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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도입돼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듣던 검사 적격심사제로 검사 1명이 면직처분 됐습니다. 주요 언론들은 '11년 만에 첫 탈락자가 나왔다'고 단신으로 보도했지만 검찰 내부는 이 일을 두고 술렁였습니다. "내년엔 내 차례가 될 것"이라며 법무부의 적격심사 강화를 저지하겠다는 검사도 나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가뜩이나 '정치 검찰'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검찰, 여기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치는 일선 검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 검찰 깃발이 서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 검찰 깃발이 서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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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법무부는 '검사 적격심사'를 시작했다. 7년마다 한 번씩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검사를 걸러낸다는 취지다. 하지만 2014년까지 적격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초, 사상 첫 탈락자가 나왔다. B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던 A 전 부부장검사다. 그는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4년간 검사로 일해 왔다. 주로 일반 형사사건을 맡아온 A 전 검사는 지난 2월 적격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통보받았다.

'사상 첫 적격심사 탈락자'라는 불명예를 얻은 A 전 검사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탈락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 안팎에선 A 전 검사가 '괘씸죄'에 걸렸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가 검찰 내부통신망(이프로스)에 법무부와 견해가 다른 글을 여러 차례 올린 게 '잘려나간' 이유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A 전 검사가 이프로스에 올린 글 중에는 과거사 재심 사건 때 상사의 지시를 어기고 법정 문을 걸어 잠근 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한 임은정 검사를 지지한 글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쓴소리'가 괘씸죄에 걸렸는지, 아니면 검찰청법에 규정된 대로 "직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인지는 A 전 검사 본인조차 모른다. 면접 당시 적격심사위원들은 그에게 이프로스 글 관련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부적격 결과 통보에도 그 이유를 설명한 내용은 없었다. A 전 검사가 법무부로부터 받은 것은 "퇴직을 명함"이라는 단 한 줄의 공문이 전부였다.

그는 지난 3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퇴직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변호사로 개업했다. A 전 검사는 지난달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자신이 겪은 적격심사 과정을 털어놓으면서도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 등을 감안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부적격 사유를 두고 "짐작 가는 바도 있지만..."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탈락 사유가) 정말 (이프로스) 의견 개진이라면, 차라리 나가는 편이 낫다"고 했다. 검찰 수뇌부에게 쓴소리를 해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게 아니라면, 도대체 탈락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소송을 제기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록 검찰에서 쫓겨났지만, A 전 검사의 얼굴은 '친정' 걱정으로 가득해 보였다.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찰이 되기 위해서도 검찰의 독립이 중요하다"며 "사실 검찰도 서서히 변해왔는데, 한때 괜찮다가 다시 나빠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A 전 검사와 80분가량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몇 명 심사했는지, 앞뒤 누가 면접 봤는지도 모른다"

- 2004년 검사적격심사제도 도입 후 첫 탈락자다. 적격심사 대상이라는 사실은 언제 알았나.
"공지는 지난해 12월쯤 받았다. '적격심사제도가 있으니 심사를 한다, 12월부터 시작하니 유념하라'는 법무부 메일이 왔다. 1월 말~2월 초쯤 '2주 후 적격심사를 진행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대상은 몇 명인지는 (법무부가) 공개하지 않았는데 전해 듣기론 (심사받은 인원이) 20여 명이라더라. 하지만 (심사 당일)제 앞뒤에 누가 했는지조차 몰랐다. '앞의 분 (면접) 시간이 좀 걸린다'는 안내를 받고서야 '아, 다른 사람도 있구나' 한 정도였다."

- 결과를 통보받은 시기는.
"검찰 인사(2015년 2월 17일 상반기 검사 인사 계획)가 났는데 제 이름이 없어서 유임인가 했다. 이전에 적격심사 받은 분들은 그냥 그 자리에 계셨다고 전해들은 게 있어서... 저도 그렇게 넘어가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수요일쯤에 나가라고 하더라."

- 탈락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심사 때 별다른 분위기도 감지 못했나.
"심사위원 9명 앞에서 1시간 반 정도 면접을 봤다. 그때 나온 질문들은 평범했다. 검사들도 '사무감사'를 받는다. 미제사건 수는 얼마인지, 구형을 과다하게 하진 않았는지 등을 확인한다. 사실 충분히 지적받을 수 있는 일들이다. 저도 그 자리에서 잘못한 부분들은 인정했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질문들을 받아서 바로 답변하기 쉽지 않았다."

