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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쿠와 그리고 포카라 지진피해자 임시거처인 대형 천막을 찾았다. 열악하지만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 지진피해자 임시수용시설을 찾아서 가시쿠와 그리고 포카라 지진피해자 임시거처인 대형 천막을 찾았다. 열악하지만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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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카를 빠져 나오면서도 나는 깊은 잠에 취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 가시쿠와에 도착했다. 잠시 잠에서 깨어 네팔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바누벅타 어챠르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가시쿠와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본지에서도 이미 몇 차례 바누벅타 어챠르야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네팔어 창시자로 알려진 사람이고 네팔어로 최초의 시를 썼다고 해서 하디꺼비(최초의 시인, Hadi Kabi)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곳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고 매우 시원하다. 한국인들도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길이라면 한 번쯤 쉬어가기를 권한다. 과거에는 이렇다 할 이정표도 없었으나 요즘은 네팔 정부에서인지 주정부에서인지 나름 이정표도 만들고 신경을 조금 쓰는 눈치다.

이 우물은 가시쿠와(풀 깎는 사람이 만든 우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우물을 풀 깎는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물로 세수를 하고 근처 가게에서 산 망고를 씻어서 일행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기자 일행이 가시쿠와에서 망고를 먹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어색하지만 자세를 취해 주었다.

잠시 동안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곧 가시쿠와를 출발했고 약 2시간이 지나서 포카라에 도착했다.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렸다. 우리 일행이 머물 호텔에 도착하자 먼저 와있던 다른 기자 일행이 있었다. 그들의 안내를 받고 인사를 나누고 숙소가 배정되었다. 우리 부부는 특별한 손님대접을 받고 그들이 머무는 호텔 옆 다른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자 게스트하우스 수준에서 머물러도 된다고 했으나 그들은 한사코 사돈행세(?)를 하며 특별한 손님으로 맞아주었다. 고마운 배려였다.

잠시 후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 부부는 포카라에 오래된 인연인 포카라 피자하우스 사장인 비제야 구릉을 만나기 위해 잠시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곧 비제야 구릉 가족을 만나고 다시 돌아왔고 기자단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팔 민요 '도호리'

우리 부부와 기자단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호텔 응접실 한쪽에서 여러 지역에서 기자연수를 왔다는 사람들이 남녀가 어울려 돌림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네팔에 도호리(Dohori)라는 민요였다. 노래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흥이 넘치고 재치가 넘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잇었다. 나는 나중에 도호리에 대해서 아내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도호리(Dohori)라는 네팔 전통음악으로 민요이다. 도호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서로 논쟁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논쟁을 리듬에 싣고 있으며, 신속하고 재치있는 시를 포함하고 있다. 도호리에서 두 팀은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포함된다. 노래는 남자가 주로 하며 가사에는 일반적으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리듬을 실어 여성에게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여자는 리듬을 실어 빠른 응답과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 서로 음악적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 도호리라는 음악은 심지어 일주일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도호리(Dohori)의 길이는 노래에 참가하는 사람의 빠른 사고 능력에 달려있다.

나는 매우 흥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그들이 어울리는 것을 보았다. 네팔인들이 품은 저력은 저런 도호리 같은 민요에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깊은 밤 약간의 취기와 함께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적요로운 분위기에 포카라에 밤은 아늑했다.

저너자띠라는 네팔몽골리안 기자단과 함께 한 시간이다. 아이들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고 어른들도 시름에 젖은 모습은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아이들에게 희망을 저너자띠라는 네팔몽골리안 기자단과 함께 한 시간이다. 아이들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고 어른들도 시름에 젖은 모습은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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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제주도에서 신생아 의류와 산모에게 여성용품을 전달하기 위해 물품을 모았으나 전할 방법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15킬로그램 내외를 보내면 우리가 대신 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것을 포카라에서 대신 전하게 되었다.
▲ 신생아 의류와 산모에게 여성용품 전달 우리 부부는 제주도에서 신생아 의류와 산모에게 여성용품을 전달하기 위해 물품을 모았으나 전할 방법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15킬로그램 내외를 보내면 우리가 대신 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것을 포카라에서 대신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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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흐릿한 날씨에 커피와 토스트 빵을 먹으며 아침 인사를 나누고 곧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 부부와 기자단은 포카라 구릉족 복지센타에 임시거처를 마련한 고르카 지진피해자 천막을 찾기로 했다.

우리 일행이 찾아가서 막 관계자들과 인사를 마치고 행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구릉족 복지센터 앞 마당에는 대형천막이 처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고르카 지역에 살고 있던 피해자들이 종족에 관계없이 머물고 있다고 했다.

타망족, 머거르족, 순누와르, 체빵, 쉬레스타, 아리안 종족 등 다양한 종족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몇 개 종족이 함께 있으나, 초기 피해자 대부분이 부분 복구가 되자 떠나고 피해가 극심한 80여 명이 남아있다고 했다.

먼저 한 단체에서 명상과 요가프로그램을 실시하며 지진피해지역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을 달래주었다. 이어서 기자단체의 한 회원인 어니타 구릉(전 사가르마타 텔레비전 아나운서)이 행사 당일 텐트촌에 머물고 있는 사람 전원에게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제주 고은경님에게서 지원 받은 신생아 의류와 산모를 위한 여성용품을 대신 전달했고, 우리 부부가 쓴 책과 따로 지인들이 협찬한 아동의류 50여 점을 전달했다.

한 시민단체에서 요가명상수련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었다. 아내가 기관 관계자로부터 감사와 축원을 빌어주는 카다를 받고 있고 사진 아래 왼쪽 전 아나운서 어니따 구릉 씨가 같은 축원을 받고 있다. 사진 아래 오른쪽은 우리 부부가 따로 준비한 아동의류와 직접 쓴 동화 책을 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 요가와 명상으로 심신을 달래주다. 한 시민단체에서 요가명상수련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었다. 아내가 기관 관계자로부터 감사와 축원을 빌어주는 카다를 받고 있고 사진 아래 왼쪽 전 아나운서 어니따 구릉 씨가 같은 축원을 받고 있다. 사진 아래 오른쪽은 우리 부부가 따로 준비한 아동의류와 직접 쓴 동화 책을 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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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리적으로 기쁜 하루였다. 지진 이후 태어난 신생아와 산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물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현장에는 7명의 산모가 있었고 곧 6명의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역사는 지속된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과 멋진 인연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네팔까지 의류를 운반하는 수고를 하였고 물품을 전해주신 분 덕분에 특별히 생색나는 일을 도맡았다. 긴 여정 동안 고통스런 일정이었지만 보람이 살리는 일상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비 내리는 날, 멋진 일상을 뒤로 하고 포카라에서 다시 우리들의 베이스캠프인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여전히 지친 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네팔에 지진피해자들이 온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결심이다.


태그:#고르카 지진피해자 임시수용시설, #제주도 고은경, 수버드라 팔룽가, #신생아 의류와 산모 여성용품, #아동의류와 동화책 전달, #포카라 구릉족 복지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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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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