 영구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국장은 유가족의 심리상태를 걱정했다. 그는 "부모들이 서로 같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출산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질긴 인연이다', '질기니까 죽을 때도 같이 죽지' 같은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농담을 주고 받는다"고 전했다.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은 불안정한 부모를 보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는 "최근 정혜신 박사가 이들 중 몇 명을 상담한 뒤 무방비 상태라고 진단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이나 경찰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 오히려 우린 그들을 무시해요. 정말로 무서운 건 마음 따듯한 사람들이에요. 그들마저 우리를 외면하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따듯한 사람이 없구나 하는 절망감이 들까봐 무서워요."

합동분향소 옆 유가족대기실에서 순례객과 둘러 앉은 유가족들.
 합동분향소 옆 유가족대기실에서 순례객과 둘러 앉은 유가족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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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례 장소인 안산 합동분향소 옆 유가족 대기실. 순례객을 맞은 '호성엄마' 강부자씨의 말이다. 지난 4월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며 삭발한 그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5cm남짓 자랐다. 이곳에서 순례객과 둘러앉은 강씨는 "정말 이런 소리 하고 싶지 않은데,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한다"며 여러 차례 허리를 숙이기도 했다. 곁에 앉은 '순범엄마' 최지영씨는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훌쩍였다.

"슬픔이 차올라 독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살기 위해 독을 차고 선선히 가겠습니다."

합동분향소 주차장에 걸린 현수막이 말하듯, 지난 1월 416가족협의회를 출범한 유가족들은 진실규명을 위한 '장기전'을 각오한 상태다. 강씨는 "지난해에는 내가 억울해서 거리로 나섰다면, 지금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참사를 겪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최씨 역시 "아이들이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모른다는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416기억순례는 매주 주말마다 진행된다. 단, 단원고 여름방학 기간인 7월20일~8월16일에는 평일에도 가능하다. 참가 신청은 '416기억저장소'에서 할 수 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416기억순례, #세월호참사, #단원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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