- 준비가 부족해 답변이 어려웠던 질문들이 어떤 내용이었기에...
"지난해 말인가 올해 초에 대검찰청에서 검사 두 명이랑 수사관 몇 명이 제가 근무하던 B지검을 찾아와 1년 동안 수사한 기록들을 싹 보고 갔다. 그들이 무슨 자료를 가져갔는지 몰랐다가 적격심사 당일 질문을 받고서야 알았다. 미리 알았으면 준비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는데 1년간의 기록을 그 자리에서 물어보니까... 한 달에 제가 100건 이상 다루다 보니 기억이 안 나는 부분들도 있었다(웃음). 다만 지난해가 제게도 상당히 어려운 시기여서 '이런 것들은 지적받을 만하다, 그런데 저는 지난해에 아주 힘들었다, 윗분들과 의견도 잘 안 맞았다'고 설명했다."

- 심사위원과 언쟁은 없었나.
"그날 심사위원과 언쟁은 안 했는데... '결재 제도가 중요하지 않냐'고 묻더라. 그래서 '순기능이 있죠'라고 답했더니 추가로 질문이 더 들어오진 않았다. 사실 짐작 가는 바도 있지만, 그쪽에서 공식적으로 질문하지 않는데 제가 넘겨짚어서 말하고 싶진 않았다."

"짐작 가는 부분은... 임은정 검사 무죄구형 지지글 썼다"

- 결재 제도 질문도 있었고... '짐작 가는 부분'이라는 게 혹시 이프로스에 임은정 검사와 관련해 올렸던 글 이야기인가.
"적격심사 과정에서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그쪽(법무부)에선 절대로 그 이유가 아니라고 할 것 같아서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제 심정은... 저는 그냥 주어진 대로만 일했고 욕심도 비웠는데, 제가 생각하는 검찰상과 현실이 많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럴 거면 검사하는 의미가, 여기 남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었고. 무죄 구형한 임은정 검사가 징계당하는 것을 보며 상처도 받았다."

- 그동안 혼자 고민도 많았지만, 임은정 검사 일로 검찰 조직에 마음이 떠났다는 뜻인가.
"임은정 검사와 한때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일을 잘했고, 조직에서도 인정받던 사람이다. 그의 가치관도 인정받던 셈이었다. 그런데 (임은정 검사가) 원래 가치관대로 행동한 일이 정쟁거리가 되어버리니까... 그 일로 글을 3,4편 썼다. 요약하면, '직접 수사를 한 사람이 판단해야지 보고서만 본 사람이 판단하는 일이 맞겠느냐'란 내용이다.

(기자 주 - 2012년 12월 28일, 서울중앙지검 소속이던 임은정 검사는 고 윤길중씨의 통일사회당사건 재심에서 '법과 원칙에 의한 판단을 구한다'는 백지구형 대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판 업무를 다른 검사에게 넘기라는 상부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그는 정직 4개월에 처해졌으나 징계취소소송을 제기,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임 검사는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 그래서 적격심사 때 결재 질문이 나왔던 것은 아닌가.
"아마도... 저는 결재자가 더 똑똑하고, 경험이 많기야 하겠지만 직접 본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임 검사도 본인이 재판에서 직접 (증거나 사건 기록 등을) 봤으니, 그의 의견이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가 정말 잘못 판단했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된다'고 썼다."

- 이프로스에 올린 다른 글은 어떤 주제였는지도 궁금하다. 14년 동안 쓴 글이 110여 편이라고 들었다. 댓글은 좀 많이 달렸나.
"신변잡기보다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들을 다뤘는데, 호응이 별로 없었다(웃음). 저는 조직에서 의사소통도 하고 싶은데... 만나서 얘기하면 의견 주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게시판에선 보이지 않았다. 관객 없는 연극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보니 제 존재 가치 등을 두고도 고민했다. 검사라는 직업을 두고 마음을 정리했던 이유 중 하나다."

- 검사라는 직업을 두고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가치관의 문제인데... 검사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 않은가? 언젠가 아이에게 검사와 변호사 중에 누가 더 착하냐고 물어봤다. 답이 어땠을까? 고민을 조금 하더니 변호사라고 답했다(웃음). 물론 조직 안에 있으면, 조직에 신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넓게 볼 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 여러 가지를 고민했다."

'한 줄 통보'가 전부... "탈락 이유 알고 싶어서 소송 제기했다"

2014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2014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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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일을 두고 게시판 글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자유롭게 의견 개진하는 것이 힘들다면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법무부에서) 공식적으로 '적격심사에서 탈락한 이유는 그게 아니다'라고 할 테지만(웃음). 정말 의견 개진 때문이라면 차라니 나가는 편이 제게도 낫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탈락한)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서 소송을 제기했다. 제가 심사 결과 실적 부진으로 꼴찌를 했다면, 심사 결과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제가 표창을 받은 적은 있어도(기자 주 - 그는 검찰총장 표창, 법무부 표창을 수상했다) 징계를 받은 적은 없는데, 평가할 때 어느 요소에 가중치를 줬는지 등을 알고 싶다. 실제로 공정한 절차를 밟았는지도 궁금하다. 적격심사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 정확히 적격심사 결과를 어떻게 통보받은 건가.
"차장검사님이 부르더니 인사혁신처에서 온 공문을 주더라. '퇴직을 명함'이라는 한 줄만 적혀있는."

- 구두 설명도 없었나.
"궁금하면 알아서 파악하라는 것이겠죠(웃음). 직접 (탈락 사유를) 듣고 제가 꼴찌라는 결과를 납득할 수 있었다면, 저도 소송을 못한다."

- 사실 소송이 머리 아픈 일이다. 탈락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만으로 시작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또 다른 이유는) 적격심사 과정이 너무 밖으로 알려지지 않아서다. 법원의 경우 매년 근무성적을 평가하는데, 본인이 요청하면 그 자료를 보내준다더라. 당사자가 결과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도 있고. 10년마다 재임용평가를 할 때도 연임 적격 여부가 문제 됐다고 통보받은 판사는 성적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은 법원과 다르게 평가한다는데 그게 무엇인지 다들 모른다. 법무부나 대검 등 중요 보직을 다녀온 분도 모른다고 한다. 진짜로 제가 7년 동안 평가에서 0점만 받았다고 해도, (그 결과를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으니) 저도 시정할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당사자가 잘못을 알아야 개전의 정을 보이는데,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 2004년 적격심사제 도입 당시 이 제도가 '검사 길들이기'에 쓰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지금 다시 나오고 있다. 검사의 신분 보장이 약해지면 검찰이 더욱 '정치검찰'화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런 가능성은 뭐...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았나. 굳이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군사정권 이야기 이런 것 잘 아시잖아요(웃음).

제가 일반 형사부에서 주로 혼자 일하다 보니 (검사를) 독립된 관청으로, 준사법기관으로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다른 것은 다 버려도 검사가 준사법기관이라는 점은 지켜야 하므로 법원에 준하는 신분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저만의 의견도 아니고 옛날부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었다. 임은정 검사의 행동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고(기자 주 - 임은정 검사는 징계취소소송에서 무죄구형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정치적 고려나 국가이익을 저울질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준사법기관인 검사로서 할 일을 했다'고 항변했다)."

"이번 일은 시스템 문제... 아니면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다"

- 9명의 적격심사위원 가운데 2명은 법무부 장관이 위촉하는 '사법제도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고, 4명은 법무부 장관이 지명하는 검사다. 법무부 장관의 영향력이 거세게 작용할 수 있는 구성이라는 비판 역시 나온다.
"맞는 얘기다. 물론 심사위원들이야 객관적으로 한다고 말하겠지만, 보이는 면도 중요하다. 결론이 타당하려면 과정이 많이 공개돼야 한다."

- 적격심사의 비공개주의를 깨야 한다는 것 외에 소송에서 중점을 두는 대목은.
"사람이 선해도, 악해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놓으면, 어떤 사람이 와도 사고가 크게 터지지 않는다. 저는 (적격심사 등 검찰 내 제도가) 좋은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번 일이)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면 (제가) 이렇게 뻔뻔하게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다(웃음). 그런 부분도 소송으로 밝힐 수 있지 않을까."

- 어떤 검찰, 어떤 검사가 되길 바라는지.
"질문이 참 어렵네요(난감해하며 잠시 생각해보더니)... 임은정 검사도 결함이 없지는 않겠죠.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검찰이 국민과 사법부의 신뢰 등을 얻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수사를 했던 윤석열 전 팀장도 비슷하다. 검찰 내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그들을 다 포용한다면 다양하고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검찰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도) 검찰 기능의 독립이 중요하다.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찰이 되도록. 검사도 소속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20~30년 전에 독립적이지 못했던 법원이 변해온 것처럼 우리(검찰)도 서서히 변해왔는데... 한때 괜찮다가 다시 나빠진 것 같다. (임은정 검사 징계 등)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 계속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데..."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검사 적격심사, #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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